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기에 - 양희선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집에만 틀어박혀 있자니 마음이 심란하고 착잡하다. 바깥바람을 쏘이려고 문밖으로 나오니 이파리들이 파랗게 너울거리며 나를 반긴다. 양지바른 처마 끝에 옹기종기 심어놓은 꽃과 채소들도 싱그럽게 다가온다. 시도 때도 없이 방긋 웃던 핑크빛 제라늄은 그지없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향기만 풍기고 금세 시드는 장미꽃에 비할까? 미색 박명이 무슨 소용이랴. 오래도록 호사한 그 열정을 즐기면 그만인 것을.... 화분에 덩치 큰 수국이 탐스럽다. 아기자기한 꽃들이 한데 어우러져 풍성한 맵시로 가지가지마다 피어났다. 여름 내내 매혹적인 생기를 잃지 않는 꽃, 풍만하고 고결한 그 자태가 요염하다. 들뜬 내 마음도 꽃 따라 예쁘게 가라앉는다. 스티로폼 박스에서 자란 고추와 가지가 주렁주렁 열렸다. 매달린 열매가 갓난아기처럼 여리고 귀엽다. 채소들의 숨결과 내 숨소리가 서로 교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살아 숨 쉬는 게 온 몸으로 느껴진다. 살아 있기에 정이 가고 애착이 간다. 그래, 살아있다는 사실이 소중한 거지! 코로나는 인종차별, 국경차별, 빈부차별, 남녀노소차별, 권력의 차별도 하지 않는다. 분별없는 코로나의 침투력은 전쟁의 살상무기보다 두려운 존재다. 소리 없는 투쟁, 마스크로 입을 막고, 사람과 거리를 두면서, 밥도 같이 먹지 말란다. 살다보니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집에만 틀어박혀 있자니 마음만 뒤숭숭하다. 코로나가 제아무리 극성을 부려도 우리는 꼭 이겨내야 한다. 인간의 능력은 못할 게 없지 않은가? 생의 존엄성이 하찮은 바이러스에 무너질 순 없다. 적을 공격하려면 먼저 적을 알고, 제압해야만 이길 수가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백신과 치료제를 연구 중이니 코로나는 곧 사라지리라 믿는다. 계절은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돌아오는 법. 지난 겨울부터 법석을 떨었던 코로나19는 지구촌을 샅샅이 누비면서 어느새 한여름이 되었다. 인간의 능력이 하늘만큼 높다 해도 자연법칙을 거역할 순 없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순응한다면 예기치 못한 재앙은 없을 게 아닌가? 평화로운 날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장맛비가 그칠 줄 모르고 장대비로 쏟아진다. 큰 피해 없이 지나가야 할 텐데…. 나른한 오후, 움직이는 것이 싫어질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렇다.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갑작스러운 스마트폰의 진동소리에 잠을 깬다.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창문을 연다. 무심코 쳐다본 창문 밖 저 멀리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창문 밖 세상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움직인다는 것은 것은 살아다는 증거구나" 이런 생각은 하나의 상상으로 이어졌다. 창문이라는 틀 안에 보이는 세상에는 움직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가득하다. 지저귀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도 보인다. 하지만 그 사이에 솟아있는 전봇대는 생명체들과 달리, 항상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멈추어져 있다. 양희선 수필가는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길 따라 꿈길>을 출간했으며 자연보호활동 수기 공모에서 가작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