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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늪에서 살아가기

▲ 총무국장 겸 논설위원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집단적 불신 상태에 빠졌다. 충격적인 집단 희생과 공동체를 감싸고 있던 거짓의 껍질이 깨지면서 사회적 공황 세태를 겪고 있다. 기본을 일탈한 행위들이 주변에서 관행적으로 판쳤다는 지적은 아직 듣기만 해도 섬뜩하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고 믿고 싶지만 누구 말을 따라야 하고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냉소가 싸늘하다. 구조적인 부실과 무책임의 실체가 겹쳐 드러나면서 신뢰 기반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곧이곧대로 따라나서면 바보 되기 십상이거나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불신의 늪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개탄스럽다.

 

정부 신뢰도·국가 경쟁력 동반 하락

 

이러한 안타까움과 믿음의 깊이는 사고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에 비할 바 아니겠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내놓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부 신뢰도를 보아도 불신의 선이 기저에 흐르고 있었다. ‘국민의 23%만이 정부를 신뢰한다’는 평가는 10명중 2명 정도만 정부를 믿는 것으로 밑바닥 수준을 보였다. 이런 결과는 조사대상국 평균(39%)에 비해 격차가 심하고, 아픔이 절절한 이번 참사까지 조사에 반영됐다면 민심은 한층 더 신뢰도를 후려쳤을 것이 뻔하다. 문제는 이러한 정부 신뢰도가 국가경쟁력의 동반하락이라는 또 다른 걱정거리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혼란은 그 중심에 대통령이 서 있다. 대통령은 사태해결의 시작으로서 자신부터 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동안 낯선 수첩인사와 경직된 국무회의의 분위기 등을 지켜보면서 많은 이들이 근심과 불만을 갖게 됐다. 그래서 대국민담화 발표와 후속은 정국 향방을 가르는 중대 갈림길로 보인다. 국회와 언론 등에도 분명 일정 부문 책임이 있다. 여야의원들은 임박한 지방선거 일정에 치우쳐 본연의 임무는 뒷전이다. 사고 관련 장관들에게 “지금 정신이 나갔느냐” “뭐 그렇게 변명이 많냐”고 윽박지르는 구태를 재연했지만 오히려 ‘누가 정신이 나갔는지 모르겠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언론도 오보와 부정확한 보도로 부메랑의 난국을 맞았다. 국내 주요 방송사와 신문사들이 보도의 중립성과 정확성에 의혹을 제기하는 유족과 여론의 비판에 부딪쳤다. 이들 언론사들은 사고 발생 1개월이 지나면서 자사 보도와 관련해 “부정확한 보도 사과드립니다.” “언론사로서의 신뢰가 무너져가고 있다.”면서 자조 섞인 사죄문과 반성문을 뒤늦게 쏟아냈지만 시청자와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이렇게 정부, 정치권, 언론도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들이 확산되면서 자신의 신념과 같은 정보만 받아들이고 아니면 무시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

 

또 알려졌다시피 탈출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구난(救難) 당국이 제각각 허둥대는 공허한 활극이 어른들을 얼마나 부끄럽게 했는가. 원칙대로 따른 사람만 희생당하고, 사고 와중에도 남을 더 생각하는 청소년 세대의 꿋꿋한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지금 희생된 그들의 또래들은 기성세대를 지켜보며 믿음을 버려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무너진 연대감은 어른들이 책임져야 할 이 시대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마냥 자괴감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 현장에 몰려간 수많은 인근 어부들과 자원봉사자, 구조행위를 하다 숨진 승무원과 교사 등에서 희망의 싹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 적극적 탐색·현명한 선택 필요

 

이번 참사가 정치의 중요성을 속속 드러내 보였다. 그런 가운데 22일부터 공식 선거전이 펼쳐졌다. 애도의 물결에 휩쓸려 사뭇 열기를 느끼기는 쉽지 않지만, 전북지역 후보자 40.2%가 전과 기록이 있고, 병역을 마치지 않은 남성 14.3%가 심판대에 올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어느 때보다 유권자의 적극적인 탐색과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이유이다. 정치의 순환구조를 뜯어고치고, 상실한 신뢰의 사회 자본을 회복하기 위해 이번 선거에서 뼈를 깎는 성찰의 채찍으로 ‘개혁의 깃발’을 골라야 한다. 우리 사회에 이런 혁명적 의식 변화의 강물이 흐르지 않고서는 모래성의 비극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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