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전북일보 편집국장)
선거철이면 빌 공(空) 자 ‘공약’( 空約)을 남발하는 사례들이 많았다. 재원대책이나 실천로드맵 같은 구체성을 띤 공약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실천가능하지도 않은 선심성 정책, 재원대책도 없는 지역개발 시책, 표만 의식한 정책발언, 지역주의와 연고주의에 기댄 선동적 정치선언들도 숱하게 쏟아졌다. 정치인들이 뿜어낸 관행이었다.
대표적인 게 새만금사업이다. 이 사업은 87년 대선때 탄생했다.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도민들의 반발 때문에 전주역 유세가 중단되자 코아호텔로 돌아와 공약으로 제시한 게 새만금사업이다. 그 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시절 담판을 짓다시피 해서 예산을 따내 91년 첫삽이 떠졌다. 법정공방 끝에 대법에서 승소 판결이 났지만 지난 15년간 학습비용 치고는 너무나 값비싼 댓가를 치렀다. 사회적 합의 없이 정치적 계산에 의해 추진된 탓이다.
5.31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지방정치인들의 정제되지 않은 공약들이 봇물을 이룰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좋은 고장 을 만들겠다’거나 ‘ 심각한 교통난 해소’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 ‘농업문제 해결’ 등이 과거 수법을 딴 공약들이다. 교통난은 얼마나 심각하고 예산은 어느 정도 소요되는지, 그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또 언제까지 해소하겠다는 등등의 구체성도 없다. 선거가 끝나면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이는 유권자를 우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후보는 당연히 실천가능한 공약들을 제시하고 유권자는 마땅히 검증하고 감시해야 한다. 시민단체나 언론 역시 그 진실성을 꼼꼼이 따져보아야 한다.
이런 가운데 매니페스토(Manifesto) 운동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운동은 정당이나 후보자가 선거공약을 제시할 때 ‘목표’ ‘우선순위’ ‘예산’ ‘절차’ ‘기간’등의 사항을 수치로 명기해 검증과 평가를 쉽게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형용사로서 매니페스트(manifest)는 ‘명백한’이라는 의미를, 동사로서 그것은 ‘명시 또는 증명하다’는 뜻을 갖는데 집회 등에서는 ‘의견을 발표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후보자들은 선거에서 실천가능한 공약과 분명한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제시하고 검증받아야 한다는 뜻을 함축한다.
손지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제안한 ‘매니페스토 정책선거실천 협약’에 우리나라 5개 정당의 대표들이 이에 서명했다. ‘후보 경선단계에서부터 지원자들에게 매니페스토 공약을 제시할 것을 의무화하겠다’는 대국민 약속도 했다. 후보자들이 좋은 정책을 만들어 제시하고 유권자들이 이를 따져볼 수 있게 하는 정책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한다는 것이다. 각 정당의 대표들이 서명한 약속이니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지만 지켜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지방정치, 지방자치도 중앙정치 못지않게 중요하다. 후보자들은 선거바람이 어디로 불지, 상대방의 약점이 무엇인지에 골몰하지 말고 실천가능한 좋은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런 공약이라면 홍수를 이뤄도 좋다. 그래서 5.31지방선거가 우리지역을 발전시킬 정책과 아이디어의 공연장이 됐으면 한다. 유권자 역시 바람에 휘둘리지 말고 매니페스토 공약을 제시한 후보에게 후한 점수를 줘야 하는 건 물론이고-.
/이경재(전북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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