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정대 어떤 조난 사고 있었나?
한국 원정대의 고산 사고는 히말라야 도전이 본격화한 1970년대부터 끊임없이 발생했다. 1971년 김호섭 대장과 그의 동생 김기섭 대원이 등반한 히말라야 8,000m 이상14개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마나술루(해발고도 8,163m)에서 일어난 사고가 그 시작이다. 이들은 7,600m까지 올라가 캠프를 설치하는 데까지 성공했으나 갑자기 돌풍이 몰아쳐 김기섭 대원이 빙하 틈으로 떨어져 숨지고 말았다. 정상 등정은 그대로 좌절됐으며 김 대원의 사망 사고는 한국 원정대가 히말라야에서 당한 사상 최초의 조난으로 기록됐다. 이듬해인 1972년에는 한국 산악계에서 가장 큰 사고가 불거졌다. 故 김기섭을 떠나보낸 김정섭, 김호섭 형제는 다시 마나슬루를 등정하기 위해 원정대를 조직했다. 대원 6명과 셰르파 12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6,500m에 캠프를 차리고 휴식하다가 새벽에 거대한 눈사태를 만났다. 텐트 6동이 순식간에 쓸려 내려갔고 일본인 1명을 포함해 대원 5명과 셰르파 10명 등 모두 15명이 숨지는 참사가 빚어졌다. 이 사고는 1937년 낭가파르밧에 도전한 독일 원정대가 눈사태로 대원 7명과 셰르파 9명을 잃은 이후 당시까지 두 번째로 인명 피해가 컸다. 한국은 고산 등반의 개척자 역할을 한 김정섭 대장과 동생 김기섭, 김호섭 대원이 잇따라 잃는 비운을 겪은 셈이다. 세계 최고봉인 히말라야 에베레스트(8,848m)에 최초로 발을 들인 한국인도 비운의 산악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김영도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의 고상돈 대원은 1977년 세계에서는 58번째이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했다. 이후 고상돈은 1979년 이일교, 박훈규 씨와 함께 한국 최초로 미국 알래스카에있는 매킨리(6,194m)를 등정하고 하산하다가 추락했다. 박훈규 대원만 중상을 입은 채 살아남아 '고상돈 기념사업회'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산악의 날'은 9월 15일로 고상돈 대장이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날을 기념하고 있다.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한국인도 히말라야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지현옥 대장은 1999년 히말라야 14좌 가운데 자신의 네 번째인 도전이었던 안나푸르나(8,091m)에 오른 뒤 "정상!"이라는 짧은 교신을 마치고 하산하다가 해발 7,800m 지점에서 실종됐다. 지 대장은 1993년 대한산악연맹 원정대 대장으로 최오순, 김순주 대원과 함께 꼭대기를 밟은 한국 여성 최초의 세계 최고봉 등정자였다. 여성으로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도전한 고미영 대장도 등반 과정에서 생명을 잃고 말았다. 고 대장은 스포츠클라이밍 선수에서 고산 등반가로 변신하고서 불과 2년9개월만에 히말라야 14좌 가운데 11개 봉우리에 올라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2009년 12번째 봉우리인 낭가파르밧(8,125m)을 등정하고 나서 하산하다가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김재수 대장은 등반 파트너이던 고 대장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함께 오르지 못한 나머지 8,000m 이상 봉우리를 대신 모두 올라 14좌 완등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