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리뷰]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국가가 두 자녀를 빼앗아 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인 세르비아 출신 스르단 고루보비치 감독의 <아버지의 길>이 던지는 첫 질문이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감독은 집요하게 묻는다. 좋은 부모란, 좋은 국가란, 좋은 이웃이란 무엇인지.
영화 속 아버지 니콜라는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감독은 그가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계속해서 쫓는다.
세르비아의 작은 마을에 사는 두 아이의 아버지 니콜라는 가난에 허덕이는 일용직 노동자다.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의 직장을 찾아가 밀린 급여를 요구하며 몸에 불을 붙인다. 이 일로 니콜라는 사회복지기관에 의해 아이들을 빼앗기고, 돌려달라고 호소하지만 묵살당한다. 결국 그는 물통 하나만 챙겨서 수도 베오그라드 중앙정부로 장관을 만나러 떠난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집에 전기도 끊긴 그에게 아동 최선의 이익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보일러, 장난감, 컴퓨터 등 경제적 충족을 요구한다. 그는 단식으로 이러한 국가의 폭력에 저항한다. 아내는 분신, 남편은 단식, 그들에겐 자신의 진심을 입증할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니콜라는 꼬박 5일 동안 세르비아에서 수도 베오그라드까지 총 300㎞를 걷는다. 고속도로와 숲속을 가로지르며 걷는 그의 옆으로 자동차와 오토바이, 기차의 굉음이 부각된다. 이 소음은 300㎞를 걸어야만 하는 그의 상황과 대비되며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쉴 곳을 내어주는 마트 직원, 차를 태워주는 트럭 운전자, 음식을 건네주는 시민들이 있어 니콜라는 베오그라드까지 갈 수 있었다.
그동안 세르비아 전쟁이 남긴 상흔을 영화로 담아온 감독의 족적을 생각했을 때, 이 과정들은 마치 평화를 갈구하는 모습처럼 비치기도 한다. 빈부 격차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지만, 세르비아처럼 비교적 최근 전쟁을 겪은 나라에서는 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빗나간 과녁>(2001)으로 장편 데뷔한 뒤 <트랩>(2007), <써클즈>(2013)를 연출했다. <트랩>은 세르비아를 배경으로 한 현대판 죄와벌로 불리고, <써클즈>는 폭력의 순환을 통해 인간의 죄의식과 용서를 다룬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아버지의 길>은 폭력의 또 다른 형태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 10분이다. 니콜라는 집으로 돌아오지만, 집안의 세간살이는 사라졌다. 그가 영영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한 이웃들이 모두 훔쳐 간 것이다. 니콜라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의자, 시계, 텔레비전, 인형, 소파, 식탁 등을 되찾아온다. 이 장면을 보며 확신이 들었다. 니콜라라면, 아버지라면 되돌려 놓을 것이다. 모두, 원래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