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 103.3도
나눔과 기부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그런 두려움을 날려 보내기에 충분하다. 보통사람들의 믿음과 진정성이 정치 외곽에서 달팽이 지나간 자국처럼 승화된 아름다움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5일 “지난해 12월1일부터 지난 31일까지 62일간 진행한 ‘연말연시 이웃돕기 모금 캠페인’ 결과, 목표액(55억원)을 넘어선 56억8200만원을 모금했다”고 밝혔다. 목표액이 덜 차면 각박해졌느니, 얄팍해졌느니 사설을 늘어놓는 게 요즘 세태다. 하지만 온정의 손길은 전주 종합경기장 사거리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를 최종 103.3도까지 올려줬다.
이번 캠페인에서는 기업 기부가 줄고 넉넉잖은 가정경제에도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개인 기부가 늘었다. 캠페인 모금액 가운데 개인 기부가 38억1300만원으로 전체의 3분의 2가량(67.1%)을 차지했다. 이는 전년에 비해 5.2% 포인트(5억700만원) 늘어난 것이다. 일정비율을 봉급에서 떼어내는 ‘월급 기부’ 직장인이 늘어나고, 여느 농업인들은 폐농자재와 폐비닐 고철 등을 수집해 판매한 수익금을 선뜻 내놓아 숭고한 나눔의 고리를 이어갔다. 반면에 기업 기부는 전년도(15억1600만원) 보다 줄어든 14억8900만원의 성과에 머물러 모금 비율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썩은 흙에서 영지(靈芝)가 생겨나고, 썩은 풀에서 반딧불이 생겨난다’고 한다. 아무리 경제 한파가 몰아쳐도 기부 의지는 꺾이질 않았다. 지난해 도민 1인당 개인소득만 보더라도 1453만원에 그쳤다. 전국 광역자치단체들 속에서 보면 자그마치 13위다. 여기에다 연말정산 파동과 증세논란 등이 이러한 충격에 가세했다. 그런데도 이들을 기부의 거리로 불러낸 건 뭘까. ‘호밀밭의 파수꾼’(J.D. 샐린저 지음)의 주인공 홀든처럼 사람들이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옆에서 지켜주는 파수꾼 역할과 다르지 않다. 쪼들리는 살림에서도 남을 챙기는 나눔의 정신이다. 얼마나 감동적인가.
모금 소식은 또한 공동체의 저력과 경쟁력의 힘도 생생하게 보여줬다. 캠페인이 펼쳐진 2000년 이후 16년 동안 한 번도 목표를 초과달성하는 기록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도 동지섣달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또다시 ‘인동초’ 같은 나눔의 꽃이 피었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기부에서 단합된 힘이 나온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기부가 사람들을 더 단단히 묶어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참여 의무를 심어주고 집단적인 노력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기부는 힘이다. 모금운동에 동참했던 경험과 기억이 우리 의식의 내부에 생생히 살아 있음으로써 삶의 새로운 동력이 된다.
■ 감동 주는 '선행바이러스' 확산되길
한파 속에 전해진 나눔과 기부의 소식, 우리에게 감동의 공감대와 온정의 에너지가 살아 있는 한 전북은 다시 뛸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간 사사건건 진영논리에 휘둘려 정치적 시련을 겪었던 이 지역에 희망의 열정이 꿈틀대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가운 징표다. 개인의 기부 문화는 사회갈등을 치유하는 소중한 샘물이기도 하다. 큰손이든 작은 손이든 사랑의 손길은 아름답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보다 살 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밑거름이다. 감동과 힘을 주는 ‘선행 바이러스’가 더 확산되길 기대한다. 아름다움도 스스로 가꾸어야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가치 있는 공동의 삶에 신경을 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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