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필자가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로 교육을 받으러 간 적이 있다. 그 날도 교육을 마치고 익산으로 내려가기 위해 용산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료수를 마시며 의자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멀지 않은 곳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도와달라는 말에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 현장에는 연인처럼 보이는 남녀가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고, 기차선로에 어느 남성이 앉아 있었다. 필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기차선로에 내려가 그의 옆에 앉았다.
그는 몸에서 술 냄새와 땀 냄새가 났었고 흙먼지가 잔뜩 뒤덮여있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마치 현장일을 방금 마친 일용직 노동자의 모습과도 같았다.
“선생님, 여기에 왜 이러고 계세요?”
“어. 여기서 죽을려고.”
“오늘 무슨 힘든 일이 있으셨어요?”
“어 힘든 일이 있었지”
그의 목소리에서 깊은 인생의 고뇌가 느껴졌다. 조용히 앉아서 그와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고 있던 찰라 저 멀리에서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와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필자는 이야기를 멈추고 재빨리 그의 뒤에서 허리를 붙잡고 플랫폼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삶의 의지를 포기한 그의 몸은 물먹은 스펀지 마냥 축 늘어져 쉽게 플랫폼 위로 올리지를 못했다.
“도와주세요. 누가 좀 같이 도와주세요!”
필자의 소리를 듣고 두 명의 시민이 달려왔다.
“저기 선생님은 역무원을 빨리 찾아서 여기로 와주시라고 해주세요. 여기 선생님은 저랑 같이 이분을 끌어올려주세요.”
다행히 기차는 우리가 있던 선로로 오지 않고 다른 선로를 이용하는 기차였고, 그 남성도 무사히 플랫폼 위로 끌어올려졌다. 잠시 후에 역무원이 도착을 했다.
“선생님 여기서 뭐하세요. 저 따라오세요”라며 그 남성을 데려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터벅터벅 역무원 뒤를 걸어가던 그의 뒷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 남성 또한 분명 한때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꿈과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 선로에 앉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었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남성 주변에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면 과연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일이 마무리 된 후에 극도의 긴장감으로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남은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필자는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도우러 온 사람이 두 명 밖에 없구나’ 생각하며 이해는 했지만 씁쓸함을 지우기는 어려웠다.
최근 언론을 통해 2030대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과 고독사하는 청년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는다. 지자체에서 청년들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청년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현실이다.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또는 정서적 어려움 때문에 상담을 받고 싶지만 기관에 방문하기까지가 문턱이 참 어렵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청년들이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마음 편히 상담을 받고 위로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과 원스톱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의 역할도 중요하다. 용산역 선로에 앉아있는 남자를 구하기 위해 생면부지의 시민들이 달려왔던 것처럼, 우리 주변의 청년들을 살펴보며 청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어른이 되어주자.
/최준호 원광대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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