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몸과 마음 달래주는 풍경…일상을 즐기다
원래 목적지는 부산이 아니었다. 제주도 올레길을 가기 위해 몇 달 전부터 계획했지만 하늘길과 바닷길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잠이나 잘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변화된 일상의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떠나기로 했다.
10월의 마지막 주말에 찾아간 부산은 서울과 달리 사람 사는 정겨움이 느껴졌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불꽃 축제가 끝나 더 이상 축제도 행사도 없었지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의 일상이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차는 두고 가기로 했다. 무엇인가에 얽매일 때 여행은 힘들고 지겨워진다. 그래서 작은 배낭을 어깨에 메고 몸과 마음도 가볍게 버스에 몸을 실었다. 터미널에서 주섬주섬 군것질거리도 챙겼다. 소풍가는 어린아이 마냥 즐겁고 설렜다.
▲ 1. 영화와 바다의 도시 부산
'부산'하면 역시 '해운대'다. 파라솔에 점령당한 한여름의 해운대는 무척 싫지만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이나 한적한 계절의 해운대는 질리지 않는다. 해변에서 조선호텔 방향으로 가다보면 해변 산책로가 APEC 정상회담이 열렸던 '누리마루'까지 연결돼 있다. 누리마루 폐장시간은 오후 5시. 4시 55분에 도착했지만 뻔뻔하게 들어갔다. 특별히 볼 것은 없었다. 그저 그 날의 회의장 풍경이 각 나라의 명패들과 함께 보존돼 있고, 기념품들이 전시돼 있다. 요즘 이곳이 부산의 주요 관광지로 부상했다고 한다.
저녁메뉴로 선택한 조개구이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해운대에서 택시를 타고 찾아간 '청사포'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곳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맛있는 꼬치집은 여행의 기쁨을 더해줬다. 청사포는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등대가 운치를 더하면서 소박하지만 그리움 가득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해운대에서 청사포로 넘어가는 길인 '달맞이 고개'는 4월 초에 벚꽃이 만개한단다. 그 때 오면 더 좋다고 택시기사 아저씨가 친절히 알려 주신다. 부산에 다시 와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
▲ 2. 골목마다 펼쳐진 굴곡진 삶의 풍경들
이튿날 찾아간 곳은 부산의 '마추픽추'라 불리는 감천2동. 이곳은 사실 거창한 별칭과 달리 부산의 달동네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으로 칠해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며 사진작가나 관광객들에게 꽤 알려진 곳이다. 지하철(1호선 토성동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구불길을 따라 올라간 그 곳에 감천동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한국전쟁 당시 힘겨운 삶의 터전으로 시작한 이 마을은 근현대사의 흔적과 기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옥녀봉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산자락을 따라 계단식으로 집이 늘어서있다.
문화단체가 개척(?)해 놓은 미로 같은 골목길을 따라가 봤다. 화살표가 이끄는 데로 가다보면 폐가를 활용한 전시장과 공부방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일상들을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에 화살표를 따라가며 연신 사진을 찍고 기웃거렸는데 어느 순간, 그 곳 사람들에게 미안해졌다. 고단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주민들의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이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골목길을 걷던 들뜬 기분은 잠잠해지고 어느 순간 말 없이 걷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낯선 이에게 기꺼이 먼저 말을 걸어 주던 그 곳 사람들의 수줍은 미소가 지금도 떠오른다.
▲ 3. 다시 일상 속으로
현대화된 건물이 들어섰지만 날 것의 생생함과 짭조롬 한 바다 내음이 가득한 자갈치 시장과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남포동 영화의 거리를 끝으로 짧은 여행을 마무리하고 전주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며 구입한 부산의 한 일간지(직업이 직업인지라 지역 신문에 가장 먼저 손이 간다).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받아본 신문에서 먼저 눈이 간 기사는 10월 31일자로 부산의 가장 오래된 책방인 '문우당'이 폐업한다는 소식이다.
55년이나 된 책방이지만 인터넷과 대형서점에 밀려 문을 닫는단다. 남포동까지 갔었는데 이곳을 들리지 못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꼭 찾아가 55년의 시간이 멈추는 그 공간의 마지막을 함께 했을텐데…. 지역의 오래된 것들이 경제 논리에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졌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안은 채 전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모르는 길은 물어 가면서, 또 그렇게 걷다가 찻집을 발견하면 잠시 쉬어가기도 하며, 부산의 일상과 마주했던 그 시간들은 일상으로 돌아온 나를 분발하게 한다. 잠시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타인의 일상에 들어가 보는 것도 여행이 주는 미덕이 아닐까.
▲ 교통편
대중 교통만 이용한 여행에서 불편함은 없었다. 지하철과 마을버스, 택시를 두루 이용하면서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여정이 흥미로웠다. 전주에서 부산 가는 버스는 시외·고속버스터미널 두 곳에서 탈 수 있다. 단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면 부산 사상터미널에,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타면 노포동 종합터미널에 내려준다. 3시간 정도 걸리며, 터미널 두곳 모두 지하철과 연결돼 있어 편리하다. 지하철은 1호선과 2호선 주요 노선 외에 3호선이 있지만 자갈치 시장이나 남포동, 해운대 등 주요 관광지는 1,2호선에 집중돼있다. 또 부산역 앞에서는 부산시티투어버스가 운행중이다. 해운대 노선, 태종대 노선 등 여러 노선이 있다. 1만원으로 부산의 유명 관광지를 돌아 볼 수 있다.(홈페이지 http://www.citytourbusan.com)
▲ 먹을거리
부산의 돼지국밥이 유명하다던데 이번 여행에서는 먹어보질 못했다(사실 전주사람 입맛에는 잘 안맞는다는 소문이 한 몫했다). 대신 청사포의 조개구이와 자갈치 시장의 생선구이 백반, 남포동의 씨앗호떡, 부산어묵 등을 먹었다. 사실 전주에도 다 있는 메뉴들이지만 해물의 싱싱함과 통통하게 오른 생선살은 비교가 안된다. 남포동 영화의 거리에 있는 씨앗 호떡은 꼭 먹어보길 권한다. 즐비하게 늘어선 호떡집 포장마차들이 저마다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어 진짜 원조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호떡을 반으로 갈라 그 안에 견과류를 듬뿍 넣어 종이컵에 담아주는 씨앗호떡을 먹으며 남포동 일대를 돌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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