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천·티백 등 재활용품 이용해 작업 / 관람객에게 유쾌하고 편안한 체험 제공
설치 작품의 운명은 기구하다. 작가가 주제와 전시장 환경에 맞게 작품을 설치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지만, 전시가 끝나고 나면 사라져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는 것은 달랑 사진 한 장. 하지만 설치미술가 고보연(42)의 작품은 사진과 함께 남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작품을 체험했던 관객에게 긴 여운을 드리우는 것.
"주변 사람들이 제공하는 재활용품 그리고 이를 설치 작품으로 만들어 관람객이 체험을 통해 힐링 하기를 바랍니다. 또 전시가 끝나 자신의 역할을 다한 작품은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냅니다."
종교가 불교인 그의 작업 방식은 윤회사상과 닮아 있다. 그는 일상에 있는 오브제를 이용해 설치 작품을 만든다. 그가 바라본 일상에서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이 작품의 소재가 된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작업은 불안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휴식처인 셈이다.
독일 유학시절 제작한 '고요한 숨결'은 그의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수만 개의 티백을 이용해 만든 텐트 모양의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수만 가지 차 향기를 맡으며 기분이 유쾌해지는 경험을 했다. 작품에 사용된 티백은 대부분 주변 사람들이 모아줬고 이들이 전시장에 찾아와 작품을 체험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그리고 '고요한 숨결'에 사용된 티백은 모두 자연으로 보내졌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시작부터 전시장에서 철거되기까지 모두 열려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작품이 사라져도 관객들은 진한 여운을 간직하게 된다.
유쾌하고 편안한 '힐링 체험'을 제공하는 그의 설치 작품은 '쉬엄쉬엄'·'쉬어가가' 展에서도 이어진다. 관객들은 그가 설치해놓은 구조물에 들어가 낮잠도 자고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낸다.
"빠른 시간에 작품을 제작하면 내 삶에 조금더 밀접한 것들을 놓치게 됩니다. 서툰 바느질이지만 한 땀 한 땀 이어가면서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그는 '느린 호흡으로 산보하자'에서 기저귀천에 천연염색을 한 뒤 바느질을 통해 엄마와 아기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전시장 벽에 설치된 엄마와 아이의 모습은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날아다닌다. 관객들은 기저귀천의 보드라운 감촉을 직접 만지고 느끼며 육아에만 전념하는 여성들이 겪는 반복적 일상에 대해 공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게 미술"이라고 말하는 그는 요즘 씨앗, 흙, 폐지를 이용해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려 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작업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가 '느린 호흡'으로 수집한 재생품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힐링'을 가져다 줄지 기대된다.
군산에서 태어나 전북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나온 그는 독일 드레스덴 미술대학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0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열었고 광주 신세계 미술상, 전북청년미술상 등을 수상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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