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전시를 보러 갔다. 입장을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는데 굽이굽이 이어진 줄이 앞으로 조금씩 이동할 때마다 곧 작품을 볼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지루한 줄도 모르고 참으로 설레었다. 몇 시간 후 드디어 전시장에 입장했을 때 가슴이 벅차 올라왔다. 한 개인이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한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흔적들과 극히 일부의 작품이라 하지만 소장자의 노고와 안목에 위대함을 느꼈다.
집 안에 걸려 있는 그림 한 점은 내 삶에 여유와 쉼을 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막상 미술품을 구매하는 데 있어서는 선뜻 용기 내기가 쉽지는 않다. 자기만의 기준이 있으면 작품 선택에 어려움이 없겠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내가 과연 이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예술품을 보는 시각은 너무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에 또한 정해진 답이 없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그림을 구매해 본 사람이라면 다른 작품들도 갖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쉽다. 그림을 보는 안목이 싹트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들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미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그림에 더 가깝게 다가간다.
그림을 구매하게 될 때 작품을 소장한다는 표현을 한다. 그리고 그림을 구매하는 사람을 컨슈머(consumer, 구매자)라고 하기보다는 컬렉터(collector, 소장자)라고 말한다. 조금은 다른 표현,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미술 작품에는 작가의 시간, 노력, 생각이 담겨 있어 일반적인 물건을 사는 경우와는 다르다. 이러한 예술적 가치를 가격으로 책정하기도 어렵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부여된 작품 가격을 믿고 결정한다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림을 취한다는 것은 작가의 지나온 시간과 작업을 함께 공유하고 느끼는 것이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작품에 내재된 예술적 가치를 느끼게 될 때 작품 소장으로 이어지게 되고 작품을 작가만큼이나 아끼는 진정한 컬렉터가 될 수 있다.
컬렉터 중에는 작가의 경제적 지원을 위해 작품을 구입해 오다가 작품을 보는 안목이 생겨 차츰 더 많은 작품을 소장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작가가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 넣는 역할을 하면서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기분을 느끼며, 좋아하는 작품들을 하나둘 수집하게 된다면 이 또한 그림 사는 재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최근에는 투자 목적으로 미술 작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실제로 투자 수익을 기대할 만한 작품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작가의 작품으로 고가의 작품들이 많아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다. 또한 그림이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될 뿐 미술 작품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므로 지속적인 구매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막연히 투자를 위해 그림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주 접하면서 작품을 보는 안목을 키웠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한 전시를 보면서 여러 작가들에 대해 알아갈 필요가 있다. 내 마음에 위안을 주는 작품이 보인다면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범위에서 구입해 보고 한 두 점씩 모으다 보면 나의 성향과 취향에 맞는 작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술 작품이 주는 힘은 체험하기 전에는 그 위대함을 잘 모른다. 하지만 그 느낌을 한 번 알게 된다면 그림 사는 재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어느 사이에 컬렉터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유가림 유휴열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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