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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꽃은 피고, 지고

한수산 (소설가·세종대 국문학과 교수)

 

지난 5월 초하루였다. 황사가 뒤섞인 빗발이 적시고 가는 4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소설가 김용성은 이승을 떠나 땅에 묻혔다. 세월의 격차가 있어 캠퍼스에서 만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는 나에게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선배셨다.

 

그날 아침 조촐한 영결식장에서 그를 보내며, 이토록 추모의 절절함이 넘치는 영결식장에 앉았던 기억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약력이, 조사가 이어지는 내내 장내에는 흐느낌이 이어졌다. 참 훌륭하게 사셨구나, 뒤늦게 깨닫듯이 그런 마음이 들었다. 봄비 속에 그의 부음을 듣고 나서부터의 며칠, 선배를 보내면서 내내 생각했다. 가르침을 주셨던 은사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날들이 이어지더니, 이제는 드디어 가까웠던 선배의 영면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데까지 때가 왔는가 싶었다.

 

한 작가의 영면을 맞아 그의 문학적 향기를 반추하며 그 가치를 되짚어 주는 기능이 점차 사라져가는 오늘의 언론풍토도 아쉬웠다. 줄기찬 산문정신으로 50여년 소설의 외길을 걸어온 그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생각보다 허술했기 때문이다. 연전에 세상을 떠난 작가 홍성원 선생을 그렇게 보냈듯이. 남은 우리가 기려야 할 것은, 한 작가가 그의 시대에 남겨 놓고 가는 가치와 의미 그리고 그가 맡아낸 사회적 역할이다. 한 작가가 해낸 문학적 성취나 사회적 역할과는 무관하게 '인기'에 따라 지나치다 싶게 호들갑을 떨어대는 요즈음의 언론풍토, 그러나 그것 또한 품격의 의연함을 잃어만 가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니던가.

 

그가 1961년 장편소설 '잃은 자와 찾은 자'로 등단했을 때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한 청년의 이 화려한 데뷔는 실로 어린 소년에게 아름답기 그지없는 충격이었다. 그의 여러 역작 가운데는 '군대 조직 내의 비인간적인 폭력 구조를 통해 현대사회의 메커니즘을 비판'했다는 평을 듣는 '리빠똥 장군'이 있다. 이 리빠똥이라는 이름은 그 후 여러 작품으로 패러디된다. '리빠똥 사장'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가 70년대초 '리빠똥 사장'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연재할 때였다. 세태를 풍자하면서 날카로운 현실비판과 풍자를 담았던 이 소설은 화제의 대상이 되었고 세간의 폭넓은 관심과 인기를 모았다. 그 무렵 전국의 이곳저곳에 리빠똥이라는 이름의 술집이 여기저기 생겨났던 사실이 그 소설의 화제성을 말해 주며, 작가 김용성의 현실인식을 보여준다.

 

이 소설제목에서 따온 '리빠똥'이라는 상호를 단 가게들이 지금도 여러 곳에서 눈에 띈다. 딱하게도, 그 가운데는 치킨집도 있다. 그런 간판 앞을 지날 때마다 리빠똥이 무슨 뜻인지 알고나 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리빠똥이란, 오직 잇속과 시류를 따라 똥파리처럼 날아다니는 인간군상을 가리키는 작가 김용성이 만들어낸 조어다. 차마 똥파리 사장, 똥파리 장군이라고 격조 없는 날짜배기 이름을 붙일 수 없어서 작가는 이 말을 거꾸로 써서 리빠똥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정성들여 음식을 만들어 팔면서 어쩌자구 똥파리 치킨 집이라고 간판을 다는지, 그 사장님은 리빠똥을 요즘 아이들의 은어처럼 '간지작살 나는' 외래어쯤으로 알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영결식을 마치고 남한강가의 서재로 돌아오니, 며칠 전까지도 하얗게 흐드러졌던 매화꽃은 지고 없었다. 흩뿌리고 간 눈발처럼 희디희게 꽃잎이 깔려 있는 뜰에서 매화는 또 새잎을 틔우며 어느 새 또 다른 봄을 만들고 있었다. 살아가는 일, 그 또한 꽃이 피고 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기다리지 않아도 그날은 온다. 약속하지 않아도 그날은 온다. 죽음이 갈라놓는 헤어짐은 자연이다. 발버둥치고 피하려 한다고 해도 자연은 그렇게 어긋남이 없다.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직선은 인간의 선이며 자연의 선은 곡선이라는 철학으로 일관했듯, 자연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할, 우리는 다만 그 자연 속의 하나일 뿐이다.

 

꽃은 피고, 진다. 떠나보낸 김용성 선배가 어제 내린 봄비의 진실이 되어 나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들 누구에게나 떠나야 할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차가운 진실을. 그 자연의 엄격함을.

 

/ 한수산 (소설가·세종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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