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5월 10일은 제94회 남원 춘향제의 전통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이 행사는 오는 16일까지 1주일 동안, 그 옛날에 이팔청춘 춘향이가 향단이와 함께 그네 타는 놀이를 하는 중에 이몽룡 님을 만나서 백년해로의 가약을 맺게 되었다는 전설의 누각 광한루원(廣寒樓苑 보물 제281호)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화려하고 흥겹게 펼쳐진다. 올해로 94년 회차라니 가히 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할 만하다. 1931년 일제 강점기에 남원권번(券番)의 기생들 몇몇이 뜻을 모아서, 만고열녀 춘향의 굳은 정절과 아름다운 사랑을 기리고자 제향을 모신 것이 그 출발점이고 효시였단다. 잘은 몰라도 경남 진주(晉州)의 개천축제와 더불어서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의 민속행사가 아닌가 싶다.
지난 4월에는 남원 고향 땅에 내려갈 일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양주분이 계시는 노암동의 산소(山所)에 성묘(省墓)하고, 10여 명 남짓 살아있는 다정한 옛친구들 죽마고우(竹馬故友)를 만나서, 서로들 얼굴을 보고 술도 한잔씩 돌리고 웃음꽃을 피며 담소도 나누고 회포를 풀고자함이었다. 그런데 승용차의 귀향길이 낯설기만 하다. 전에는 전주에서 임실 오수를 거쳐서 남원 교룡산성의 동쪽 향교동 도로였는데, 현재는 남원시 사매면의 터널 세 개를 더 지나서야 교룡산성의 서쪽 동네 만복사지(萬福寺址)가 있는 왕정동(북남원)으로 해서 시가지에 도착하게 된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더니, 시내 지도는 더욱 어리어리하다. 옛적에 시내의 중심지가 되는 「제일은행 사거리」는 모두 새 건물로 둔갑해 있다. 제일은행 자리는 ‘MG새마을금고’, 그 옆의 유명한 남원극장 터는 ‘SK증권과 김진영치과’ 등등.
나에게 있어 춘향제는, 1950년대 초 중고교의 10대 소년시절을 추억하기로 한다. 그때는 6.25 한국전쟁의 참혹한 뒤끝이라 궁핍과 간난시련 속에서 참으로 살아가기가 힘들고 어려운 세월이었다. 그래도 해마다 음력 ‘4월 초파일’ 춘향제 날이 돌아오면 남녀노소 너나 할 것 없이 남원 사람들은 신나게 기분 좋고 저마다 달뜨기 마련이다. 광한루에서부터 남원극장이 있는 제일은행 사거리의 동서남북 큰길가 푸른 가로수 끝에는 청사초롱이 봄바람에 나부끼고, 풍물 걸궁패들은 귀창이 떨어지게 날나리 소리를 앞세우고 북과 꽹과리 징 장구를 울리면서 길거리가 미어터지게 흘러간다. 덩실덩실 춤추며 뒤따르는 것은 술주정꾼과 건달뿐만 아니라 코흘리개 애송이들도 줄레둘레 한 몫을 놀고 ----
그뿐인가. 활쏘기 궁도대회, 장사씨름대회, 곡마단의 써커스, 신파악극단의 <비 내리는 고모령>, 용성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밤마다 틀어부는 ‘리버티 뉴스’(대한뉴스)와 활동사진 등등. 그러나 역시 하일하이트는 남원극장에서 펼쳐지는 우리나라 명창들의 판소리 발표회.
“그런께로 명창 임방울 선생이 내레오고, 남원 출신 박초월이도 오고, 또 김소희도 서울서 왔다는구만. 워매, 신나고 좋은 거!”
그날 밤 남원극장은 입추의 여지없이 초만원을 이룬다. 임방울 선생의 <쑥대머리>에 객석에서는 추임새와 함께 한숨과 눈물이 절로 나오고, 김소희의 <춘향가> 한 대목은 찬탄과 오금을 저리게 하는구나.
“때 좋다, 벗님네야. 남원 춘향제 귀경 가시제라우, 잉! ~~“
/노경식 (극작가, 대학로연극인광장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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