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수 교수의 문화산책] 루이 14세 ③ 모든 소문을 잠재우고 태양왕이 되기까지
루이 14세는 5살에 왕위에 올라 72년이라는 유럽 왕실 사상, 최장기 집권을 하며 절대왕권을 확립하였다. 봉건제를 바탕으로 한 귀족 중심의 지방 자치제였던 프랑스를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 집권 체재의 나라로 제도를 재정비하고 강력한 왕권을 확립해 나갔다. 그렇다면 프롱드의 난에서 왕실의 권위를 무너뜨린 귀족들을 순한 양처럼 길들이고 유럽 최고의 절대군주가 된 루이 14세만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첫째, 베르사유 궁, 그의 홈그라운드로 귀족들을 끌어들이다. 모든 운동경기에는 홈그라운드에 이점이 분명 작용한다. 루이 14세도 이 점을 십분 활용하였다. 그는 귀족의 권력을 축소시키고 왕권중심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 귀족들을 궁전으로 끌어들였다. 바로크를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절대왕권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은 귀족들이 머물고 싶은 매력적인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베네치아 거울 장인이 프랑스로 망명하면서 73m 길이의 거울의 방이 완성되었다. 거울 제조법이 국가 기밀일 만큼 거울이 귀하던 시대에 이 방은 유럽의 왕실과 귀족들의 부러움을 샀고, 루이 14세는 화려함의 극치인 베르사유 궁에서 다양한 연회를 열며, 귀족들에게 볼거리와 놀거리를 제공하였다. 귀족들은 어느새 베르사유만의 특별한 문화에 빠져들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벌어지는 성대한 행사에 참석하려면 자신의 영지가 아닌 베르사유 궁에 살아야만 했다. 베르사유 궁에 거주하려면 국왕에게 잘 보여야 했고, 자연스레 자신이 다스리는 지방의 영지 관리는 소홀해졌다. 베르샤유 궁은 단순히 사치를 위한 궁전이 아니라 태양왕 루이 14세의 정치적 목적으로 십분 활용되었다. 둘째, 차별을 통제 수단으로 이용해 귀족들을 길들이다. 루이 14세는 사람을 차별하고 불편감을 주는데는 선수였다. 신분이 낮은 지위의 귀족일지라도 왕을 감동시키면 높은 관직과 큰 이윤이 남는 일을 맡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자, 귀족들은 왕에게 잘 보일 수 있다면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게 되었다. 왕에게 잘 보이려면 일단 가까이 있어야 했기에, 왕의 용변을 처리하는 일이나 변기를 들고 다니는 일을 귀족들이 앞 다투어 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하인들이 할 법한 일들인데, 왕의 변기를 들고 시중드는 귀족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프롱드의 난에서 보였던 귀족들의 위세가 완전히 꺽인 것은 확실했다. 반대로 높은 지위의 귀족일지라도 왕의 눈 밖에 나면 베르사유에 더 이상 머룰 수 없게 되었고, 이것은 궁정 문화와 모든 이권 사업에서도 배제된다는 뜻이었기에 귀족들은 반란은 꿈도 못 꾼 채, 왕의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루이 14세는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모든 일과를 귀족들이 시중들게 하였다. 자신의 사생활을 전부 공개하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귀족들을 통제하기 위해 17세기 판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스스로 되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극 중 트루먼은 자신의 삶이 대중에게 방영되는 것을 몰랐고, 알고 난 후에도 괴로워했다. 반면, 루이 14세는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상품화하여 정치적으로 활용하였고 집권 후, 숨을 거둘 때까지 미드 시리즈물처럼 자신의 삶을 공개하며 기획, 출연, 연출까지 하는 종합 예술인의 삶을 살았다. 윌리엄 새커리가 풍자한 루이 14세의 모습. 마네킹에 입혀진 왕의 복식, 복식을 착용하지 않은 70대 루이 14세의 초라한 모습, 복식 착용 후, 루이 14세의 모습(왼쪽부터). /권혜수 교수 제공셋째, 이미지 메이킹으로 태양왕이 되다. 그는 복식을 통해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감추는데 귀재였다. 영국의 소설가 윌리엄 새커리는 ‘왕의 권위가 미용사와 디자이너에 손에서 만들어진다.’라고 언급하며 루이 14세를 풍자했다. 이 풍자화는 작은 키. 대머리, 배가 불룩 나온 앙상한 다리의 노인에서 풍성한 가발과 화려한 의상으로 자신의 단점을 보완한 루이 14세의 모습을 그렸다. 그는 남성 최초로 하이힐을 신을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하이힐과 가발을 이용해 작은 키를 훨씬 커 보이게 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나이가 들면서 초라해지는 외모를 화려하고 웅장한 바로크 복식을 활용해 태양왕의 이미지를 굳건히 하였다. 또한 문화예술의 파급력을 잘 알고 있던 그는 발레 공연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였다. 7세 때부터 부상을 당해 발레를 그만두게 되는 27살까지 매일 2시간씩 춤 연습할 정도로 발레에 열정을 보인 그는 뛰어난 발레솜씨에 공연 기획력까지 갖춰 문화예술공연을 통해 태양왕의 이미지를 확립해 나갔다. 그는 발레 공연 때마다 아폴론신을 연기하며 자신을 태양왕의 이미지에 투영하였고 더불어 귀족층은 항상 태양왕 아폴론에게 무릎을 끓고 절하는 모습을 공연에 넣어 관람하는 이들에게 중앙집권적 절대 왕권을 각인시켰다. /권혜수 우석대 교양대학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