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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창 비전향 장기수 고광인

“장기수송환문제는 20여년전부터 이미 거론돼 왔습니다.지난 6.15 북남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으로 가게돼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비전향 장기수로 북송을 채 1주일도 남겨 놓지않고 있는 (다음달 2일) 고창출신 고광인씨(66.신림면 가평리)는 평소의 꿈을 이룬데 대해 기쁨과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고씨는 북한으로 불러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북송을 앞두고 아픈 이빨치료를 하기위해 요즈음 매일 병원에 열심히 다니고 있다는 고씨는 “북한에 가면 늦은 나이지만 평생 부족하게 생각했던 사회주의이론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해보고 싶다”며 평소 희망을 피력했다.

 

1953년 고창 방장산등지에서 빨치산활동을 벌이다 56년 7월 우리나라 군경에 의해 체포된뒤 지난 89년 9월 출감하기까지 남한으로 전향하지 않아 반평생을 감옥과 감호소에서 보낸 고씨는 “사상전향강요는 죽음 다음으로 무서운 치욕이었다”며 아픈 과거를 회상했다.

 

고창중학교 3학년에 다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사회주의사상에 매료돼 빨치산활동을 벌였다는 고씨는 “한때 우민화정책으로 많은 국민들이 빨치산은 머리에 뿔난 것처럼 잘못 인식했으나

 

자신들은 구국.독재투쟁과 항미연대 차원에서 빨치산활동을 벌인 것”이라며 국민들의 이해를 당부했다.나아가 고씨는 자신들은 나라와 겨레를 위해 싸웠을뿐이라고 강조했다.

 

“남한에 아버지와 동생등 가족들이 살고 있는데 왜 굳이 가족이나 친인척이 전혀없는 북한으로 가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고씨는 “북한의 실상을 온몸으로 체험해보고 평소 그리던 사회주의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 북송을 결정했다”고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이 과정에서 일부 가족들의 반대가 있긴했으나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꺽지는 못했음을 내비쳤다.고씨는 남북한 주민간 자유왕래가 실시되면 자신도 가족들을 찿아 남한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아직까지 미혼인 고씨는 북한에 가서 좋은 사람 만나면 가정을 이루고 싶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북송을 앞두고 주변을 하나둘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씨는 감옥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몸을 치유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배웠다는 침술로 자신을 찿아오는 상당수 주민들에게 무료로 시술을 베풀어 온것으로 전해졌다.한편 고창군농민회는 북송을 앞둔 고씨에게 23일 환송연을 베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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