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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양복 입은 뱀 - 전상국

전상국(소설가·김유정 문학촌 촌장)

'사이코패스'란 말이 연쇄살인범의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다. 유영철과 강호순 같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들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의 남은 영향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 흉악범들은 범죄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그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처럼 양복도 입었고 좋은 차도 몰고 매력 있는 미소로 주위의 환심도 사는 그냥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었을 뿐이다. 어쩌면 그들에겐 자신의 공격적 성향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본능적 위장술이 발달했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에 대해 무감각함을 눈물로 위장한다거나 사탕 같은 사랑을 입에 물고 살았는지도.

 

이처럼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참 모습을 감춘 채 다가오는 폭력이다. 눈에 보이는 광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위해에 대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질 나쁜 악일수록 그 가해의 수법이 주도면밀해 피해자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도 대부분 그 가해의 정체에 대해 모르게 마련이다.

 

더 치사한 폭력은 힘없고 무지한 사람들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뻔뻔한 얼굴들로부터 나온다. 오래 전부터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잠자고 있는 정의를 일깨우기 위해, 우리의 가난한 이웃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정치판의 목소리 높은 정치꾼들을 수상쩍은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의 <남다른 지능과 위장술로 사람들을 조종해 자신이 속한 조직과 사회를 위기로 몰아넣는 '화이트컬러 사이코패스'> 를 '양복 입은 뱀'이라고 비유한 말에서 입씨름의 명수 정치꾼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정치판 정치꾼에 대한 불신이다. 분명 우리네 보통 사람들보다 똑똑하고 덕망 있는 사람들이 일단 정치판에만 들어가면 개판으로 달라지는 그 두 얼굴에 대한 배신감이다.

 

나라 걱정은 물론 우리 모두의 고통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싸움의 선봉에 섰다는, 그들의 높은 목소리는 우리의 희망이었고 미래였다. 그리하여 그들에 대한 믿음과 기대로 촛불까지 켜들고 거리로 나섰던 것 아닌가. 그러나 무엇이 달라졌는가. 우리의 그 맹신적 추종이 좌우 이념의 담 쌓기에, 사회 분열 조장에 기여했을 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달라진 것이 있다. 우리를 조종한 정치꾼 그들의 이름이 빛났고 머리 굴린 만큼 표를 더 얻었으며 당리당략을 위해 몸 바쳐 싸워 얻은 전리품인 저 권좌의 거드름.

 

오래 전 나는 불신과 증오, 소외와 좌절, 억압과 굴복 등 광기의 모태를 리트머스 시험지 삼아 사이코 연작 소설 몇 편을 쓴 적이 있다. 이 시대의 광기를 성공하지 못한 악의 한 유형으로 보아 다분히 필요악을 미화하는, 불편한 심기의 반영이었다. 위선과 부패보다는 소외된 인간의 광기가 한결 창조적이고 인간적일 수 있다는 생각 그 이면에는 위선의 탈을 쓴 정치꾼이야말로 이 시대의 성공한 악이라는, 당대 정치판에 대한 환멸이 짙게 깔려있었다.

 

노름꾼, 협잡꾼이나 다를 바 없는 혹세미문의 정치꾼이 아닌,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서로 마주앉아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는 정치가를 기다린다. 혼란한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대립을 조정하고, 맞설 것은 당당히 맞서되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의 말도 소중히 다루는, 그렇게 덕 있는 정치가를 생각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치판 행패 그 버전만은 하나도 바뀐 게 없다는, 정치판 비하의 그 인식을 바꿔놓을 참신한 정치가를 만나고 싶다.

 

희망은 있다. 욕을 하면서도 결국은 한 표를 던져 만들어낸 그 정치꾼들을 이제 버릴 때가 됐다는 것. '양복 입은 뱀'을 기르는 것도, 우러러 따를 큰 정치가를 모시는 것도 모두 우리의 선택, 그 판단에 달렸다는 것을 깊이 깨달을 수만 있다면.

 

/전상국(소설가·김유정 문학촌 촌장)

 

▲ 소설가 전상국은 경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종업했다. 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등단했으며 강원대 국문과 교수, 한국문인협회 이사를 거쳐 현재 김유정 문학촌 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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