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혁신 방법론, 전북형 '리빙랩'을 찾아서] ② 세계 리빙랩 포럼 (상) 다양한 사례 속 빛난 지역성
전 세계 주목을 받는 리빙랩 사례와 방법론이 쏟아진 자리에서 오히려 지역과 전북 리빙랩의 가능성을 봤다.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열린 ‘오픈 리빙랩 데이즈(open livinglab days) 2019’에서다.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 전 세계 리빙랩 전문가들이 모여 리빙랩 사례·지식·방법론과 경향을 공유하는 국제 포럼이었다. 전문가들은 ‘로컬(local·지역)에서 글로벌(global·세계)로의 확장성’에 주목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들의 코크리에이션(co-cration·공동창조)을 강조했다. 강연자·청자 구분 없이 모두가 참여자였던 포럼은 그 자체가 거대한 공동 실험실, 즉 리빙랩의 현장이었다. “전 세계 리빙랩 전문가들이 모인 건 우리가 ‘어벤져스’처럼 세상을 바꾸거나 신기술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세상 곳곳엔 다양한 문제가 있고, 이를 시민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죠. 다른 지역에선 유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영감을 얻고, 조건이 맞는다면 협업하려고 참가했어요.” 지난 3일 ‘오픈 리빙랩 데이즈’에서 리빙랩 프로젝트 전문가 알레타 푸롤라(Aletta Purola)가 한 말이다. 전 지구적인 사회 혁신을 목표로 리빙랩 전문가들의 교류·연대·확장을 꾀하는 것이 목표지만 결국 이는 지역민의 자생력, 지역으로부터의 힘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다. 올해는 ‘로컬에서 글로벌로의 확장(Scaling Up from Local to Global)’을 문패로 내걸고 지역 문제 발굴과 연대·확장 방법에 주목했다. 농촌 마을에서 순환 농업 경제 구축을 실험하는 파나지오티스 쿠투디스(Panagiotis Koutoudis) LIVE RUR 선임 프로젝트 관리자는“오픈 리빙랩 데이즈는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로 리빙랩이 어떻게 현실화 되는지 함께 배우고 공유하는 자리”라며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내려온 정책은 지역에 녹아들지 못했지만 리빙랩 맞춤형 개발로 각 지역의 발전 동력을 만든다. 다양한 유형을 연구해 농촌 경제의 다각화를 이루고자 한다”고 말했다. LIVE RUR 프로젝트는 가족 농장에 디지털 농업을 접목하는 슬로베니아, 1인 농업인이 활발한 체코의 소기업 파트너십 연계 전략 기획, 유럽 상당수의 과일·채소·꽃을 생산하는 스페인에서의 판매 단계 단순화·자영업 및 여성 농업인 활성화 등 유럽 국가의 13개 농촌 마을 실정에 맞는 리빙랩을 진행하는 것이다. 다양한 농촌 모델을 만들고 결합해 유럽 농업 경제의 다각화를 꾀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올하 본다렌코(Olha Bondarenko)가 속한 도시 개발 연구소(Urban Development Institute)의 경우는 리빙랩 사업 수행자가 아닌 중간 매개자 역할을 했다. 이들은 “리빙랩 지속 가능성의 관건은 각 이해 관계자들의 균형적인 참여”라며 “리빙랩 최종 사용자와 중간 이용자 및 공급자, 리빙랩을 가능하게 할 전문가, 대학 분석 연구원, 민간기업, 자치단체 등이 모두 맞물려 성과를 내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 [인터뷰]‘오픈 리빙랩 데이즈’에서 만난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 -포럼에서 지방의 작은 실험이 전 세계 움직이는 것 눈으로 봐 -농도·문화·사회적기업 등 전북 특성 살린 리빙랩, 선도 가능 “전북 특징이 잘 드러나는 리빙랩을 한다면, 전북이 세계를 선도할 수 있습니다.” 리빙랩 사업이 그동안의 지역 발전 정책·사업과 차별화되는 점은 지역민들의 자발성·역량을 기반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정책이 커질수록 중앙정부·국가가 아닌 시민 역량 강화·인프라 구축 등 지역의 역량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시가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시민들이 도시 고유의 특성을 잘 발전시켜 나갈 힘이 있다면, 도시의 미래, 다음 세대를 위한 브랜드 구축, 먹거리 산업 발전, 일자리 창출 등을 자체적으로 만들게 되는 진정한 지방 분권이 오는 것. 수년간 각국의 리빙랩 사업을 끌어온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등 리빙랩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번 ‘오픈 리빙랩 데이즈’에서 박지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 사무관과 함께 가장 주목할 만한 분야인 ‘Top Papers selected’에 초청된 성지은 연구위원. 포럼 장에서 만난 그는 “그리스에서 전북·전주의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작은 도시의 조그만 실험들이 전 세계를 향해 발산하는 사례들을 확인하면서다. 농도이자 풍류의 고장인 전북은 농업뿐만 아니라 맛, 멋, 흥, 자연경관을 아우르는 문화 콘텐츠가 있다. 사회적 경제 조직과 소셜(social) 네트워크 등이 활성화된 것도 강점이다. 이를 지역문제 해결에 접목한다면 전북만의 리빙랩을 만들 수 있다. “포럼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된 분야가 파킨슨, 다운증후군, 치매 등 특수 보건의료와 노인 돌봄,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스마트시티에요. 아무래도 최종 사용자가 직접적으로 효과·변화를 느끼는 게 가장 큰 분야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전북이 또 강점을 가진 겁니다.” 성 박사는 “전북의 강점인 농업 분야는 아직까지 깊게 연구되거나 조명되지 않았다”며 “지역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지역만으로 한정짓지 않고 보편성과 확장성을 어떻게 확보해 나갈 것인지 방향성을 정하자. 그리고 단계적으로 진행한다면 그 성과 창출은 물론 얼마든지 국내외를 향해 발신할 수 있다”고도 조언했다. 해외에서 한국 리빙랩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올해는 대구, 부산, 인천에서도 사례 발표에 나섰다. 특히 성 연구위원은 “한국의 중앙 행정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포럼 대표 발표자로 ‘한국 사회문제 해결 연구 개발을 위한 리빙랩 활동’을 소개한 것은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리빙랩의 핵심인 톱다운(Top down·하향식)이 아닌 바텀 업(Bottom up·상향식) 정책 구조는 전통적으로 유럽이 강했다. “중앙집권 구조였던 한국이 최근 다양한 정책에 리빙랩을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여전히 기술 중심의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상향식 정책 집행 방식으로 눈에 띄게 변모하고 있어요. 이번 포럼에서 행정부처로서는 유일하게 한국이 우수 사례로 발표하는 것은 한국 리빙랩이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어서 성 연구위원은 “리빙랩 사업이 규모가 큰 게 능사가 아니다. 방향성과 다음 단계가 없다면 실패한다. 한국에서도 지역 간 연계와 함께 스케일 업(scale up)을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은 지역마다 동시다발적으로 리빙랩에 뛰어들었다. “서울, 전북, 광주, 대구, 부산 등 각 지역에서 점 조직으로 리빙랩 활동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비슷하게 시작해 규모나 수준도 비슷한 상황에서 특성 없이 예산만 투입해 사업을 진행하다가는 지역별 경쟁 체제로 갈 우려가 있습니다. 각 지역의 고유한 리빙랩을 구축하는 것이 선결 과제며, 이후 지역 간 연계해 선을 만들고, 각 선들을 엮어 규모 있는 면을 만드는 과정이 앞으로 한국 리빙랩이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그리스 테살로니키=김보현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