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속의 빈곤, 지역음악
김은총 이상한계절, 싱어송라이터 전주는 무수히 많은 축제로 1년을 가득 채우는 축제의 도시다. 축제의 도시, 전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많은 축제들이 전주의 곳곳에서 펼쳐진다. 국제영화제, 세계소리축제, 비빔밥축제, 한지문화축제 등 전주하면 떠오르는 축제들부터 가게맥주문화를 소개하는 가맥축제와 책의 도시로 발돋움하는 독서대전에 이르기까지. 이제 전주는 도시를 상징하는 소재들을 발굴하고 축제화하는 것에는 가히 전국 최고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나의 지역에서 음악하기의 여정도 전주의 축제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이상한계절의 활동은 작은 카페와 클럽에서 시작되었고, 직접 기획을 통해 정기공연과 미니콘서트의 형태로도 관객들을 만나왔지만 전체 커리어를 돌아보면 월등히 축제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엿한 무대와 공연료를 제공받는 축제 무대는 지역뮤지션이 소규모의 정기공연에서 얻을 수 없는 확실한 보상이 있어서, 음악을 영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공적인 축제에 이름을 올리고, 일정한 출연료를 받는 일은 지역뮤지션으로서 나의 음악이 굳건히 지지받는 안정감을 주었고 음악적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축제를 통해 얻는 수익 역시 작업실을 꾸리고, 음향장비를 구매하고, 앨범을 내기까지 자립적 음악생산에 필요한 전 과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나의 사례만 보더라도 지역축제는 한 지역뮤지션의 음악을 지탱하는데 음악적 자존감과 비용적 도움이라는 꽤나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축제공연이 양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것과는 달리 지역뮤지션으로서 갈수록 빈곤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정기공연으로, 한 뮤지션이 긴 호흡을 갖고 음악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무대다. 전주에 지역음악 정기공연의 생태계가 어엿하게 존재했던 것은 아니지만, 몇 안 되는 소수의 공간이라도 대관비용의 부담 없이 음향장비와 엔지니어를 갖추고 언제든 관객을 만날 수 있게 준비된 무대는 지속적이고 든든한 활동기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점차 줄어드는 유료관객과 비어가는 관객석, 오랜 시간 버팀목이 되어주던 음악전문공연장이 사라지는 현실은 빙하가 녹는 과정을 어쩔 수 없이 지켜봐야하는 북극곰이 된 기분이다. 물론 동물원에서도 북극곰은 살아 갈수 있겠지만 본디 살아온 북극의 빙하에 비할 수 없듯이, 이젠 더 이상 정기공연에서 이것저것 눈치 보지 않고 맘껏 자작곡을 풀어내거나, 가까이 나누는 교감을 통해 충성도 높은 팬들을 얻는 경험은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불러온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고, 탁월한 음악이나 마케팅을 통해 강력한 티켓파워를 갖지 못한 지역뮤지션의 책임도 있겠지만, 자기 음악을 마음껏 선보일 수 있는 정기공연 무대와 연계 홍보 채널의 부족에서 근본적인 진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음악의 산파역할을 감당할 공간과 정기공연, 그리고 홍보채널이 없다면 지역에서 새로이 음악하려는 이들은 탄생하기 어렵고, 지역음악은 계속해서 정체되고 경쟁력을 잃을 것이다. 전주가 풍요로운 축제의 도시가 되어가는 동안 축제의 한편엔 늘 지역뮤지션이 있었다. 하지만 지역뮤지션이 어떻게 음악활동을 시작하고, 어떤 방법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은 부족했고 빈곤했다. 이제라도 지역뮤지션의 등용문이자 요람 역할을 해주는 정기공연 무대를 위해 근본적인 지원을 해야 할 때다. 그랬을 때 경쟁력 있는 지역음악은 탄생할 수 있고, 질적으로도 더욱 풍성한 축제의 도시 전주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