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정치판을 말한다 - "국민 정치 불신 씻어내려면 제왕적 대통령제 바꿔야"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에 소재한 김원기 전 국회의장(74)의 사무실을 찾았다. 서울 교직원공제회관 15층에 위치한 사무실은 지난 1980년대 초반 김 전 의장이 열었던 한백(한라에서 백두까지)정치경제연구소로, 지난 1997년 김 전 의장이 이끌었던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했다. 70대의 고령이지만 건강은 여전했다.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기자의 질문 하나 하나에 열정을 쏟아 답변하는 등 시종일관 진지했다.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2시간 가량 진행된 대담에서 김 전 의장은 국민의 정치변화 요구에 대응치 못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반성을, 한편으론 원론 정치인으로서 후배 정치인에게 따끔한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이날 대담은 지난해 1026재보선 결과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변화 요구를 원로 정치인은 어떻게 보고 있고, 진단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자리였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2012년 정국을 원로 정치인의 눈을 통해 가늠해 보기 위해서 였다. 그는 평민당과 민주당 창당 및 분당, 그리고 열린우리당 창당과 민주당 재통합 등 1980년대 이후 급변했던 야당 정치사의 한 중심에 서 있었다. 과거 열린우리당 창당의 산파역을 맡기도 했던 그는 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재야시민사회단체 등 제 세력의 대통합을 주창하며 정치권에 등을 돌린 민심을 수습해 왔다.그는 이날 대담에서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이 자칫 '마녀 사냥식'으로 진행되는 것을 경계했다.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논리에 함몰돼 지켜야 할 가치를 모두 잃게 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였다. 이어 국민들의 변화요구 현상에 대해서는"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극에 달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고,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이에 대한 1차적 책임은 정치인에게 있다고 했다. 더불어 국민의 정치 불신을 확대시키기만 언론과 전문가들에게도 책임을 물었다. 정치 불신에 대한 정확한 원인 분석과 진단없이 정치의 이면만을 부각시켜 국민들의 불신만을 키웠다는 것이다.이에대한 해법으로 정치권력의 변화를 강조했다. 모든 분열과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치 상황과 다소 동떨어진 답변인 듯 했으나,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정치판에서 29년간 활동하면서 그가 찾아낸 해법이었다. 김 전 의장은 국민의 정부 시절인 지난 2001년부터 지금까지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혁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한꺼번에 치러지는 해로, 올 한해 정국은 숨가쁘게 돌아갈 것 같습니다. 한편으론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변화요구도 그 어느때 보다 강한 것 같습니다.△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매우 큰 것은 사실입니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이죠. 국민들의 거센 변화 요구와 시민사회세력의 등장 등 우리의 정치환경이 크게 변했습니다. 이로인해 올해 정국은 요동칠 것입니다. 올해는 우리 정치의 전환기가 될 것입니다. -국민들의 정치 불신,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미래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지 못했던 게 주 원인이죠. 더불어 국민들에게 정치를 인식시켜준 통로, 즉 정보전달체계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국회는 모든 이해관계가 쏟아져 들어와 회의장내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점을 찾아가는 용광로와 같습니다. 그런 점이 생략된 채 정당계파간 싸움하는 모습만 국민들에게 전달된 것이죠. 언론이나 전문가들에게도 책임을 묻는 이유입니다. -정치개혁이 필요한 시점인데요.△인기를 얻기 위한 발언을 하자면'정치인들은 무조건 반성하고, 민심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고 말해야겠죠. 그러나 이 것이 꼭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정치 원로라면 이런 말은 해야 됩니다.사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나 독재시대때 보다 지금이 더 심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는 과거보다 훨씬 발전한게 사실입니다. 제가 볼때 우리 정치의 부패지수나 투명성은 선진국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고, 적어도 일본 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국민들의 정치변화의 요구가 세대인물교체론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사람이 바뀌면 지금까지의 정치형태가 바꿔질 것이 아니냐'는 기대이죠.'선거에서 본때를 보여주고 싶다'는 국민들의 본능이 강하게 나타난 것으로 해석됩니다.그러나 인물론은 선거때마다 예외없이 강조됐습니다. 과거 DJ(고 김대중 대통령)의 야당 총재 시절에도 40%씩 현역 교체가 이뤄졌지만 인물교체 요구는 계속됐습니다. 외국의 경우, 계속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나라는 별로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경우, 국민적 불신이 크기 때문으로,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다소 비정상적입니다. 이는 사람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바꿔야 할 제도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바꿔야 할 제도라는 게 무엇인가요.△MB정부가 실정을 하더라도 당 지지도는 한나라당이 민주당 보다 좋습니다. 다소 이해하기가 어렵겠지만, 이는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 기준이 대권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정당이 내건 정책에 대한 평가 보다는'유력 대권후보'의 존재여부로 지지도가 좌우되고 있습니다. 정권을 잡을 수 있느냐가 모든 가치평가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죠.저는 권력의 집중화, 즉 대통령 한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모아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합니다.-최근 도내에서 장세환 국회의원이 호남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여야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 선언을 하셨는데, 소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제 자신의 불출마 선언은 정권재창출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국회의장까지 지낸 사람이 정권을 뺏겼는데 다시 국회에 나선다는게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현역 불출마 선언과는 상황이 다소 다르죠. 요즘에는 다선 현역의원의 불출마가 미담이 되기도 하는 것 같은데, '정치를 오래한 사람은 떠나라'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현상만은 아닙니다.-과거 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야권 대통합 등을 통한 정치개편을 주도해 왔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여야의 쇄신작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한나라당은 개혁세력이 탈당하고 재창당 수준의 쇄신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부끄러운 유산과 단절하지 않고는 국가경영을 책임지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절차나 수순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전혀 새로운 정당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 조치가 나올 것입니다. 특히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 때문에 대선 이전에 '이명박 정권을 만든 그런 정당이 아니다'라는 식의 당의 간판을 바꾸는 상황이 올 것으로 봅니다.-그렇다면 민주통합당은 어떻습니까.△민주통합당은 생각보다 통합이 잘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올 1월 경선을 통해 새로운 지도부가 등장하면 그동안 당 밖에 있던, 그리고 정권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던 인사들이 참여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에 입당하지 않았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두관 경남지사 등을 비롯해 지식인, 시민사회 운동가 등 개혁적 성향의 인사가 민주통합당에 참여할 것입니다. 그러면 통합적 내용은 더욱 충실해 질 것입니다.-진보정당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될 것 같습니까.△진보정당과는 통합방향으로는 진전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것은 서로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권교체를 목표를 모든 세력이 나설때는 의미가 있지만, 노선과 지지기반, 그리고 정책이 달라 당장의 선거에서는 유리할지 몰라도 선거 이후에는 부작용이 많습니다. 더구나 정당정치의 보편적 원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민주통합당의 411 총선 성적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이 현재 민심의 흐름을 대폭 수용하고 있어 크게 승리할 것이라고 봅니다.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이겨야 대선을 유리하게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역대 선거를 보면, 앞선 총선에서 승리하면 대선에서는 상황이 바뀌기도 한데요.△총선에서 걸러진 민심이 대선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타당한 후보, 국민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후보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하면 그동안'민주당은 불임 정당'이라는 불명예를 씻어낼 수 있어 국민들에게'정권창출 가능성이 있다'라는 믿음을 주게돼 오히려 대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올 12월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박근혜 후보를 이길 후보가 민주통합당내에 있습니까.△일단 그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현재로서는 야권의 대선후보군 가운데 변수가 많기 때문에 누가 유력한지를 판단하기가 힘듭니다. 후보군으로는 현재 당 소속인 손학규 전 대표를 비롯해 정동영정세균문재인 고문이 있죠. 여기에 자치단체장인 김두관 경남 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약체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적극 지원하면서'킹 메이커'로 불리기도 했는데, 인물을 평가하는데 남다른 비법이 있습니까.△당시는 DJ가 이인제 후보를 밀었죠. 이인제 후보는 권력과 당의 주류세력 모두로부터 지원을 받은 터라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 한나라당이 내세웠던 이회창 후보와 한판 승부를 벌일 수 있는 가능성을 먼저 분석했습니다. 이회창 후보와 싸워서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인물로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습니다.-어떤 점 때문에 그랬습니까.△노무현 전 대통령은 먼저 대중성과 과거 행적에서 보여준 도덕성,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줄 아는 잠재능력을 갖췄죠. 저는 그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고, 결국은 제 판단이 맞았습니다.-현재 거론되고 있는 후보군에서도 그런 잠재능력을 갖춘 인물이 있습니까.△과거처럼 제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이지만, '이 사람이 당선 가능성이 높다'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있습니다.-정치권에서는'국민들이 대통령을 정치권 밖에서 찾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염두에 둔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십니까.△안 원장의 과거 행적을 보면 젊은이들로부터 호감을 얻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일부에서는 국가경영을 맡길 정도로, 국가지도자로서의 역량을 확인시켜 준 일이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그렇지만 미국의 오바마처럼 의외의 인물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안 원장이) 결심만 하면 가능성은 있는 사람이라고 보고 있습니다.'국민 다수의 기대를 받고 있다'는 점, 이 것이 중요합니다.-박원순 서울시장이 후보시절에 김 전 의장을 방문했다는데, 무슨 말을 나눴습니까.△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정당정치'를 강조했죠. 현재의 의회민주주의 제도하에서 정당정치를 대체할 시스템은 없다. 따라서 큰 정치를 하려면 무소속으로 해서는 안되고 정당과 함께 해야 한다. 더구나 국민의 정치불신이 극단에 달했기 때문에 당선돼서 서울시정을 이끌려면 정당과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죠.-끝으로 지역발전에 대한 문제인데, 전북발전의 희망은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먼저 한미FTA로 농촌, 특히 축산분야의 어려움이 클 것입니다.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죄송스러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한미FTA는 세계의 흐름상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 와 있습니다. 다만 피해의 최소화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현재 전북은 새만금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해 답답하지만, 다소 시간은 걸리더라도 장차 전북도의 효자노릇을 할 것입니다. 새만금은 현재 국가차원의 비전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유일한 땅입니다. 따라서 새만금은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서해안 발전의 거점도시로 발전시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기본이 갖춰져 있어 전북발전의 희망을 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