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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막작 '심플 라이프'…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감동을 반추하다

따뜻함 묻어난 집밥 같은 스크린 눈물과 웃음의 감동, 놓치면 후회

 
 

마지막 'JIFF, 줌 인'에서는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폐막작 〈심플 라이프〉를 선택했다. 축제의 마지막을 의미있게 장식하고자 폐막작을 별도로 선정한 전주영화제는 지난달 29일 다른 지역 관람객들이 폐막작을 미리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상영했다.

 

잔치도 끝나간다. 사라지는 봄을 붙잡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 〈심플 라이프〉는 홍콩 영화다. 그렇다면, 액션영화? 아니다. 드라마다. 놓치면 후회한다.

 

역 대합실에 한 사내가 있다. 소탈한 차림인데도 유덕화 닮았다 했는데, 잘 보니 유덕화다. 천천히 움직이는 열차같이 〈심플 라이프〉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향해 출발하는데. 북경과 홍콩에서 이 남자가 만나는 사람들의 면면은 홍금보와 서극 감독(사실 까메오다) 등, 뭐 이런 스타들이다. 로저라는 이름을 쓰는 이 남자, 큰 돈을 주무르는 영화제작자다.

 

이 영화 유달리 음식 장면이 많은데, 여독에 지친 그에게 집밥과 간 맞는 국을 건네는 이가 있으니 타오 지에(桃姐 엽덕한)다. 도미찜과 소혓바닥 요리를 건네는 그녀는 부엌에 선 채 밥을 먹는다. 하녀다. 한눈에 봐도 퍽 늙었다. 한 집안에서 60년 넘게 4대에 걸쳐 아이들을 업어 기른 유모이자 찬모 또 침모의 역할을 한 하녀를 대하는 귀공자의 방식은 엄마를 대하는 듯, 버릇없음이 밉지 않은 것이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을 닮았다.

 

고령의 타오에게 중풍이 찾아오자 이 '되련님'은 그녀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정성을 다한다. 타오 주변의 작업전문 할아버지, 노부모를 모시는 과정 속 금전적 갈등을 일으키는 가족들의 묘사장면은 꽃동네 병원 수준으로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 같으면 이모 혹은 아줌마라고 부를 법한데, 기특한 도련님은 병원환자들에게 하녀를 끝까지 양어머니라 소개한다. 그렇다고 자신이 부자 아무개라는 점을 밝히지 않는다.

 

자제와 때를 읽을 줄 아는 것이 하인의 고충이거늘 수줍고 염치를 아는 하녀는 정중하다. 거기에 하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보여주는 로저의 품성을 담는 것은 단정한 카메라 워크다. 감독 허안화가 담아내는 〈심플 라이프〉의 홍콩 어떤 구석도 화려하지 않고 유덕화를 상업영화의 귀공자로 내세우지 않는다. 그래서 '유덕화 같이 보인다'는 말이다. 소탈하기 그지없기에 영화사 비서나 병원직원들에게 운전사나 에어컨 수리공으로 보인다. 멋진 옷과 스타일리시한 조명이었다면, 유덕화의 그 애틋한 마음이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감독의 절제 덕분이다.

 

유식한 이야기를 하자면, 여성감독 허안화는 홍콩 뉴웨이브의 기수다. 왕가위도 그 다음 세대다. 데뷔작부터 유덕화를 기용했기에 이 영화는 허안화가 유덕화를 사랑하는 마음, 구체적으로 단순한 미남 배우가 아닌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것을 상기 시키는 점 또한 노감독의 배우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녀의 삶이 종착역에 이르는 과정에서 급작스런 이별 아닌 정중하게 이별하는 태도는 이 영화의 품격을 높인다. 그 방식이 온유 그 자체이기에 객석에서는 눈물과 함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따뜻함이 묻어나는 스크린 속에서 관객들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사람을 위로하는 방법도 배운다.

 

전주사람들에겐 눈물이 있다. 울 준비도 되어 있다. 울고 웃다보면 관객들은 하녀의 머리 위에 있는 희고 둥두렷한 테두리를 보게 될 것이다. 개막작 〈시스터〉에서 그들의 생존 방식이 불편하고 섬닷했다 느끼는 분들, 꼭 보시라. 후회 안 한다. 나에게도 식모라 불린 누나들의 추억이 있다. 극장에 함께 가고 내게 목욕을 시켜 준 그 누나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모르는 우리는 그것 밖에 안 된다.

 

영화평론가 신귀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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