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형 한옥마을'에서 유원지로 전락, 사행성 오락시설 등 성업
한옥 보러 왔지만 본 것은 점술집·오락실 뿐, 관광객들 아쉬움 가득
“한복 입어보실래요? 싫으면 우리 개화기 옷도 있는데. 와서 입어보고 가요."
지난 15일에 찾은 전주한옥마을. 포근한 날씨에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 사이로 한복대여점 직원의 호객이 끊이지 않았다. 앞을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쉬지 않고 한복이나 개화기 의상을 입어보라고 권했다.
이날 전주한옥마을 일대는 어딜 가든 비슷한 상황이었다. 골목마다 자리한 한복대여점 옆에는 사주와 타로를 볼 수 있는 점술집이 늘어서 있었다. 어느 골목에는 한옥마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점술집만 연이어 4곳이 붙어 있기도 했다. 이곳 모두 관광객이 지나가면 호객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전주한옥마을 공용주차장에서부터 약 100m 남짓한 구간에 있는 사거리는 사격부터 다트 던지기, 풍선 터트리기 등 돈을 내고 게임을 한 후 결과에 따라 경품을 주는 사행성 오락시설이 여럿 있었다.
주변에는 전동차, 오토바이 등 전동이동수단 대여점까지 늘어섰다. 몇 년 전부터 전동이동수단을 대여해 주는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전주한옥마을 곳곳에 전동이동수단과 보행자가 함께 거리를 누비는 상황이다.
전주시는 '전주시 보행 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조례'에 따라 주말이면 전주한옥마을 일대를 '차 없는 거리'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평일에는 적용되지 않아 관광객이 많은 날에는 거리마다 전동이동수단과 보행자, 자동차 등이 뒤섞여 서로 부딪힐 뻔한 아찔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전주한옥마을의 대표 관광 명소인 경기전·전동성당 인근으로 가 보니 맛의 고장 '전주'와 관계없는 길거리 음식을 파는 점포가 많았다. 울산 쫀드기부터 일본식 찹쌀떡, 경주 십원빵 등 국적과 지역을 넘나드는 점포들이 가득했다. 이곳 또한 한복대여점과 점술집, 전동이동수단 대여점, 사행성 오락실이 군데군데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 지난 몇 년간 전주한옥마을 고유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단순 상업지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전주한옥마을 일대인 전주시 교동·풍남동은 과거 전주의 중심지였으나 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며 개발이 막히자 발전이 침체해 90년대 후반 슬럼화가 진행됐다.
전주시는 지난 2002년 ‘전주한옥보전지원조례’를 제정해 본격적으로 한옥마을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계획은 도시 한옥이 밀집돼 있고 실제 주민이 살고 있는 한옥마을 일대를 보존 및 정비해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데 주안점이 맞춰져 있었다.
2003년 전주한옥마을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전체 구역 중 95.6%를 차지하는 28만 5211.3㎡가 주거지역으로 설정돼 있었다. 전체 구역 중 상업지역은 2.8%에 불과했다.
한옥마을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각종 규제가 가해졌다. 과거 전주시는 한옥마을 내에서 전통음식만 판매할 수 있게 하고 한옥마을 전경을 해치지 않도록 층수 또한 1층으로 제한하는 등 규제를 마련했다.
그러나 최근 전주시 행정은 과거와 반대로 가고 있는 모양새다. 전주시는 2022년 전주한옥마을 활성화를 목적으로 대부분의 규제를 완화했다. 한옥마을 내에서 일식, 양식, 중식 등 다양한 국제 음식을 팔 수 있게 허가했다. 또 태조로와 기린로 일부 대지에만 건축물 층수 제한도 2층으로 확대했다.
전주한옥마을의 정취를 기대하고 온 관광객들은 다소 아쉽다는 반응이다. 고즈넉함을 기대했지만 상업화되면서 시끌벅적해지고 전주한옥마을의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
충청도에서 왔다는 한 모녀는 “주차장에서 걸어오다 보면 바로 오락실이 보인다. 한옥을 보러 왔는데 한옥과는 관계없는 오락실이나 점술집만 가득하다. 전주한옥마을을 보러 온 거지, 이런 걸 보려고 온 건 아니다”고 전했다.
전주한옥마을에 처음 방문했다는 한지선(32) 씨는 “어린이들은 오락실이나 이런 상업화된 게 볼 것도 많고 좋아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전주한옥마을만이 가진 특유의 멋을 해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는 전주한옥마을 내 즐길 거리가 부족한 만큼 이러한 상점이 필요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딸과 함께 전주한옥마을을 방문했다는 정진희(45) 씨는 "어차피 여기 관광객으로 왔으니 뭔가 놀거리는 필요할 것 같다. 생각보다 할 게 없어서 당황했다"면서 "그나마 오락실이나 점술집 등이라도 있어 다행이다"고 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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