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임종 계기 인식변화 / 가족사진 활용한 작품 선봬
인연은 서로 다른 사람들의 만남으로 이뤄진다. 다른 시·공간 속에서 살아가던 서로가 만나 새로운 호흡을 만들어 내는 게 인연이다. 부부가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의 호흡에 맞춰 일상의 속도가 바뀌는 게, 남녀가 만나 발걸음을 맞추며 둘 만의 속도감 있는 호흡을 만들어가는 게 그렇다.
하지만 죽음은 이런 '익숙한 호흡'을 단절시킨다. 생물학적 호흡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눴던 호흡도 말이다. 이 때문에 죽음은 삶의 언저리를 항상 맴돌지만 피하고 싶은 존재다. 그리고 죽음 즉 어떤 사람의 부재로 인해 '함께 나눴던 호흡'은 다시 '혼자만의 호흡'으로 돌아간다.
미술가 송수미씨(48)는 '함께 나눴던 호흡'과 '혼자만의 호흡' 사이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작업을 이어왔다.
그가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개념을 접한 것은 가족 앨범을 정리하면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임종과정과 장례식을 담은 사진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울림으로 자리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접한 충격도 있었지만, 장례의식에 사용되는 옷·도구 등의 소재가 자신이 전공하고 있던 섬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때부터 삶과 죽음을 이어가는 작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작업에 녹여내기에 스스로 많이 부족했다고.
죽음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그의 어머니가 임종을 맞으면서 현실로 다가왔다. 누구나 그렇듯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도 애틋하고 아련한 마음을 갖게 했고 작업의 원동력이 됐다. 어머니와 '함께 나눴던 호흡'은 사라지고 그 빈 공간을 '혼자만의 호흡'으로 채워가기 시작한 것.
그는 어머니의 부재를 치유하기 위해 사진을 활용했다. 앨범 속에 살아 있는 어머니와 가족의 모습을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해 한지에 옮겼다. '회상', '잠재의식', '의식의 자유' 등의 시리즈를 통해서다.
10여 년 동안 '혼자만의 호흡'으로 스스로를 치유했던 그는 '블랙스완'시리즈를 통해 '인연'이라는 키워드를 꺼낸다(2011년 6월 전주교동아트 스튜디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많은 감정들을 화면 위에 옮겨 놓는다. 그것은 사람의 인연, 자연의 인연 등 나의 삶에서 비롯된 많은 인연의 이야기다". 작가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던 '혼자만의 호흡'에 이렇게 변화를 줬다.
이런 변화는 최근 작업 '나눌 수 있는 호흡'에서 명확해 진다(2012년 12월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 그는 이 시리즈를 통해 어머니와 가족의 사진을 불투명하게 배경으로 사용하고 대신 어머니의 유품을 캔버스에 설치했다. 전작에서 보여졌던 선명한 사진 이미지는 사라지고 실제 유품이 전면에 등장한 것. 이런 행위에 대해 그는 "그동안 '혼자만의 호흡'으로 자신을 치유하던 것에서 벗어나 다시 어머니와 '함께 나눴던 호흡'으로 돌아가 모든 이들과 공감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죽음과 삶을 독특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송수미의 작업은 모두 실크스크린 기법을 기반으로 한다. 실크스크린에 전사된 사진 이미지들은 망점이 흐려져 있는데 이는 "죽음은 삶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닌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한다"라는 그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무의미하다는 그만의 표현방식인 것.
그는 오는 6일 레시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그가 외국 생활을 하며 경험할 '나눌 수 있는 호흡'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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