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01 12:22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외부기고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⑬ 동학임명장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총 185건이다. 이를 작성주체별로 구분해 보면 동학농민군이 생산한 기록물이 30건(16%), 민간인이 생산한 기록물이 33건(18%), 조선정부가 생산한 보고서와 공문서가 122건(66%)으로 조선정부가 생산한 문서가 대부분이고 동학농민혁명의 주체인 동학농민군이 생산한 기록물은 매우 적은 편이다. 동학농민군이 생산한 기록물이 많지 않은 것은 당시 역적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동학농민군들이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학농민군이 생산한 기록물 중에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동학임명장이다. 동학임명장은 당시 동학교단의 최고책임자인 최시형이 북접법헌의 이름으로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 1894년에 발급한 임명장이다. 현재 기록유산 목록에 포함된 동학임명장은 18건이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image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포함된 동학임명장.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포함된 동학임명장을 소장처별로 보면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11건, 천도교중앙총부 6건, 독립기념관 1건이다. 이러한 임명장은 현재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시기를 1891년부터 1904년까지 확대하면 남아 있는 동학임명장은 대략 80건 정도이다. 나머지 동학임명장이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선정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준은 추진과정에서 여러 기관의 자문을 통해 정해졌는데 이는‘국가기관이나 이에 준하는 기관이 소장한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물로 보존 및 관리 대책이 명확한 자료’였다. 이에 따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천도교중앙총부,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록물만이 목록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나머지 동학임명장도 세계기록유산으로서 충분한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동학임명장은 모두 당시 동학교단의 최고책임자인 최시형의 이름으로 발급되었다. 전봉준의 이름으로 발급된 동학임명장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발급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봉준은 동학임명장을 발급할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교단의 최고책임자는 최시형이었고, 동학농민군을 이끌었던 최고책임자는 전봉준이었다. 전봉준은 동학교단의 틀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봉준이 동학농민혁명을 이끌면서 농민군을 조직화한 것은 백산대회 때이다. 이때 전봉준은 총대장, 김개남, 손화중은 총관령, 김덕명, 오시영은 총참모, 최경선은 영솔장, 송희옥, 정백현은 비서로 정하여 농민군대로 조직을 갖추었다. 그러나 그 하부단위에 대한 조직은 구성하지 못하였다. 전봉준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따라서 기존 동학교단의 조직을 활용할 수 밖에 없었다. 즉 최시형이 임명하고 그에 대한 역할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였다고 보여진다. 위의 표에서 임명장이 만들어진 시점을 보면 주로 1894년 7∼8월임이 확인된다. 이는 이 시기에 많은 조선의 농민들이 동학에 입도하고 여기에 더하여 동학농민군으로 활동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 

동학교단 조직은 포접제(包接制)로 운영되었다. 즉 접(接) → 포(包) → 동학교단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조직은 접(接)이다. 접에는 접주(接主)와 접사(接司)의 직책이 있다. 접주는 접의 책임자로서 교도를 관리하고 교리를 전파하는 일이 주요한 임무이다. 접사는 접주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였다.

image
이수방 접주 임명장.   /천도교 중앙총부 제공

 

이 문서는 1894년 9월 최시형이 이수방을 접주로 임명하는 임명장이다. 이러한 접주임명장은 동학교단의 계통과 계보를 보여주고 있다. 문서의 오른쪽부터 보면 용담(龍潭)은 교조 최제우를 말하며 무극대도대덕(無極大道大德)은 최제우가 제시한 동학의 궁극적 목표이자 지향점이다. 대선생(大先生)은 교조 최제우의 존칭이며 시포덕(侍布德)은 최제우가 이 동학을 개창했다는 의미이다. 북접(北接)은 최시형을 말하며 무극대도대덕은 동학이 추구하는 목표로서 이를 최시형이 계승한다는 의미이다. 대도주(大道主)는 최시형의 존칭 또는 직책이다. 다음 태인(泰仁)은 지역을 말하며 지역의 책임자로서 이수방을 접주로 임명하고 있다. 다음 눈여볼 것은 도장이다. 접주임명장과 접사임명장의 경우, 도장이 5개가 찍혀 있다. 도장의 글자는 최시형의 호인 해월(海月)이다. 그런데 여기서 1894년 당시 최시형은 주로 보은에 거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 임명장이 만들어지고 전달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당시는 교통과 통신이 제한된 상황에서 각 포의 대접주 명의로 임명장을 발급하지 않았고 모두 최시형 명의로 임명장이 발급되었다. 이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백지 한지에 ‘해월’이라고 하는 도장 5개를 찍어서 각 포에 내려주면 각 포에서 대접주가 문서의 형식에 맞게 글자를 쓰고 직책을 부여하였다고 한다. 때문에 모든 임명장의 글씨체가 다르고 도장 위에 글씨가 씌여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수방 접주 임명장'과 '정성영 접사 임명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image
정성영 접사 임명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다음으로 여러 개의 접을 관리하고 통할하는 조직이 포(包)이다. 포의 책임자를 대접주(大接主)라고 한다. 김개남, 손화중, 김덕명 등은 바로 이러한 대접주로서 많은 접을 거느린 포의 책임자였다.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각 지역별로 봉기한 지도자들은 대개 이러한 대접주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접주는 여러 접을 관할하기 때문에 이를 운영하기 위한 별도의 조직이 필요하였다. 그것이 바로 육임직이다. 육임이란 교장(敎長), 교수(敎授), 도집(都執), 집강(執綱), 대정(大正), 중정(中正)을 말한다. 교장은 알차고 덕망있는 사람(質實望厚員爲敎長), 교수는 성심수도하여 가르칠 사람(誠心修道可以傳授員爲敎授), 도집은 위풍을 갖추고 기강을 세워 다스릴 사람(有風力明紀綱知境界員爲都執), 집강은 시비를 밝혀 기강을 잡을 사람(明是非可執紀綱員爲執綱), 대정은 공평을 유지하며 근후한 사람(持公平勤厚員爲大正), 중정은 능히 직언할 수 있는 강직한 사람(能直言剛直員爲中正)으로 임명하였다. 각 포(包)에서 교장이나 교수에 임명된 사람을 보면 모두 포내(包內)의 장로나 덕망있는 사람들이고, 도집과 집강은 실질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며, 대정이나 중정은 비교적 젊은 사람들로서 포내의 실무를 추진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육임직의 임명장은 북접법헌이라는 명의로 발행되었으며 한지 백지에 3개의 도장을 찍은 뒤에 각 포에 전달하여 각 포의 대접주가 직책과 이름을 기입하였다.

image
정순경 교장 임명장. /천도교 중앙총부 제공
image
이승룡 교수 임명장.  /천도교 중앙총부 제공
image
전성실 도집 임명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image
천일권 집강 임명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image
박병진 대정 임명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image
천귀수 중정 임명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그리고 최종적으로 여러 개의 포를 비롯하여 모든 동학의 조직을 관할하는 것이 바로 동학교단이다. 동학교단의 최고책임자는 최시형이다. 최제우가 1860년 동학을 창도한 뒤 1864년 처형되었다. 이후 동학교단의 종통은 최시형이 이어받았다. 최시형은 경전을 간행하고 제의와 조직을 체계적으로 정비하여 동학교단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후 1894년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도 동학교단은 최시형이 교주로서 역할하였으며 그가 체포되어 처형된 1898년까지 이러한 체제는 지속되었다. 동학교단에서도 육임직은 운영되었다. 동학임명장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최시형의 동학교단과 전봉준의 동학농민군 사이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향후 이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image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동학농민혁명기록물 #동학임명장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