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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line)과 원(circle)

▲ 박 종 화

 

서울대 교수·피아니스트

대우주를 뜻하는 '매크로코즘'과 미세 우주를 의미하는 '마이크로코즘'. 고대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에서 나온 이 두 단어는 우주는 가장 큰 단위에서부터 아주 작은 단위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양식이 반복된다는 원리를 담고 있다.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서 공통된 원칙을 찾을 수 있다는 논리다. 큰 흐름을 통해 작은 세상을 알게 되고 작은 데서 의미를 찾아야 큰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기술을 익히고, 지식을 습득한다. 그리고 규칙을 만드는 사람과, 집행하는 사람, 따라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을 거듭한다.

 

사회적으로는 더 높은 지위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다. 하나 이는 사회적 성공에 불과할 뿐 개인적 성공을 가늠하는 표준이 될 수는 없다.

 

개인적 성공과 사회적 성공은 아예 그 모양부터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회적 성공을 '선(line)'으로 본다면 개인적 성공은 '원(circle)'으로 봐야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개인적 성공은 어떻게 가늠해야 할까. 개인적 성공은 물질적으로는 가늠하기 힘들다. 삶의 흐름 안에서 무엇을 깨치고 행동으로 옮긴 후 시간이 경과되면 인간본성이나 다른 요소로 인해 그 깨침에 갈등이나 의문이 발생하거나 아니면 그 깨침은 몸에 배게 된다. 깨침의 직전을 시발점으로, 그리고 시간을 따라 '원'을 한 바퀴 돌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다만 '원'을 한 번 완주했다고 똑같은 시발점에 도달했다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렇지가 않다. 한 깨침이 몸에 배거나 아니거나 일단 시행착오를 거친 후 다시 얻는 깨침은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유를 하자면, 아름답지만 어려운 시를 낭독할 때 한 번 읽은 것과 여러 번 읽은 후의 이해도가 다르고 또 젊을 때와 나이가 들어 읽은 후 영감이 다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똑같은 시발점에 도달했다고는 보이나 실제로 각도를 달리 해 보면 도달점은 시발점보다 더 깊은 곳에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 필자가 말하는 '원'은 이차원 현실에서만 존재하는 원이 아니라 무한차원에서 존재 가능한 계속되는 '원'인 것이다. 이렇게 개인적 성공은 깨침을 원동력으로 '원'을 깊이 탐구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며 현실적으로 그것을 가늠하는 비물질적 기준은 지속적인 깨침을 통해 얻는 자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엄청난 '역설'이 생긴다. 인간은 본능을 이성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동물과 차별화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본능을 중요시하는 사회디자인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와 개인적 성공의 동기를 각각 생존과 깨침에서 얻는 자유라고 한다면 그중 생존은 본능에 속하고 깨침은 이성에 속한다. 물론, 사람의 본능을 무시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개개인들에게 조금 더 여유를 줄 수 있는 디자인도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우수한 과학자와 음악가가 같이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과학자가 전문용어를 구사하며 지금 자기가 연구 중인 이론을 논한다면 음악가는 그것을 이해하기 힘들어할 것이다. 반대로 음악가가 전문 용어를 구사하며 음악의 섬세한 뉘앙스를 설명하려 한다면 과학자 역시 알아듣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말의 내용은 이성적일지 모르나 의사소통의 방법은 아주 원시적이며 본능적으로 변하게 된다. 맛있는 수프를 함께 즐기려면 공통되는 그릇을 찾아야 한다.

 

'도(道)'는 '통(通)'한다 는 표현처럼 '매크로코즘'과 '마이크로코즘' 역시 하나를 터득하면 만사에 능통하게 된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원'이다. '원'의 모양이 다차원적으로 일그러져 있을수록 이 원리를 터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도'를 터득한 사람들은 항시 변하는 우주와 함께 자기 특유의 '원'을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게 가능한 사람들 아니겠는가. 사회적 성공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로서는 '선' 만 보일 뿐, '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여러분의 '원'은 지금 어떤 모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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