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어머니가 밭을 매신다.
살다 가신 3분의 2는
궂은비가 아니면
진눈깨비가 내리고
남은 3분의 1은
불붙는 땡볕 아래 잡풀을 매신다.
6·25 사변 때
큰 아들 잃고 얻은 열병으로
해마다 여름이면 왼통 무르신 입술
오늘도 뜯어온 문풍지 조각으로
연신 갈아 바르시며
제초제도 모르는 성한 세월을
땡볕 아래 앞잔등 밭을 매시다가
중개 넌출 만나 혼자 웃으신다.
-「중개」에서
정읍에서 태어난 정렬 시인(1932-1994)의 시의 출발은, 6·25가 남긴 처참한 유산을 고통스럽게 고발하고 증언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정렬에 의하면 '형님이 죽음을 맞게 된 여름, 그 여름만 되면 어머니는 열병을 앓으신다.' 고 했다. 그래서 그의 필명도 이름 석자(鄭夏烈) 중에서 여름 '夏'자를 빼서 '정열'이란 이름이 된 모양이다. "나의 시는 어머니의 피응어리를, 그 속 울음을 꽃으로 쪼아내는 아픔들이다.- 해서 쉰이 넘은 지금도 나는 시를 쓸 땐 어린애가 되어 꼭 어머니를 떠올리며 시를 쓴다. 가슴 속 피를 쥐어짜서......"(시집 『어느 흉년에』중에서) 그만큼 그의 시는 어머니의 가슴 속에서 영영 풀리지 못한 채 응어리진 어머니의 핏덩이요, 속울음이다.
'잎새 하나 없는 / 즐비한 가로수를 보고 가면 / 6·25사변 때 / 제가 꼰 새끼줄에 제 손들 묶여 / 진눈개비 설치는 저문 들길을 / 묶인 손들고 邑內로 끌려가던 / 마을 사람들 생각이 난다. /- / 더러는 살아서 돌아오고 / 몇은 30년이 되어도 / 병신들 병신들 같이 / 제 고향도 모르는가 / 돌아오지 않는다.'(「진눈깨비」에서)며 전쟁통에 억울하게 끌려간 고향 사람들의 원혼과 아직도 남북대치로 맞서 있는 현실을 안타까와 한다.
달팽아 달팽아 눈 있는 달팽아
집도 발도 없는 너는
왜 풀 한포기 없는
한길에 나와
짓밟히는 全身을 귀로 쭝깃거리며
피흘리는 全身을 눈으로 껌벅거리며
世上事 끝까지 다 다아 보고
할 말은 끝내 이 땅에 묻어 두고
살아남은 귀먹고 눈먼 것들을 위하여
성난 구두발에 스스로 짓이겨져
할 말로 할 말로 달게 죽은 달팽아.
-「할말」에서
구둣발에 짓밟혀 '할 말은 끝내 이 땅에 묻어 둔 채 죽어 가는 달팽이' 이는 열강들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꼭두각시처럼 희생된 우리들의 모습이다. 영문도 모른 채, 서로가 서로를 원수처럼 죽일 뿐, 진실은 끝내 점령군과 위정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은폐된 채 묻혀 있어야 하는 민족적 분노와 울분이 이 시에 담겨 있다. '6.25 난리 통에/ 3형제와 고숙을 다 잃고 / 집도 주소도 성명도 다 잃고 / 반쯤 실성하여 떠돌다가/ 번지 없는 바람받이 언덕에서 / 10年 세월 질갱이같이 살던' (「고모)에서) 고모의 처참한 삶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의 시는 온통 이처럼 6·25의 희생양들에게 바치는 헌시와 씻김굿으로 이어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대를 이은 속울음은 오늘에 이르러서도 고쳐질 기미가 없다. 전쟁의 상흔이 가시고 반백년이 흘렀건만 남북은 여전히 아군과 적군으로 '내일' 이 없는 '가도 가도 어둠뿐'이다. '살기서린 포승줄로 일어서서 / 첫새벽 / 맨 처음 오는 來日의 사지를 얽어 묶고/ 내년을 또 서서히 동여 맬' (「내년」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서 끝내, '할 말을 이 땅에 묻어두고' 떠나야만 했던 시인의 비통한 심사가 아직도 절절하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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