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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보덕국, 후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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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장근 군산대 역사학과 교수

고구려는 도읍에 두 개소의 성을 두었다. 고구려 왕은 평상시 평지성에 머물러 있다가 유사시 전쟁이 일어나면 산성으로 이동하여 장기전에 대비하였다. 고구려 두 번째 도읍 지안에서 평지성인 국내성과 산성인 환도산성이 가장 유명하다. 후백제의 도읍 전주도 평지에 왕성과 산봉우리에 산성을 두어 고구려의 도성체제를 그대로 닮았다.

후백제 도성은 반달모양으로 인봉리 추정 왕궁 터만 유일하게 도성 안에 위치한다. 전주 인봉리는 관아가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서쪽을 바라보았다는 구전의 내용도 충족시켰다. 전주 동고산성이 아홉 차례 발굴조사로 후백제 피난성으로 검증되었고, 견훤왕은 통상시 인봉리에 머물다가 비상시 전주 동고산성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수 침령산성은 고대 축성술 전시장이다. 장수군 장계분지 서쪽 산봉우리에 그 터를 잡고 500년 이상 산성이 운영되었다. 금강 최상류에 지역적인 기반을 둔 봉화왕국 반파가야가 산성의 터를 처음 닦고 신라가 4배 이상 확장한 뒤 거점성이자 전략상 요충지로 삼았다. 후백제는 치(雉)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아 고구려 산성의 성벽을 연상시킨다.

장수 합미산성은 후백제 축성술의 랜드마크이다. 성돌은 방형 혹은 장방형으로 잘 다듬고 그 길이가 상당히 길어 견치석(犬齒石)으로도 불린다. 성벽은 줄을 띄워 줄쌓기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들여쌓기와 품(品)자형 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성벽이 90% 이상 잘 보존되어 국사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고구려 백암성 못지않게 아주 튼튼하다.

남원 교룡산성은 축성술의 최고봉이다. 아직은 산성의 터를 처음 닦은 주체가 파악되지 않았지만 성벽의 하단부가 고구려 산성의 성벽처럼 축성술의 압권이다. 모두 두 개소의 집수시설도 거의 빈틈이 없을 정도로 잘 쌓아 돌의 마술사를 떠올리게 한다. 전 세계인들이 최고로 인정하는 잉카제국 도읍 쿠스코 로레토 거리의 건축술 못지않다.

고구려의 축성술과 후백제의 도성체제 전달자로 보덕국(報德國)이 가장 유력하게 떠오른다. 고구려 유민들이 익산시 금마면 금마저(金馬渚)에 세운 나라가 보덕국이다. 674년 신라는 고구려 부흥운동을 이끈 안승을 보덕국 왕으로 임명하였고, 684년 보덕국 사람들이 봉기하자 이를 진압하고 남원경 등 남부의 여러 지역에 나누어 이주시켰다.

보덕국 등장 이후 전북에서 축성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익산 오금산성은 달리 보덕성으로 그 축성술이 후백제까지 그대로 계속된다. 순창군 동계면 합미성 등 후백제 산성에서 일관되게 관찰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전주로 향하는 교통의 중심지와 전략상 요충지, 철산지를 방어하기 위한 후백제의 국가전략이 투영되어 있다.

전북 동부는 대규모 철산지로 후백제 국력의 화수분이었다. 장수 명덕리 대적골 제철유적 발굴조사로 그 역사성이 검증되었다. 그러다가 후백제 멸망 5년 뒤 남원경이 남원부로 이름이 바뀌면서 중앙에서 지방으로 그 위상이 낮아졌다. 보덕국 사람들이 전북에 전해준 고구려의 축성술도 후백제 멸망과 함께 그 맥이 끊겼다.

전주 동고산성, 장수 합미산성 등 전북에서 고구려 백암성 성벽을 쏙 빼닮은 산성들은 보덕국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전북과 인연을 맺은 보덕국 사람들이 고구려의 축성술과 도성체제를 전북에 전수(傳授)해 주었고, 후백제가 한층 더 승화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고고학 자료로 보덕국은 고구려와 후백제를 연결시켜준 매개자였다.

/곽장근 군산대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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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장근 #문화마주보기 #고구려 #보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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