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국민을 마구잡이로 죽인 보도연맹 학살사건 모티브
참혹한 현실 속 단짝에서 적이 된 송애와 용실의 비극적 상황 풀어내
진심을 눌러 담은 목소리로 새로운 희망을 건네는 염연화 장편소설 <지워진 사람들>(문학세상)이 출간됐다.
‘지워진 사람들’은 한국 전쟁 발발 직후 좌익 척결이라는 미명하에 일어난 국가가 국민을 마구잡이로 죽인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다룬다.
소설은 단짝 송애와 용실의 삶을 통해 사상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친구조차 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 상황을 보여준다. 송애는 아버지와 어머니, 하나밖에 없는 동생 만석까지 군인들에 의해 떠나보낸다. 용실은 인민군에 의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게 되고, 하나 있는 언니는 충격으로 실성하게 된다.
정반대의 상황을 맞닥뜨린 송애와 용실이 겪는 내밀한 상처와 국가폭력의 아픔, 인물들의 윤리적 딜레마를 서늘한 문장으로 날카롭게 표현했다. 특히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가족을 향한 부채감, 증오와 연민 등 복잡한 감정들이 섞이며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보도연맹 학살사건은 국가가 좌익세력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방공단체 보도연맹에서 벌어졌다. 한국 전쟁 발발 직후 좌익 척결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당시 사건으로 죽임 당한 사람의 수가 최소 20만 명에 이른다. 작가는 역사적 기록들을 토대로 수많은 관련자 인터뷰를 진행했고, 치밀한 현장취재를 거쳐 과거사를 조명한다.
“꼭꼭 숨어라, 꼭꼭 숨어라, 용미 언니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울렸다. 숨어 버린 사람들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이 모든 일이 정말로 숨바꼭질이라면…. 산에 숨은 아버지와 외삼촌을 찾고, 영천제 억새밭에 숨은 외숙모를 찾아내고, 지서 창고에 숨은 강수와 어머니까지 모두 찾아내 숨바꼭질을 끊어 낼 수 있다면….”( p.151)
참혹한 현실 속에도 일상을 살아낸 송애와 용실의 인간적인 면모와 역경 속에서도 그들이 꿈꾼 안타까운 사랑과 희망을 가슴 아프면서도 핍진하게 복원한다.
전남 보성 출생인 염연화 작가는 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으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두근두근 우체통> <소똥경단이 떼구루루><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를 만나러 왔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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