지방소멸은 곧 국가의 위기
수도권 확장 정책 중단해야
국가운영 패러다임 전환을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고, 남아있던 노인들은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마을이 쓰러지고 있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고, 그나마 수명이 늘어난 노인들로 간신히 공동체를 지켜온 농촌사회는 친숙했던 것들과 하나씩 작별하고, 대낮의 적막에 익숙해지고 있다. 사람과 재화가 한 곳으로 몰린 수도권공화국의 변방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지방의 현실이다.
수도권이 지방의 사람과 자본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됐다. 노무현정부 이후 역대 정부가 하나같이 균형발전 정책을 내세웠지만 오히려 불균형만 키웠다. 수도권의 공간적 범위는 갈수록 넓어졌고, 대한민국은 수도권과 지방으로 양분·양극화됐다. 주택문제 등 수도권 과밀의 폐해를 수도권 확장으로 해결하려는 부동산정책이 계속됐고, 그 속에서 균형발전정책은 공허한 메아리로 흩어졌다. 결국 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정부의 수도권 신도시 건설 정책은 3기, 4기로 이어지면서 흔들림이 없다. 문재인정부는 지방소멸의 위기 앞에서도 서울의 부족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신도시 정책에 집중했다. 하지만 결과는 주택시장의 수급 불균형 해소와 집값 안정 대신 또다른 신도시 조성의 명분만 만들어냈다.
윤석열정부도 출범과 함께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좋은 지방시대를 열겠다’며 균형발전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방의 소멸이 국가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수도권 확장을 막겠다는 의지도 없다. 게다가 수도권 신도시 정책에는 여야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낸다. 결국 말로만 균형발전을 외친 역대 정권의 과오를 답습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그리고 그 우려가 현실이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권 초기부터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에 이어 공장 신·증설 제한 완화 등 수도권 규제완화에 거리낌이 없다. ‘지방시대’라는 구호가 무색할 정도다. 균형발전은 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닌 국가 생존전략 차원에서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시대의 소명이다.
‘백약이 무효’였다.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도, 지자체의 인구늘리기 시책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그렇다면 이제 극약처방을 내려야 할 때다. 대개 마지막에 쓰는 이 처방은 자칫 죽을 수도 있는 부작용과 쇼크를 전제로 한다. 이제껏 지방을 얕잡아보며 중심의 위치를 누려온 수도권에서 견뎌내야 한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불이익과 불편, 그리고 역차별까지도 말이다. 비정상이 고착된 수도권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과 과감한 정책 전환이 요구된다.
우선 수도권 신도시 개발 정책부터 전면 폐기해야 한다. 지난 1989년 분당 신도시를 시작으로 무분별하게 추진된 이 정책은 수도권 일극체제를 심화시키고 지역간 양극화를 조장해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다. 서울의 주거·교통문제 해소를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 지방의 인구이탈을 부추기고 인구와 산업의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했다. 수도권 중심의 국가운영 기조를 이제는 바꿔야 한다. 비대해진 수도권, 소멸 위기의 지방을 정상으로 되돌려 균형을 맞춰야 한다.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하는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어야 할 때다.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인구가 깡패’라고 했다. 이미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더 늦어지면 무소불위의 밤골목 무뢰한이 된 ‘인구의 힘’에 밀려 지방은 애절한 소울음조차 내지 못하게 된다. 수도권의 강력한 흡인력을 그대로 두고서는 지방을 살릴 수 없다. 이미 거대한 공룡이 된 수도권의 몸집을 더 키우는 신도시 정책부터 폐기해야 한다. 대한민국 전체를 수도권으로 만들 작정이 아니라면 말이다.
/김종표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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