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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송재옥(宋在玉) 편] 통찰과 직관의 선비 시인

▲ 송재옥 시인
정읍시 산외면 유가(儒家)에서 태어난 송재옥 시인(1935~)은 일찍이 조부 슬하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농업에 종사하면서, 1991년 '표현'지로 등단, 현재 '전북불교 문학회' 회장을 맡아 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길을 찾아

 

남들보다 더 빨리 앞서 가려고 하지만

 

길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

 

길을 걷다가 달리다가

 

발 대신 차로, 물 위는 배로

 

혹은 비행기로 날아

 

가지만 그러나

 

끝이 있는 길, 끝이 없는 길

 

가다가 문득 멈추어 서면

 

애초의 원점

 

생성과 소멸의 질곡

 

그 모순의 역사

 

싱의 섭리만이

 

달려가고 달려 오는 길

 

- '순환' 전문

 

절대 무한의 우주 속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탐색이 골똘하다 '사람들은 제각기 -길을 찾아' '걷다가 달리다가' '차로', '혹은 비행기로 날아/가지만 그러나' '끝이 있는 길, 끝이 없는 길'이라고 한다. 사람이 가는 '길의 끝'은 죽음이지만,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우주의 길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생멸을 거듭하는 우주 만상 속에서 찰나적 존재로서의 불안과 부조리 앞에 투기된 실존적 자아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생(生)은 무상(無常)과 무한성(無限性)으로 끊임없이 순환되고 있다는, 존재의 전일성(全一性)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것이 우주와 생명의 근원적인 모습이라고 하는 불교적 세계관과 니체의 영원회귀, 아니 주역(周易)의 역사상(易思想)과도 다르지 않는 우주적 맥락의 세계관이라 하겠다.

 

물(物)마다 달리 매겼다, 시간을

 

은하엔 헬 수 없이 서로 다른 시간의 틀을 걸었다

 

별들은 제 시간 때에 물먹느라 깜박거린다.

 

24시, 실은 무의미의 시간이다, 하루는

 

땅이 제 나름으로 한 바퀴 뒹구는 것일 뿐

 

해와 별과 땅과 달이 버티며 돈다.

 

콩과 깨가 뒹군다면 어찌 같다고 할 것인가?

 

삼추(三秋)가 일각(一刻)이고 때론

 

여러 생(生)이 겹쳐도 하루거리에 못 미칠 수도 있다

 

하늘의 순간이 이승의 몇 천 날이라고 하던가? 그래서

 

하늘의 생(生)은 망망하고

 

인생은 해협을 건너는 길손이라

 

- '시간 구워먹기.5' 에서

 

지구는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한다. 하루의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자전 때문이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생기는 것은 공전 때문이다. 우주는 참으로 신비스럽기 한이 없다. 지구보다도 태양이 130만 배나 크고, VV Cephei라는 별은 지구보다 무려 65만 배나 크다고 하니, 넓은 우주의 큰 항성에 비하면 지구는 그야말로 작은 모래알에 지나지 않다. 뿐만 아니라, 항성의 크기에 따라 '물(物)마다 시간을 달리 매겼기' 때문에 '하늘의 순간이 이승의 몇 천 날이'이 되고,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가 된다.

 

이처럼 송재옥의 '시간 구워먹기'에서의 시간 개념은 물리적, 객관적 시간이 아닌 직관적 시간 개념이요 기존의 시·공간을 뛰어 넘는 절대적 시간 혹은 디지털적 시간 개념으로, 유한한 생(生) 속에서 무한을 담고 살아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우주적 통찰과 직관력이 남다르다.

 

전통문화를 숭상하면서도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균형으로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불이(不二) 사상, 그리하여 자연과 하나가 되어 공평하고도 화해로운 인도주의(人道主義)로 생을 조율하면서 중용의 길을 걷고 있는 지사풍의 선비 시인이 아닌가 한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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