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머우 감독이 만든 <인상·유삼저>(印象·劉三姐)는 중국식 실경산수(實景山水) 공연의 시작이었다. 산세 좋은 계림의 실경을 무대 삼아 예술인 수백 명이 공연하였다. 실경의 생생함과 대규모 예술단의 웅장함에 세계적인 감독의 연출력이 더해지면서 ‘인상시리즈’는 공연관광의 대명사가 되었다.
인상시리즈를 본 사람은 하나같이 한국에 도입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몇몇 지자체가 공연을 만들기도 하였다. 전북에서도 십수 년 전에 실경산수 상설공연을 만들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중국식 공연이 상설로 진행되는 사례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출연료가 높아 중국처럼 예술인 수백 명을 무대에 세울 수 없다. 한국 날씨도 도와주지 않는다. 비·태풍·눈, 혹서·혹한기를 빼면 공연할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 공연일이 적으면 관람료가 비싸지는데, 아무리 가격을 올려도 수백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다. <인상·유삼저>는 2004년에 약 6백억 원이 투자되었다.
중국식 공연이 관심을 끌던 때로부터 십수 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실감기술은 일취월장하였다. 예술인 수백 명의 웅장함을 대체할 정도가 되었고, 기술의 화려함도 풍성해졌다. 실감기술을 실경에 적용해 성공한 공연관광 사례도 나타났다.
풍남문과 전동성당을 활용한 미디어파사드는 문화유산에 실감기술을 더한 새로운 볼거리였다. 미륵사지에서 열린 세계유산 미디어아트쇼는 십수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 폭발이었다. 전동성당 내부 공연인 <2020 빛의 성당, 미제레레>는 유료화의 가능성을 열었다. 이 사례들은 한국의 실감기술과 한국적 실경(자연·문화·복합유산)이 융합되면 중국식 공연 적용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실경의 생생함과 예술적 화려함이 더해진 공연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른바 ‘K-실감산수(實感山水) 공연콘텐츠’가 그것이다.
인구전략에서 중요한 생활인구를 유치하려면 우선 지역에 한번은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업무나 관광으로 와서 경치도 구경하고 특산품도 사고, 동네가 마음에 들어 다시 방문해 며칠 체류하는 생활인구를 거쳐 정주인구로 나아간다. 미륵사지 공연이 보여주듯, K-실감산수 공연은 사람을 당기는 매력이 있다. 실경이 기반이어서 그 장소에 와야만 공연을 볼 수 있다. 생활인구로 가는 첫걸음, 그 지역에 방문하게 만드는데 이만한 전략이 없다.
자연경관, 문화유산하면 전북 아닌가. 공연예술 자원도 풍부하고, 전북 기업의 기술력도 뛰어나다. 성공한 사례도 있으니, 전북을 K-실감산수 공연산업 거점으로 만들어보자. 민선 8기 도정의 문화 비전인 K-문화산업거점의 실천전략이자 인구감소 대응전략으로 말이다.
공연 제작 방식은 바뀔 필요가 있다. 용역공모로 매년 업체를 선정하다 보니 공연의 성과가 이어지기 어렵다. 기술은 놀라운데 공연이 주는 감동은 크지 않다. 누구나 아는 흔한 이야기에 기술 중심으로 풀어내니 단순 볼거리에 그친다는 비판도 있다. 한마디로 스토리가 약하다. 용역방식의 한계일 수 있다.
도와 시군, 민간기업과 출연기관, 기술자와 예술인, 작가와 연출자 등이 참여하는 ‘K-실감산수공연추진단’이 필요하다. 시군별 대표 문화유산이나 명소를 대상으로, 예를 들어 고군산군도 전체를 K-실감산수 콘텐츠 무대로 삼는 <실감 아일랜드, 仙遊> 같은 프로젝트를 발굴하자. 지방소멸 관련 사업이라는 점에서 국책사업으로도 타당성이 충분하다.
/이남호 전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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