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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강헌, 다큐〈조지 해리슨〉 본 후 관객과 대화 "서구 중심 음악 탈피, 미학적 성취 이뤘다"

로큰롤 음악에 인도 음악 접목시켜 예술세계 확대…사회적 발언과 함께 예술적 재능기부 최초의 모델

▲ 마틴 스콜세지의 다큐멘터리 〈조지 해리슨〉의 한 장면.

조지 해리슨.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비틀즈의 멤버다. 인도 철학에 심취하면서 후기 비틀즈 음악에 중요한 자취를 남겼다. 하지만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만을 기억할 뿐, 그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틴 스콜세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조지 해리슨〉은 이같은 간극에서 시도됐다.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가 마련한 오프 스크린(1일 오후 2시 메가박스 4관)에 초대된 대중음악평론가 강 헌. 그는 전주영화제 '불면의 밤'에도 초대된 영화 〈조지 해리슨〉을 본 뒤 비틀즈와 조지 해리슨의 음악적 성취를 재조명했다. 영화인 외에도 철학자·인문학자 등을 초청해 관객들과 폭넓은 대담을 진행해온 오프 스크린은 이날 비교적 소수의 관람객들과 차분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오프 스크린에 앞서 러닝타임이 무려 209분이나 되는 영화가 상영됐다. 영화엔 자존심과 개성이 강했던 어린 시절부터 비틀즈에 기타리스트로 합류하면서 최고의 예술가로 우뚝 서기까지의 과정이 담겼다.

 

"비틀즈는 대중 음악사에서 로큰롤 음악의 새로운 질서'인디'를 만든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최초의 싱어송 라이터 밴드였다는 점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등 당대 스타들은 많았지만, 기존 팝 가수와 다를 바가 없었어요. 레코드사에 소속 돼 가져다주는 곡을 노래하는 데서 끝난 거죠. 하지만 비틀즈는 드러머마저도 작곡을 하는, 자기 예술의 주인이었습니다."

 

당시 1950년대 대중음악은 클래식으로부터 '하수구 음악','깡통 음악'으로 무시당했다. 하지만 "비틀즈는 침체에 빠진 클래식이 대중음악의 예술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했다."

 

"당시 세계 클래식을 지휘하는 게 카라얀과 레오나르도 번스타인이었습니다. 카라얀은 비틀즈에 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번스타인은 몇 차례에 거쳐 클래식계를 경악시킬 발언을 했죠. 심지어 '역사는 1960년대는 비틀즈의 시대였다고 쓰게 될 것이다. 클래식은 죽었다'라고까지 했어요. 상대적으로 덜 보수적인 미국에서 활동한 지휘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금기에 가까웠던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대중음악 추종자들도 더 이상 클래식으로부터 미학적 열등감을 느끼지 않아도 됐다 이 말입니다."

 

비틀즈는 더 나아가 독창적인 미학적 실험도 했다. 페미니즘을 다루고, 인도 철학에 근거한 신비주의 음악을 내놓으며, 오케스트라와 현악 4중주를 접목시키는 등 도저히 클래식 작곡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이 해냈다고 믿을 수 없는 시도를 통해 음악적으로 성장해나갔다. 그는 "조지 해리슨의 남다른 성취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짚었다.

 

"비틀즈는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서 동양음악과의 통섭을 시도했습니다. 물론 프랑스계 클래식 작곡가들이 일찍이 동양적 요소를 끌어들이긴 했으나, 서구 중심주의가 가진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미학적 시도를 한 적은 없었어요. 로큰롤에 인도 음악을 끌어들여 대중들이 열광하는 새로운 트렌드로 내놓은 것은 조지 해리슨 덕분입니다."

 

재난으로 절망에 빠진 이들을 위한 자선 공연의 역사도 조지 해리슨이 먼저 썼다. 조지 해리슨은 존 레논과 벵골족 출신의 시타르 연주자 라비 샹카르와 독립 전쟁과 태풍으로 수십 만 명의 방글라데시 난민을 돕기 위해 1971년 8월 미국 뉴욕에서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를 열었다. 그는 "조지 해리슨은 기존 체제에 순응해 나만 잘 살면 된다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개입하고 자선 행위를 조직화하는 첫 번째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올해 전주영화제에 초청된 또 다른 음악 다큐 〈말리〉도 '강추'했다. "레게의 제왕 밥 말리는 그의 곡'짐바브웨'가 짐바브웨 국가(國歌)로 지정됐을 만큼 예술적으로도 비틀즈에 못지않게 뛰어났고, 제 3세계에 억압받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면서 도시 빈민층과 함께 산 위대한 예술가였다"고 평가했다. 덧붙여 K-POP 한류 열풍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장담할 순 없으나, 세계 대중음악 침체기로 인한 거품이 아니라 역사에 남을 예술로 기억되려면 철저히 기획된 아이돌이 아니라 비틀즈와 같은 진정한 예술가가 바로 이 시점에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 강 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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