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全 ─ 群 ─ 街 ─ 道 ─
퍼뜩 차창(車窓)으로
스쳐 가는 인정(人情)아!
외딴집 섬돌에 놓인
하 나 둘 세 켤 레
-「고무신」 전문, 1966년
시각적 효과와 입체감을 회화적으로 시도한 새로운 형태의 구별배행 시조이다. 특히 진행감, 속도감, 직선감을 주기 위한 초장의 '── 全 ── 群 ── 街 ── 道 ──'라는 시각적인 효과와 종장에서 외딴 집 사각형의 섬돌에 놓인 아버지와 아이 그리고 어머니의 세 신발을 글자 크기를 달리함으로써 시골 생활의 단란한 정경을 따뜻하게 형상화한 파격적인 시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종래 시조의 형식과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 평면적 묘사나 감상적 서정을 배격하면서 제재나 대상에 대한 인식의 깊이, 표현 기법 등 가히 시조문학사에 일대 혁신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사설시조를 현대화 하는데 앞장서기도 하였다.
겨울 저녁 궂은비가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비는 중학 모자 챙만한 처마조차 인색한 거리에다 나를 버려둔 채 행인들의 목을 외투 깃에 눌러 박아 하나 둘씩 등 밀어 골목 안에 몰아 놓곤 어둠으로 봉해 버렸다. 비는 핏발 선 눈 을 하고 날뛰는 자동차 궁둥이에 불침을 놓고, 불빛 새는 창문을 차례로 닫아 걸고, 가로수 손에 살아남은 부채 들려 감기약이나 다리라 했다.
이윽고 한숨 돌린 비는 비로소 날 돌아봤다.
비는 한참 나를 우체통 곁에 세워놓고
먼 숲 속에서 외톨밤을 줍게 하다가, 굽이쳐 흐르는 옛 성을 돌게 하다가, 그 성터의 여울목 에 날 불러 세우더니, 흙 속에 반만 묻힌 천 조각을 줍게 하고, 그리고 들여다보게 했다.
그건 참 오랜만에 찾은 나의 명찰이었다. -「 고속도로」, 1980년
실험적인 시도가 엿보인, 중장이 길어진, 사설시조이다. 초장·종장은 각각 두 구절을 기본구조로 갖추고 있으나, 중장만은 변형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 겨울 저녁 어느 처마 밑에서 비를 개면서 일상에 쫓겨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조용하게 뒤돌아보는 삶의 관조와 성찰의 심리 상태를 서사적 서정으로 충실하게 표현하는 새로운 시조이다.
끝물 고추 붉히느라 / 수선피던 가을 해가/ 어둠 속 둥지에 들어 / 알을 품고 졸을 제면
농가의 창틀에서도/ 하나 둘씩 등불진다.
-「해는 져 둥지에 들고」에서, 1997년
배경이 한낮 - 석양 - 저녁으로 바뀌어 가면서 그것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 화목한 세계, 곧 '햇살'이 '붉은 고추'가 되고 그것이 다시 어둠 속 둥지 속에 들어 '알을 품는 어미 새'가 되기도 하는 자연친화적 초월세계를 보이고 있다.
전북 정읍 출신으로 1948년 세종 중등 국어 교사 양성소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가람 선생을 만나 시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57년 '제1회 개천절 기념 전국백일장 시조부 예선'에서 장원, 그의 작품은 전통 시조의 작품을 탈피, 새로운 리듬과 현실 의식을 작품에 투영함으로써 현대시조의 형식과 내용면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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