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양한 목소리의 공존이다. 다수 의견만 큰 소리를 내고, 소수 의견이 제 소리를 내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게 된다. 정치, 경제, 문화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중앙에 지나치게 집중되어있는 우리나라의 사회구조에서 중앙과 지방의 여론 균형성, 다양성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 땅에서 지방은 모든 면에서 변방이고 지역민은 영원한 소수자일 뿐이다.
지역의 소수 목소리를 대변하는 지역신문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미 많은 지역신문들은 뇌사상태에 빠져있거나 산소 호흡기에 기대어 겨우 목숨만을 연장하고 있을 뿐이다. 지역신문이 이렇게 몰락하게 된 원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중앙지의 지나친 독점과 정부의 중앙지에 대한 편파적인 지원 때문이다. 공공재 성격을 띠고 있는 신문시장을 시장의 자율에 맡겨놓으면 조·중·동이 모든 것을 독과점하게 되는 정글의 법칙이 작동될 수밖에 없다. 중앙지들은 1년만 구독하면 6개월 무료, 자전거, 선풍기, 상품권은 물론이고 심지어 현금까지 지급하는 등 시장 질서를 크게 어지럽히고 있다. 여기에 이명박 정권은 여론의 다양성 명분을 내세워 조·중·동에게 종합편성채널이라는 방송 사업까지 내주어 이들은 지역의 광고시장까지 침범하게 되었다.
두 번째 원인은 지역신문의 지나친 난립이다. 부산과 대구, 강원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역의 일간신문들이 너무 많다. 솥단지의 밥은 한정되어 있는데 숟가락 들고 덤벼드는 사람은 계속 늘고 있으니 모두가 배고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 전주지역은 인구가 고작 65만 명 정도인데, 지역일간신문은 무려 13개이다. 인구비율로 따지면 세계에서 가장 언론의 자유가 넘쳐나는 도시이다. 발행부수가 1천부 미만이고 오직 관공서에만 배달되는 신문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이런 난립현상은 광주-전남, 경기 지역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지역신문들이 난립하는 이유는 지역신문시장의 기능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반시장의 경우 적자를 보는 회사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에 의해 자동으로 퇴출된다. 그러나 지역신문시장은 새로운 신문이 시장에 진출하여 적자를 보더라도 결코 퇴출되지 않고 계속 시장에 남아 물을 흐려 놓는 통에 건전한 회사마저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안철수 교수는 최근 그의 저서에서 중소기업 문제를 거론하면서 경쟁력이 없는 한계기업, 즉 '좀비기업'이 퇴출되지 않고 경쟁적인 덤핑으로 가격구조가 와해되어 모두가 손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하였는데(안철수의 생각, 128쪽), 이는 지역신문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겠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제대로 된 지역신문을 만들어보려던 일부 신문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지역신문들의 질이 전반적으로 하향 평준화되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신문을 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처음으로 경남도청이 지역신문에 보조금을 지원한데 이어 올해도 경남도내 지역일간지, 주간지, 인터넷 신문 등 11개 신문사를 선정하여 총 10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자극받아 부산, 광주, 전남, 전북지역에서도 같은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지역신문에 대한 지원은 사이비 신문까지 포함해서는 안 되고 일정한 자격조건을 갖춘 소수의 신문사에게만 선택과 집중의 원칙으로 지원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자격조건은 일정 수준의 발행부수를 유지하는지, 임금을 제대로 지불하는지, ABC(발행부수공사)에 가입했는지 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지원금은 신문사 임직원의 봉급이나 수당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고 어디까지나 지역신문 독자에 대한 구독료 지원, 취재 및 경영컨설팅 지원 등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또한 최근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의 영업을 일부 규제하듯이 지역신문을 살리기 위해 중앙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역주민의 삶 자체인 지역신문의 보호는 재래시장 보호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역신문을 가장 효과적으로 살리는 길은 지역민들이 될 성 싶은 몇 개 신문만을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애정을 갖고 신문을 구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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