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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학교에 바둑이 정착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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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순탁 서울시립대학교 교수∙전 총장

기존의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에 돌봄의 의미를 더한 늘봄학교 정책이 올해 시범운영을 거쳐 내년에는 전국으로 전면 확대된다. 늘봄학교에서는 방과 후 오후 8시까지 초등학교 학생들의 성장 발달단계를 고려하여 만든 놀이와 체험 중심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며, 학교 안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 밖의 늘봄센터, 도서관, 공공기관 등에서도 운영될 예정이다.

필자는 이 기회에 바둑 프로그램이 기초소양 프로그램으로 정착되었으면 한다. 최근 바둑은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외면받고 있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소일거리로 치부되고 있는 마당에 왠 바둑 타령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둑은 어린아이들에게 주는 교육적 효과가 크고 게임적 요소를 가지고 있어 온라인 게임에 집착하는 어린 학생들을 위한 놀이프로그램으로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아동심리전문가와 프로기사가 협력하여 바둑이야기와 프로그램을 만들고 바둑지도사 주도하에 수업을 진행하면, 우리 아이들은 바둑의 개념과 원리는 물론 바둑을 대하는 마음가짐까지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무릇 학문의 본질은 원리나 개념을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에 대해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에 있다. 바둑을 배우는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창의적인 사고력이 더욱 중시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바둑만큼 좋은 것이 없다.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바둑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한 사례가 있다. 도쿄대학은 2005년 일본기원의 이사장이었던 가토 마사오의 제안을 받아들여 바둑을 정규 교양과목으로 채택했다. 이 과목은 물리학, 뇌과학, 심리학 교수들이 협력하여 ‘바둑으로 키우는 사고력 세미나’를 교양강좌로 개설하였으며, 교수와 프로기사가 참여하는 체험형 세미나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그후 바둑 강좌는 전 학년을 대상으로 매 학기 개설되고 있으며, 도쿄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이 되었다.

도쿄대는 왜 바둑을 정규과목으로 채택했을까? 바둑을 통해 학생들의 능력을 계발하고 교양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전통 놀이문화인 바둑을 보급하기 위해서였다. 이 강좌를 담당하고 있는 도쿄대 효도 도시오 교수는 바둑을 가장 단순하면서도 추상적인 최고의 지적 게임으로 규정한다. 바둑은 깊이 생각하면서 두는 게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뇌가 단련된다. 이러한 이유로 바둑은 예로부터 두뇌 훈련법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는 대표적인 두뇌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다. 학생들은 바둑을 두는 과정을 통해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고 연마하면서 독창적으로 연구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운다. 이것은 학문을 할 때도 매우 중요한 프로세스다. 도쿄대는 바둑이야말로 학업과 인간관계,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통찰력과 분석력을 길러주는 최적의 학습법이라는 데 주목했고, 실제로 바둑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물리학 등 기초학문 분야의 사고능력을 측정한 결과 현저하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어디 그뿐인가? 인생은 바둑과 같다는 말처럼, 바둑은 경쟁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네 인생 전반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바둑의 룰은 간단하지만, 실제 게임에서는 경우의 수가 많아 전략전술과 수단이 자유롭고 선택지가 많다. 고도의 인내력과 집중력이 게임의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전체 판세를 보아가면서 넒은 시야로 공격과 수비를 결정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눈 앞의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바둑이 끝난 후 두 대국자가 복기를 통해 성패의 원인을 찾고 자신의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재검토한다. 바둑을 통해 축적되는 성찰적 경험은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무쪼록 많은 우리 아이들이 늘봄교실의 현장에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바둑 두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서순탁 서울시립대학교 교수∙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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