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을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고, 정확한 진단이 있은 후에야 처방이 있을 수 있다. 재난이 발생하면 흔히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사건이 일어난 경위, 원인, 직접적인 이유가 재난이라는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난이 일어나고 피해를 입히며 사그라지는 모든 과정은 하나의 띠와 같다. 모든 재난이나 재난에 준하는 대형사고들은 마치 하나의 생명이 일정한 주기를 갖는 것과 같이 일련의 정한 과정들을 거치게 된다. 사건의 발생이 예상되고, 혹은 예견 되는 대다 수 많은 원인이 중첩되면 기어코 발생하고 만다. 그 원인이 사회 전반에 내재해 있고, 수면 아래 잠복해 있다가 방아쇠가 당겨지는 계기적 사건을 통해 발현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원인을 안다’, 혹은 ‘원인에 접근 한다’는 것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방아쇠를 누가 당겼는지가 아니라 수면아래 잠복했던 조직과 제도, 구습 혹은 사회 구성원의 태도에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방아쇠를 당긴 사람을 찾는 것에만 집중하면 책임을 개인 탓으로 돌리게 된다. 세월호 참사에 왜 수학여행을 갔느냐, 이태원 참사에 왜 놀러갔느냐, 산재 사고에 왜 부주의했느냐, 전기차 화재에는 왜 전기차를 타느냐 까지...
흔히 사람들은 대형화재, 붕괴, 폭발 교통사고 등 인간의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재난 보다 태풍, 홍수, 지진과 같은 자연현상으로 발생하는 자연재난을 받아들일 때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취한다고 한다. 불행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 충족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발생하는 많은 재난 형태들은 직접적 원인이 불분명하고 다양한 이유들이 겹쳐진다는 점에서 발생원인 중심으로 재난을 예시하는 현재의 분류가 자칫 희생양을 찾기에만 골몰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지금 우리 주변의 많은 재난은 예측할 수 없는 범위에서 발생하고 있고, 재난을 발생케 한 원인 제공자를 특정 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지난 8월 1일 인천 청라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이후, 전기차 위험성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간 전기차 화재에 대한 우려는 있었지만, 사건이 발생하고 특히 그 장소가 아파트 지하주차장이라는 것에서 일종의 경각심이 생겨난 것은 어쩌면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그럼에도 전기차 배터리에 모든 이슈가 집중되다 보니 아파트 주민들이 전기차량의 주차장 진입을 막는 주민 간 갈등까지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 전체를 연기로 뒤덮고, 폭염 속에 단전·단수 사태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는 화재가 어디 전기차 하나에만 있을까?
아파트 시공사가 지상 차량 출입을 막고 모든 차량이 출입구 진입과 동시에 지하주차장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들게 만든 구조는 명품아파트 광고처럼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교통사고 위험을 피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고도제한을 풀어 층수를 높이고, 동간 거리를 좁혀 더 많은 세대를 좁은 면적에 구겨 넣음으로서 최대의 이윤을 달성하려는 숨은 뜻이 더 컸다.
지하 주차장은 택배용 탑차가 진입하지 못할 정도로 낮았다. 이렇게 낮은 지하 주차장으로 소방차량의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설마 지하주차장에서 불이 나겠어?’ 하는 방관과 ‘그렇다고 아파트를 새로 지을 수도 없잖아’ 하는 안일함이, ‘피곤하게 분란을 일으킨다’는 식의 눈감음으로 방치되었다. 아파트만이 아니다. 아울렛 지하주차장, 물류창고 주차장, 스포츠센터 주차장 등등 수많은 지하공간에서 어떤 원인에서든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이제는 ‘무엇 때문에’에 집중하기보다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에 집중했으면 한다.
/조성 원광대학교 소방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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