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조상의 고달픈 삶 '아른아른'
1899년 개항이후 격변의 역사를 거쳐온 군산시. 일제시대 건축물이 곳곳에 산재한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아예 외면하거나 드러내기 꺼려했던 근대역사가 살아 숨쉬는 공간. '일제 잔재를 보존해서 뭐하느냐'는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군산은 깊은 고민에 빠져야 했다. 그만큼 뼈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에, 근대문화유산의 보고인 군산은 관광객들에게 큰 의미를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군산만의 독특한 문화가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치욕적인 식민지배의 상징으로 치부하기 보다, 이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준비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모사업에서 군산시의 '근대역사문화 벨트화사업'이 1위로 선정돼 10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게 된 점은 보존을 통한 교육적 가치에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군산으로 색다른 시간여행은 이 같은 의미를 끌어안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리고 문화유산의 특징을 미리 알고 답사에 오른다면 우리 조상들의 고단했던 삶과 아픈 기억으로부터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군산에서 마주하는 근대건축물은 은행과 굴, 가옥, 호수 등 다양하다.
옛 군산세관(군산시 장미동)은 대한제국(1908년) 때 유럽인이 붉은 벽돌 등의 자재를 수입해 건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옛 히로쓰 가옥(신흥동)은 일제강점기 때 군산에 거주하던 일본인의 고급주택으로,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 등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옛 조선은행(장미동)은 식민지배를 위한 금융시설로 1923년에 건립됐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등장하기도 한 이 건물은 군산 근대사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옛 장기18은행(장미동)은 일본으로 미곡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물 수위에 따라 다리가 오르락 내리락하는 군산내항 부잔교(장미동)는 군산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했던 일본인의 해상교통로로 활용됐다. 1920년대에 건립된 해망굴(해망동 및 금동)은 군산 월명산 자락 북쪽에 자리한 터널로 해망동과 군산시내를 연결하기 위한 것이다. 군산시 제3청사(영화동)도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이영춘 가옥(개정동)은 서구식·한식·일식 등 다양한 건축양식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농촌 보건위생의 선구자인 쌍천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며 이처럼 이름지어졌다. 구 시마타니 금고(개정면)는 1920년대 일본인 지주에 의해 지어진 창고건축물로 농장의 서류 및 우리나라에서 수집한 고미술품 등을 보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임피역사(임피면)는 일제시대 때 전라도의 농산물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는 수탈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농촌지역 소규모 간이역사의 전형적 건축형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원형도 비교적 잘 보존돼 있어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군산에서 이 같은 근대 건축물을 바라보고 서 있으면, 교훈의 역사에 발이 묶인다. 조상들의 고단했던 삶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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