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방부(가천의대 부총장)
필자가 제일 싫어하는 글은 마치 수도사 같고, 설교투의 글이다. 참으로 역겹게 느끼는 것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번 글은 바로 이런 류의 칼럼이라서 독자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그러나 한번쯤은 이해하기를 바라며…….
미국유학시절 미네소타 대학에서 전문의 과정을 보낼 때 이야기다. 병원의 입원환자를 보면서 깜짝깜짝 놀란 것은 한국사람이 꽤 많다고 느끼는 것이다, 회진할 때 누워있는 환자가 영락없는 한국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한국말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위 Native American(미국 원주민)이라고 불리는 인디언들이었다. 정말 너무나 똑같이 생겼다. 가끔 병원 백인의사친구들이 나를 Are you native American? 이라고 물을 정도였다. 인디안 마을에 관광을 가서 보니 우리나라의 풍습과 비슷한 게 너무나 많은 것이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이 아닌 달'이라고 부른다. 11월이면 나뭇잎도 떨어지고 싱싱하던 자연의 모든 생명 현상들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때를 가리켜 '모두 다 사라진 것이 아닌 달'이라고 부른다니 참 재미있다.
우리는 해가 바뀔 때가 되면, 지난 일년의 시간이 다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한다. 이미 흘러간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과거가 모두 지나가 버렸다고 말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은 정말 그저 흘러가 버리기만 하는 것일까?
우리가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뿐, 시간은 분명 무언가를 남기고 간다. 아름다운 추억, 슬픈 기억, 아쉬움, 새로운 희망을 뿌려놓고 간다. 오늘이 없는 내일이 없듯이, 지난 일년의 다사다난했던 일들이 없다면 다가 올 새해의 꿈도 없는 것이다. 나뭇잎이 떨어진 앙상한 숲은 보면서도 그 속에서 지난 시간의 의미를 찾아내고, 다가 올 봄의 새싹을 미리 내다볼 줄 알았던 지혜로운 인디언들처럼, 시간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도 좀 더 겸허해지면 좋겠다.
언제부턴가 나는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계획이나 희망을 세우기 전에 현재 내게 남아있는 것들을 먼저 돌아보게 된다. 한때는 나도 현재의 나를 돌아보기 전에 내일의 나를 꿈꾸는 일에 바빴다. '새해에는 이런 일을 해야지', '새해에는 꼭 이걸 이루어야겠다' 등등 무언가는 채우고, 더하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현재 내가 가진 것보다 앞으로 내가 가지고 싶은 것들이 눈에 더 띄었다. 집도 필요하고 차도 필요하고, 승진도 해야 하고 자꾸만 내게 부족한 것들을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일보다,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진정으로 아끼고 살아가는 일이 더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해가 바뀔 때마다 이런 생각들을 해본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이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며 살았을까? 지금 내가 가진 것들 중에 버려 할 것은 무언일까? 이런 생각들을 곰곰이 하다 보면 떠오르는 새해의 태양 앞에 아직도 남아있는 나의 욕심이 부끄러워질 때도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간다. GAMZU YAVOR - This too shall pass!!
벌써 2009년도 지나가는구나!
새옹지마 - 새처럼 옹졸하게 지랄하지 마라!
Spero Spera - 숨 쉬는 한 희망은 있다!
이해인 시인의 "한 해를 뒤로 보내며" 몇 구절을 옮기며.
한 해를 뒤로 보내며 / 이해인
우리가 가장 믿어야 할 이들의
무책임과 불성실과 끝없는 욕심으로
집이 무너지고 마음마저 무너져 슬펐던 한 해…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의 달력을 바라보는 제 마음엔
초조하고 불안한 그림자가 덮쳐옵니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은 실천했나요?
사랑과 기도의 삶은 뿌리를 내렸나요?
감사를 잊고 살진 않았나요?
남에겐 좋은 말도 많이 하고
더러는 좋은 일도 했지만…
바쁜 것을 핑계로
일상의 기쁨들을 놓치고 살며…
혼자서도 얼굴을 붉히는 제게
조금만 더 용기를 주십시오
다시 시작할 지혜를 주십시오.
한 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
저녁놀을 바라보는 겸허함으로 …
/윤방부(가천의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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