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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여행] (17)부안 변산반도 고슴도치섬 '위도'

파장금항, 흑산도·연평도 등 서해 3대 파시로 명성…어장 쇠퇴·서해훼리호 침몰사건 등 우여곡절 겪어

기암괴석과 바다가 어우러진 해안가. ([email protected])

파도와 섬이 부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6월로 잡혀진'기자와 함께 떠나는 주말여행'기사를 준비해야 했던 기자는 찜할 여행지를 두고 한동안 고민한 끝에 일찌감치 지난 5월 11일 부안 위도(蝟島)행을 결행했다.

 

(위부터)채석강 같은 경관을 자랑하는 위도 벌금리 용멀. 위도띠뱃놀이 전수관 내부. 위도 서해훼리호 위령탑. ([email protected])

위도를 택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학창시절 조선중기 허 균이 사회모순을 비판한 조선시대 대표적 걸작인 소설 홍길동전에서 꿈꾸었던 유토피아 율도국의 실제모델로 각인되어 여러 단상을 불러 일으켰고 독자들에게 권할 여름 여행지로 결코 손색이 없을 듯 했으며 기자가 담당하고 있는 지역 곳곳 속살을 매만져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스토리가 많은 환상의 섬

 

여행 당일 오전 9시 격포항을 출항하는 여객선에 자가용도 함께 실었다.

 

위도에 버스와 택시가 각 1대씩 운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중교통수단으로는 가고싶은 곳을 제때 가는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편도 7700원 이용요금이외에 자동차 운반비 2만5000원을 별도 지불해야 했다.

 

격포항에서 14㎞ 떨어진 위도 파장금항까지 여객선은 2개선사에서 4회 운행하는 동절기와 달리 하절기에는 8회 운행함에 따라 배편 이용시간 선택은 빡빡하지 않고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여객선이 짙푸른 바다에 흰포말을 일으키며 격포항을 미끄러지듯 빠져나오자 30~40마리의 갈매기들이 반기듯 배후미에서 군무(群舞)를 벌여 수년만의 섬여행기분을 들뜨게 했다.

 

갈매기들이 고깃배도 아닌 여객선을 출항후 30여분 동안이나 뒤따랐던 것은 승객들이 과자봉지를 사 과자를 손에 들고 갈매기를 유혹한 데 길들여진 탓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로 접어들자 일상생활에서 쌓여온 온갖 시름과 스트레스가 시원한 바다바람에 실려 확 날아가는듯 했다.

 

갈매기들이 여객선 환송을 접고 사라질 무렵쯤 됐을까 서해훼리호 침몰사건 당시 언론을 통 해 섬이름이 널리 알려진 임수도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민들이 가무락을 채취해 무게를 달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해훼리호 침몰사건은 1993년 10월 10일 오전 10시 10분경에는 362명을 태우고 위도 파장금을 떠나 격포항으로 향하던 서해훼리호가 10여분만에 임수도 부근에서 침몰해 292명이 희생된 사건.

 

격포와 위도사이 떠 있는 임수도는 그 당시 사건을 지켜본 아픔을 간직한듯 했다.

 

임수도를 비켜가자 위도가 저 멀리서 성큼 성큼 다가왔다.

 

고슴도치 형상의 섬이라 해서 고슴도치 위(蝟)와 섬 도(島)를 따 위도란 지명이 붙여졌다고 하기에 그 형상을 맞춰보려 했지만 공중이 아닌 해상에선 무리였다.

 

200~300m 앞 방파제 부근 여객선위에서 위도의 관문인 파장금항은 흑산도·연평도와 함께 서해 3대 파시로 유명했던 과거 북적거림과 시끄러움은 찾아볼수 없고 너무 한가하고 조용한 어항으로 남아있었다.

 

조기어장인 칠산어장의 중심지로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해마다 봄·가을이면 조기떼가 몰려들고 그럴때면 전국 각지에서 고깃배와 장삿꾼들이 몰려들어 파시(波市)가 들어섰 던 파장금항 아니었던가.

 

파장금항에 도착한 시간은 9시 50분으로 격포항에서 50분이 소요됐다.

 

꼭 7년전 취재차 위도에 왔던 기억이 났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이후 유가가 상승하자 유가절약을 위해 여객선 속도를 낮춰 운행하고 있다는 선사(船社)측의 설명은 금융위기 파장이 여전함을 실감케 했다.

 

지난 2003년 위도 주민들사이에선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유치추진위원회가 구성됐었다.

 

방폐장 적지의 하나로 부상됐던 위도 주민들은 새만금사업이후 조류변화와 갯벌퇴적·영광원전에서 배출되는 온배수 영향으로 어족자원이 고갈되면서 생업에 큰 타격을 받으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방폐장유치를 추진했었던 것.

 

그 당시 기자는 방폐장 유치추진위원장인 정영복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위도에 들어왔었다.

 

◆ 파시는 옛말 관광섬으로 변모

 

위도를 본격 둘러보기에 앞서 여행지도 등을 얻기 위해 위도면사무소에 들렀다.

 

이형철 부면장은 "위도는 서울 여의도 1.35배인 11.41㎢면적에 1970년대초반까지만 해도 7000여명의 인구가 살았으나 현재는 13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며 "어장쇠퇴와 서해훼리호침몰사건 등이 인구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들려줬다.

 

이 부면장은 "그러나 기암괴석과 빼어난 해안 풍경 등 천혜 비경이 살아있는 환상의 섬이면서 역사와 문화, 애환을 간직한 스토리가 많은 섬이기에 육지사람들을 끊임없이 흡입하고 있다"고 친절한 설명을 이어갔다.

 

면사무소를 나와 서해훼리호 참사후 개설된 관광순환도로로 차를 진입시켰다.

 

새소리·파도소리·바람소리를 함께 접할수 있는 연장 30여㎞의 관광순환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환상적이었다.

 

또 환경오염이 거의 없는 위도 곳곳의 비경을 드러내줬다.

 

비취색의 바다와 기암괴석·부속섬들의 조화는 형언하기 어려운 경관을 만들어내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벌금리 용멀은 자연의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격포 채석강을 옮겨다 놓은듯 했다.

 

대리에는 중요무형문화제 82호로 지정된 위도띠뱃놀이 전수관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도띠뱃놀이 보존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안수 대리어촌계장은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흗날 풍어를 빌고 마을안녕을 기원하는 행사가 열리는 위도띠뱃놀이는 160~170년 전부터 원형을 지켜와 동아시아 최고 풍어제로 꼽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해훼리호사건 원혼들의 넋을 추모하고 유가족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진리에 세워진 위령탑은 정금도 앞바다를 외롭게 내려다 보고 있어 방문객의 마음을 처연하게 했다.

 

우럭과 놀래미·감성돔·농어등이 잘 잡혀 낚시꾼의 천국으로 유명해진 위도는 희귀식물과 각종 바다생물이 곳곳에 분포돼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지고 해발 255m 망월봉을 중심으로 바다를 바라보면서 스트레스를 확 날려보내기 좋은 등산코스가 개발돼 낚시·등산·생태탐사를 겸한 관광지로 더욱 각광 받아 새로운 희망을 꿈꿀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6시간의 체류로는 위도의 진면목을 보기엔 부족했다.

 

다음기회엔 꼭 1박 2일코스로 들어와 위도의 멋과 맛을 제대로 느끼자고 다짐하면서 아쉬움속에 격포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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