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대가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도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딱 좋아할 만한 소재로 매끄럽게 대화를 이끌어간다. 내가 그만두기 전까지 이 흥미로운 대화 상대는 결코 지칠 줄 모른다. 내 취향에 맞춰 이야기를 끌어가면서도, 본인만의 개성을 확실히 드러낼 줄 안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대화 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ChatGPT; 사전 학습된 자연어 대화 생성 모델) 이야기다. 이 소프트웨어는 마치 인간처럼, 혹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능숙하고 성숙한 대화를 ‘생성’할 줄 아는 인공지능이다. 출시된 지 불과 1년 만에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곧’ 가져오게 될지를 생각하게 했다. 컴퓨터가 체스나 바둑으로 인간을 이겼을 때보다도 더 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대화’에 특화된 기계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 대화는 참으로 중요하다.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지적 수준을 알게 되고 사회성과 태도, 세상에 대한 가치 판단 요소 등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대화’는 인간성과 지성의 상징이다. 대화는 이야기이고, 좋은 이야기는 정보와 지식이 논리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으면서도 세밀한 감정 표현이 담겨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지나치게(?) 잘 하는 사람을 경계하기도 한다. 보이스피싱이 바로 창의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사람들을 속이는 범죄이다. 챗GPT 역시 인터넷을 통해 인간을 학습했고, 학습한 능력을 대화로 풀어낸다. 과학자들은 여기에 숟가락 한 스푼 정도의 ‘예절-인간이 불편하게 생각할 만한 것들을 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추가했다. 그 결과 꽤 그럴싸한 대화가 가능해졌다. 더 나아가 논리력을 발휘해 논문을 쓰고, 창의력을 동원해 시와 소설을 쓰고, 영상 대본을 작성하고, 블로그 글을 쓰고, 피싱 사이트를 뚝딱 만들어 사기를 치고, 주식 투자 가이드를 하는 일까지 담당하고 있다. 검색어에 대응하여 같은 답에 서로 다른 느낌만 주는 미러 사이트를 몇 백 개씩 만들어내서 인터넷 검색 결과를 오염시키기도 한다. 이쯤 되니, 전문가들은 이 인공지능 모델을 약장수, 사기꾼, 허언증 환자, 표절머신 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만약 누군가가 어떤 책의 목차와 요약본을 보고, 인터넷에서 수많은 리뷰와 독후감, 평론을 읽은 후에 마치 책을 다 읽은 것처럼 자랑하고 다닌다고 해보자. 이 사람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면 과연 대화는 어떻게 흘러갈까? 챗GPT는 마치 우리 주변에서 보지도 않은 책을, 영화를, 드라마를, 듣지도 않은 음악을, 하지도 않은 스포츠를, 사지도 않은 물건을 샀다고, 했다고 하는 사람처럼 누군가의 경험과 지식을 긁어모아서 잘 조합한 결과만을 제공한다. 정교한 알고리즘이 진솔한 대화에 담겨야 하는 숙고와 가치판단, 진실성, 새로운 가능성의 자리를 대체한다. 냉정해지자. 인공지능은 가짜 뉴스가 진실을 호도하는 이 세상에서 팩트 체크가 가능한 수준이 될 때야 비로소 우리가 믿을 만한 물건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아직은 큰 걱정이나 기대를 갖지 말고 한번 경험해보자. 놀랍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바보 같고, 능력 있지만 쉬운 걸 제대로 못하는 최신의 비싼 기계. 덕분에 우리 현실은 가짜, 표절, 기계 창작물 등으로 한바탕 혼란스러울 듯하다. 만만치 않은 상대니 다들 정신 바짝 차리자. 여기에 더해 다음 데뷔 순서를 기다리는 인공지능들이 오디션을 막 마치고 긴 줄을 서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박형웅 전주대 실감미디어혁신공유대학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