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은 필수 공공서비스 영역
농어촌 대중교통체계 붕괴 위기
맞춤형 교통정책 발굴·시행해야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단체의 서울 지하철 시위가 연초부터 화두에 올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벌인 지하철 승하차 시위는 벌써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을 명시한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법’이 지난 2005년 제정됐지만 아직도 교통약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목적지까지 제시간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절규가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단체가 이동권에 목소리를 높이는 건 단순히 이동의 편의성 확보 때문만은 아니다. 이동권이 제약되면 다른 기본권마저 침해받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통해 원활하게 이동할 수 없게 되면 교육을 받을 권리나 의료기관에서 제때 치료받을 권리, 그리고 투표권 등의 기본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이동권은 다른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는 필요조건인 셈이다.
이동권은 우리 헌법에 독립된 조항으로 규정돼 있지는 않지만 국민에게 당연히 보장된 사회적 기본권이다.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법’ 등 교통 관련 법률에서는 이동권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누구나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이 같은 이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과연 장애인 등 교통약자에 한정될까? 그렇지 않다. 장애인단체처럼 투쟁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인구절벽 시대,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소도시 주민들도 부지불식간에 이동권을 빼앗기고 있다.
가뜩이나 인구 감소로 승객이 줄어든 판에 코로나19로 인해 주민의 활동 반경이 좁아지면서 지방 소도시 시외버스의 감축운행과 노선 폐지가 이어졌다. 여기에 경영악화로 인해 아예 문을 닫는 시외버스터미널도 속출하고 있다. 승객이 줄어 경영난에 시달린 지방 운수업체가 속속 노선을 감축하고, 이로 인해 대중교통 이용환경이 더 열악해지면서 주민이 대중교통을 외면하고, 이 같은 현상이 다시 버스 감축운행 및 노선 폐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농어촌 등 지방 소도시 주민들의 이동권은 갈수록 더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내버스는 운행간격이 갈수록 길어져 이용이 어려워지고, 인접 도시를 연결하는 시외버스 노선도 이용자 감소를 이유로 속속 사라지고 있다. 농어촌의 대중교통은 이동의 수단일 뿐 아니라 의료와 교육, 노인복지 등 공공서비스 전달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사회 인프라다. 지자체가 적자노선을 유지하기 위해 버스업체에 주는 재정지원금도 한계가 있다. 일반 대중교통 사정이 이러하니 장애인과 노약자 등 교통약자를 챙길 여유도 없다.
이에 비해 이중삼중으로 촘촘하게 구축된 수도권 광역교통망은 지방의 사람과 재화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제는 지방도시의 대중교통 인프라에 더 신경을 써야 할 때다. 물론 지방과 서울을 잇는 광역교통망도 중요하지만 지방도시의 인접 생활권을 연결하는 광역교통망 붕괴를 막는 일이 더 급하다.
국민의 이동권은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의 영역이다. 당연히 국가가 이를 보장해야 한다. 특히 소멸위기 지역의 주민 이동권 보장을 위해 비수익 버스 노선 폐지 규정 완화, 공공형 교통수단 확대, 마을순환형 DRT 도입 등 맞춤형 교통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 시행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함께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사는 곳의 차이가 기회와 생활의 격차로 이어지는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약속이다. 당연히 지방도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이동권 제약부터 풀어내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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