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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전주 도심 한복판. 제5공화국의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시위대가 수없이 작렬하는 최루탄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시위현장에서 수습기자로 취재하던 필자는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저항전선에서 독재 정치의 몰락을 목격했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이 어그러지면 시민들은 혼돈에 빠지고, 사회는 갈 길을 헤맨다. 기자생활 30년이 된 지금, 정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내 자리'에만 정신 팔린 전북 정치권기자가 보는 세상은 긴장과 대립의 연속이고 불화를 싹틔우는 씨앗들에 시선을 꽂기 마련이다. 그런 눈으로 우리사회를 보면 어느 덧 정치가 아닌 게 없게 됐다. 영향력도 더 강대해지고, 그만큼 정치인의 책임도 막중해진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정작 시민과 함께하면서 시대의 통증을 앓는 정치인은 생각보다 드물다. 그래서인가,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의 제자리 찾기가 관심이다.며칠 후면 민선 6기가 출범한지 1년이다. 작년 이맘때 64 지방선거에서 전북은 14개 시군 단체장 가운데 무려 7곳에서 무소속이 휩쓸어 파란을 겪었다. 그때의 여진이 계속되는 요즘 지역의 맹주인 새정치연합에 갈등과 분열정치의 극단이 나타나고, 정동영 전 장관과 천정배 의원의 각 신당 창당 움직임까지 빨라지면서 종전과 궤적을 달리하는 정치 삼각파도를 맞게 됐다.아무려면, 신당 진행은 무소속 입지자들을 집중적으로 규합하겠다는 조짐이 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새정치연합에 대한 누적 피로도를 고려하고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이반 현상에 무게를 두는 것 같다. 총선에 나설 무소속 예상자들도 조사대상 53명 중 14명(26.4%) 가량 전망된다(전북일보 6월1일). 이런 무소속 열풍은 차기 선거판의 위협적인 시그널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과거에는 오늘날과 같은 정당 정치의 위기라고 할 만한 상황이 없었다. 왜냐면 우리 당이 싫더라도 최악을 막기 위해서는 차악(次惡)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프레임이 선거 때마다 판을 쳤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그런 지역갈등이 의미가 없어지고, 공천과정에서 민주성 등이 결여돼 정당에 대해 실망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여기에는 디지털 네트워킹의 힘이 위력으로 가세하고 있다.기존 정당 자체도 무소속 바람을 부채질하는 걸까. 새정치연합은 구심력을 잃고 계파, 지역, 세대에 따라 원심분리 상태에 빠졌다. 재보선 참패에 대한 책임 논란과 혁신위원회의 진통으로 통합과는 반대방향으로 표류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야당을 상대로 합리적 정책대결을 할 생각은 접고, 정부의 인사탕평과 대통합에 대한 불만 섞인 여론이 들끓어도 제대로 된 반박이 없다.그렇다. 전북정치권은 지역의 중대 사안을 처리할 능력을 상실했고, 시민들의 엇갈린 주장을 걸러낼 여과기능을 잃었다. 도민들이 절절하게 여기는 신공항 건설과 익산국토관리청 분리는 달나라 얘기 같고, 전주종합경기장 개발과 새만금송전탑 공사 등 쟁점사안도 내재된 다중적 코드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특혜특권위선이라는 고질 없애야여야정당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5년,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전북의 목표와 전략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안타깝게도 관념에 붙잡힌 노쇠한 눈으로 모든 문제를 처리하려 한다. 오로지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서의 내 자리에만 정신이 팔렸다. 시민 수준을 너무 낮게 보고 있다. 정당끼리 경쟁도 없다. 하지만 수십 년간 전쟁을 하지 않은 군대는 군화 끈이 풀어져 있다.시민은, 유권자들은 정치권 꽃놀이패의 이런 모습에서 새로운 정치 질서의 가능성을 찾고 있다. 이제는 바꿀 것은 바꾸고 지킬 것은 후회 없이 지켜내는 결단력을 보여줘야 한다. 정당은 특혜와 특권, 그리고 위선이라는 거대한 고질을 고쳐야 한다. 스스로 변하지 못한다면 외부로부터 충격이 닥쳐올 것이다. 무소속의 행진이 일부지역의 차질에도 갈수록 주목을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며칠간 버텨왔던 이완구 국무총리가 결국 총리직을 떠났다. 성완종 시리즈의 이완구편이 취임 70일만에 내려졌다. 금품수수 의혹이 제기되고 소용돌이치는 거짓말 논란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고육책이었던가. 진실은 밝혀질 것으로 믿는다면서 거듭 결백을 주장하고, 퇴근길에는 눈물을 참느라 입을 앙다물었던 모습까지 보였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채 떠날 거라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분열갈등의혹 해소하려면지명 당시만 해도 여야 모두 환영해서 국회 청문회야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불거진 사안들마다 반론이나 대응하는 방식이 부적절했다는 평가가 곧 대세로 돌아섰다.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을 자진해 공개검증하면서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글썽이었고, 증거가 드러나면 목숨까지 내놓겠다는 폭탄선언마저 내놨다. 속내를 말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했다고 한다. 한데,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았다.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총리를 또 찾아야 한다. 전북은 이번 인사를 주시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이곳 방문 때 모든 공직에 대탕평 인사를 하겠다 제가 되면 호남은 희망의 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보다 원칙과 신뢰를 기치로 내새웠던 정치인. 그런데 현실은 집권 2년 넘게 헛공약으로 남아 있다. 인사에 관한 한 우리는 영남 공화국을 방불케 한다.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429 재보선 지원 유세 과정에서 자기 당의 누구를 총리 시키면 얼마나 잘 하겠느냐는 뜬금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런 속보이는 인사 타령을 했어야 되겠는가. 오히려 좀처럼 변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편중인사부터 정색으로 비판하고 나서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역대 최악의 총리 잔혹사를 지켜보고 있는 판국이 아닌가.문제는 진정성에 있다. 그들만의 진정성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리더의 진정성 결핍은 시민들에게 상당한 위화감으로 다가온다. 정신분석학자 에릭슨은 진정성을 내면과 외면의 자아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았다. 진정성이 없으면 자신만의 내면을 숨기기 위해 악어의 눈물을 흘려가며 그것을 연출한다.(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윤정구 지음). 때문에 새 총리 인선의 최우선 기준도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고 있다.진정성 문제는 지역에서도 이슈다. 진정성은 과오 인정과 반성하는 성찰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제시가 서남권 광역 공설화장장 건립에 참여하겠다는 입장 변화가 주목받고 있다. 기존 자치단체들이 4년 넘게 김제시의 반대 투쟁으로 사업차질과 지역갈등이 생겼다며 반박하고 있는 것. 김제시가 시민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지만 완공이 다가오자 차려놓은 밥상에 슬그머니 수저를 얹겠다는 것 아니냐며 받아치고 있다.비록 양상은 다르지만 전주시의 항공대와 예비군훈련장 이전도 진정성의 맥락에서 교착상태에 빠졌다. 항공대 이전 주민설명회를 열려고 했지만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단순히 행정절차에 몰두하지 않겠다는 전주시측의 언급에도 설명회가 이전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며 주민들의 불신이 거세다. 훈련장 또한 전주시가 (절차이행 없이) 안하무인격 행정을 한다며 완주군이 파열음을 내고 있다.■ 정부자치단체, 진정한 실천력 필요사회분열과 갈등의 전선은 정책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뻘건 격류가 민심 바닥에 흐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 사회를 진정한 사회라고 믿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고 넓다. 지금 정부와 자치단체장에게 필요한 것은 반성과 결의에서 나오는 진정한 실천력이다. 진정성이 분열과 갈등, 그리고 의혹을 다스리는 명약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북에게 새만금사업은 숙명적인 숙제다. 새만금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전북의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 91년 착공 이후 전북은 줄곧 새만금이었다. 그때나 지금도 어딜 가나 새만금이다. 이토록 25년째 불어터진 국책사업은 지역의 자존심마저 자극할 만하다. 그런데 이 사업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글로벌시대에 맞는 무규제 수준의 후속조치가 부진해 본격적인 내부개발에 앞서 주춤거리고 있다. 과연 이 문턱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따라 새만금과 전북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이 전망된다.파격적인 규제 완화 있어야새만금에 감전된 전북의 기대는 단연코 계획기간 내 조기완공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엉뚱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등 바뀌는 정권마다 지원약속을 손에 잡힐 듯이 내놓았어도 사실상 기약은 없었다. 그저 뒷방의 시나리오처럼 선거를 중심으로 찔끔찔끔 한 단계씩 공사를 이어갔다. 도대체 언제까지 갈 것인가. 필자는 새만금 관련기사가 신문 1면에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선거로 개인적 영달과 욕망에 사로잡힌 정치인들 때문에 겪는 혼란이 싫었다.그런 점에서 지난해 7월 한중정상회담에서 한중 경협단지 조성방안에 대해 공동연구를 추진키로 합의한 것은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중국의 거대한 투자 유치를 위한 신호탄이고, 새만금사업의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나아가 19일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새만금 규제특례지역 조성방안의 확정은 중국을 새만금에 불러들이려는 보다 발전된 채비다. 투자의욕도 끌어올리고, 기업투자 단계마다 걸림돌이 되던 각종 규제를 완화해 대중국 전진기지로 조성한다는 것이다.돌이켜보면 역대 정부들은 규제 개혁을 내세웠지만 실패했다. 성장발전저해요인개선위 행정규제완화위 행정쇄신위 규제개혁위 등 거창한 기구들이 이름값도 못하고 잊혀졌다. 노무현도 규제총량제의 의욕을 보였지만 부동산 시장에 대못을 박았고, 이명박은 전봇대를 뽑겠다고 기세등등했지만 더 많은 전봇대를 도처에 깔아놓고 말았다. 그러나 1년전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기억한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이자 제거해야 할 암 덩어리라고 단정했다. 그런 규제와의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새만금사업이 필요한 것도 규제 혁파와 정치권 공조다. 우선 무규제 차원의 제도정비를 말한다. 정부는 한중FTA를 계기로 새만금과 인천, 평택, 영암을 잇는 서해안 지역을 중국의 교두보로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새만금은 인천과 같이 경제자유구역이 있다. 이 라인에서 차별화되려면 지역별 특성화가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파격적인 규제 완화가 관건이다. 그러지 않고 헌 거푸집 속으로 들어가면 제품이 그 거푸집과 똑같은 모양의 붕어빵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야 중국 자본에 새만금이 보이겠는가.또 한 가지는 국회를 그대로 두고 추진하는 개혁은 공염불이 되기 쉽다는 것. 과거 정부의 개혁 실패가 반복되면 안 된다. 그땐 왜 그랬을까. 규제 개혁을 주로 비용과 효과란 경제논리로 접근했을 뿐 규제 권력이 있는 국회와의 공감대를 제대로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규제 완화가 담긴 이번 새만금특별법 개정안도 그런 맥락에서 관측되고 있다. 정부는 4월 국회통과가 목표지만 상임위는 심의대상 법안의 적체 등을 내세워 벌써 생각이 다르다. 새만금이 내부개발에 시동을 걸고 있는 문턱에서 병목이 생겼다.특별법 개정안 4월 국회 통과를그렇다고 국회가 변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헛발질 정책은 극복해야 한다. 새만금의 규제 개혁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부는 국회만 쳐다볼게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는 규제 혁파 분위기부터 확실히 보여 달라. 각료들도 복지부동하는 공무원 위에 얹혀 있는 식으로는 어림없을 것이다. 새만금은 국가의 자산이다. 후대에게 물려줄 좋은 자산이다. 새만금에서 규제 철폐의 진짜 첫걸음을 보고 싶다. 시민들은 모르는 줄 알지만, 항상 마음속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점수를 매기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어느덧 정치가 아닌 게 찾기 힘들어졌다. 요즈음 정치권에서 치열하게 벌이는 복지 논쟁만 해도 그렇다. 상주보다 곡쟁이가 더 서럽게 우는 격이다. 복지야말로 가난한 시민보다 정치인들에게 생사의 문제가 된 것이다. 호남고속철도(KTX) 운행 노선과 수도권 규제완화 문제는 또 어떤가. 이제는 금융감독원의 전북지원 승격, 전주 덕진구보건소의 신축까지 좀처럼 정치를 피해 갈 수 없게 됐다. 정치란 작을수록 아름다운 법인데 공룡처럼 커지니 두려운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그럴까, 필자의 눈에 정치색깔이 배제된 소식은 편안한 감동과 집단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 103.3도나눔과 기부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그런 두려움을 날려 보내기에 충분하다. 보통사람들의 믿음과 진정성이 정치 외곽에서 달팽이 지나간 자국처럼 승화된 아름다움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5일 “지난해 12월1일부터 지난 31일까지 62일간 진행한 ‘연말연시 이웃돕기 모금 캠페인’ 결과, 목표액(55억원)을 넘어선 56억8200만원을 모금했다”고 밝혔다. 목표액이 덜 차면 각박해졌느니, 얄팍해졌느니 사설을 늘어놓는 게 요즘 세태다. 하지만 온정의 손길은 전주 종합경기장 사거리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를 최종 103.3도까지 올려줬다. 이번 캠페인에서는 기업 기부가 줄고 넉넉잖은 가정경제에도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개인 기부가 늘었다. 캠페인 모금액 가운데 개인 기부가 38억1300만원으로 전체의 3분의 2가량(67.1%)을 차지했다. 이는 전년에 비해 5.2% 포인트(5억700만원) 늘어난 것이다. 일정비율을 봉급에서 떼어내는 ‘월급 기부’ 직장인이 늘어나고, 여느 농업인들은 폐농자재와 폐비닐 고철 등을 수집해 판매한 수익금을 선뜻 내놓아 숭고한 나눔의 고리를 이어갔다. 반면에 기업 기부는 전년도(15억1600만원) 보다 줄어든 14억8900만원의 성과에 머물러 모금 비율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썩은 흙에서 영지(靈芝)가 생겨나고, 썩은 풀에서 반딧불이 생겨난다’고 한다. 아무리 경제 한파가 몰아쳐도 기부 의지는 꺾이질 않았다. 지난해 도민 1인당 개인소득만 보더라도 1453만원에 그쳤다. 전국 광역자치단체들 속에서 보면 자그마치 13위다. 여기에다 연말정산 파동과 증세논란 등이 이러한 충격에 가세했다. 그런데도 이들을 기부의 거리로 불러낸 건 뭘까. ‘호밀밭의 파수꾼’(J.D. 샐린저 지음)의 주인공 홀든처럼 사람들이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옆에서 지켜주는 파수꾼 역할과 다르지 않다. 쪼들리는 살림에서도 남을 챙기는 나눔의 정신이다. 얼마나 감동적인가.모금 소식은 또한 공동체의 저력과 경쟁력의 힘도 생생하게 보여줬다. 캠페인이 펼쳐진 2000년 이후 16년 동안 한 번도 목표를 초과달성하는 기록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도 동지섣달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또다시 ‘인동초’ 같은 나눔의 꽃이 피었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기부에서 단합된 힘이 나온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기부가 사람들을 더 단단히 묶어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참여 의무를 심어주고 집단적인 노력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기부는 힘이다. 모금운동에 동참했던 경험과 기억이 우리 의식의 내부에 생생히 살아 있음으로써 삶의 새로운 동력이 된다.■ 감동 주는 '선행바이러스' 확산되길한파 속에 전해진 나눔과 기부의 소식, 우리에게 감동의 공감대와 온정의 에너지가 살아 있는 한 전북은 다시 뛸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간 사사건건 진영논리에 휘둘려 정치적 시련을 겪었던 이 지역에 희망의 열정이 꿈틀대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가운 징표다. 개인의 기부 문화는 사회갈등을 치유하는 소중한 샘물이기도 하다. 큰손이든 작은 손이든 사랑의 손길은 아름답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보다 살 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밑거름이다. 감동과 힘을 주는 ‘선행 바이러스’가 더 확산되길 기대한다. 아름다움도 스스로 가꾸어야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가치 있는 공동의 삶에 신경을 써야 할 때다.
가고 오는 해가 맞닿아 있다. 또 다른 시간의 마디. 무엇을 과거로 보내고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 건 뭔가. 해마다 육십갑자가 반복되고 있지만 한 발짝 떨어져 보면 전북의 올해는 각별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그것의 두 바퀴를 돌아 다시 맞은 갑오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혁명의 발상지는 자랑스러운 역사의 기억들을 후손들의 자부심과 지역의 거대한 전환기로 재구성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남기게 됐다. 국가기념일 제정 놓고 10년 논쟁세월을 거슬러 120년 전의 전봉준을 불러내는 기념행사들은 곳곳에서 유별났다. 혁명을 창극과 미술 등 이런저런 장르에 기념비적으로 담아내려는 열정들이 작업의 띠를 이루었다.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녹두꽃’의 정신적 가치를 추스르기에 바빴다. 그럼에도 대다수 일정이 일시적인 이벤트에 머물고 혁명의 전국화, 세계화, 미래화에는 역부족이었다. 각지의 유적지들을 명소화하거나 관련 프로젝트들도 힘을 얻지 못했다. 가슴 뛰었던 2주갑의 의미가 뭉그러졌다.이처럼 아무리 혁명을 기리려고 해도 한계다. 혁명정신인 적폐 척결과 도약을 위한 과제 수행도 잘 안 된다. 상징적 구심체인 발판이 없어서다. 기념일이 없다. 국가기념일 제정을 놓고 소모적 논쟁만 10년째다. 한심한 일이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논의가 시작됐지만 자중지란으로 시간을 허송했다. 기념재단이 2011년 기념일제정추진위원회를 만들었어도 끝내기는 벽에 부딪쳤다. 소지역간 이기주의가 암초다. 지난달 대전에서 열린 기념일 제정 토론회에서도 고질적인 갈등이 재연됐다. 결론 없이 무산됐다. 이날 참석자들은 “기념일 제정 문제만 나오면 서로 치고받는 모습이 지겹다”며 자조 섞인 목소리를 냈다. 김석태 유족회장도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혁명에 나서 학살을 당한 선조들 앞에 정말 부끄럽다”며 개탄했다. 내년 2월께 재논의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집단적 무능과 무감각이 문제가 되고 있다. 부끄러운 ‘민낯’이다. 언제까지 논쟁을 이어가겠다는 것인가.우리는 빛나는 혁명의 기치를 과거의 기억 속에서 기념일로 새롭게 끄집어내야 한다. 왜? 동학농민혁명의 기념일 제정은 한때 기득권의 과소평가로 왜곡됐던 역사에 대한 재인식과 함께 통합의 역사관을 정립할 수 있게 한다. 당시 봉건사회의 부패에 맞서 민주화를 외쳤던 민중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는 역사의 무게도 더욱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기념일은 살아 있는 역사교육이자 국민통합의 토대가 된다. 국민을 통합하고 지역의 발전을 꾀하려면 강력한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그 한복판에 동학농민혁명이 있다.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동학정신은 전북정신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동학농민혁명은 전북을 넘어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도 과거로 포장된 버전에 머물러 있다. 무장기포일(4월25일)을 기념일로 주장하는 고창과 황토현전승일(5월11일)을 내세우는 정읍 등 지역의 힘겨루기에 밀려 역사의 새장에 여전히 갇혀 있다. 그러다보니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삐걱거리고 있다. 판단이 각각이니 의견은 분열로 치닫는다. 이렇게 손발이 안 맞는 상황에서 과연 혁명의 정신이 더 뻗어갈 수 있겠는가. 경쟁력 있는 사회일수록 가치판단에 갈등이 적다. 물론 사회가 다른 가치는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가치로만 일사분란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그중 어느 것이 먼저냐 하는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이다. 지역 힘겨루기 끝내고 의기투합을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새 희망을 다짐해야 할 때다. 가는 해에 넌더리나는 갈등은 떼어내고 오는 해에는 동학농민혁명의 미래지향적 가치를 놓치지 말자. 그런 점에서 기념일 제정의 해법을 찾는 의기투합을 보고 싶다.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공동체의 길을 가는 모습이 절박하다. 국가기념일은 요행수로 어물쩍 넘어오지 않는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주도체제를 꾸려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 기념일 제정을 끌어내야 한다. 10년이나 기념일 없이 논쟁만 벌였다면 이제 새로운 전환기를 마련할 때도 되지 않았나.
“종은/ 누가 그걸 울리기 전에는/ 종이 아니다.”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감미로운 노랫말을 쓴 오스카 해머슈타인은 행동과 존재 관계를 이렇게 풀어냈다. 아무리 멋진 종이라도 훌륭한 타종수가 없으면 감동의 소리를 낼 수 없다. 전북 출신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등 정치권은 분열과 침체의 시대를 마감하는 혁신의 타종수가 되어주기 바란다.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대폭적인 물갈이로 새 진영이 갖추어 졌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침묵·무기력의 늪에 빠진 정치권우리에게 혁신의 첫걸음은 정치권이 침묵과 무기력의 늪에서 팀워크와 집중력의 광장으로 나오는 것이다. 적어도 과거에는 선거만 하면 특정 정당에 거의 절대적인 표를 몰아주었다. 정권들이 쏟아냈던 정책차별의 피해를 막기 위해 결속으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이 타개할 수 있는 현안과 정치 질서마저도 미망(迷妄)의 껍질에 갇혀 있다. 정치권이 지역경영을 책임져야 할 주체이면서도 중요한 문제만 생기면 유권자의 눈치를 살피거나 침묵의 뒤에 숨는 무기력증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실제 법조계와 재계, 시민단체 등이 호남선 KTX 익산역사의 이전 설립을 추진하고 김제와 완주지역 의회가 동참하고 있지만 국회의원 등 정치권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또 번듯한 컨벤션센터가 없어 행사 때마다 고민이 반복되고 있지만 민원은 정치권의 생각 언저리에 박혀 있다. 지난 9월 해외 바이어들이 몰린 ‘농식품 수출 구매 B2B 행사’도 도청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바람에 지역 이미지가 깎였다. 여기에다 동학혁명 국가기념일 제정, 전주-완주 통합, 항공대 임실이전 등 갈등의 현장에 그들은 보이질 않는다.이곳과 달리 대구시에서는 최근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학교·학부모·투자자들을 설득하여 엄격한 학교정화구역 내에 지상 13층, 객실 192개 규모의 호텔건립까지 결정하는 기염을 토해 냈다. 광주시도 지난 7일 정치권을 비롯 관계, 경제계, 학계, 종교계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모여 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를 출범시켰다. 광주시가 노사민정(勞使民政)의 대타협을 이뤄 자녀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역외 광경은 비단 이뿐 아니다. 지난 4일 전남·경북 국회의원들의 모임 ‘동서화합포럼’에서는 ‘예산 공조’에 한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끼리 똘똘 뭉쳐 예산을 많이 따와야 한다”는 영남 의원이 있는가 하면, “예산만 책임져 주면 최경환 부총리를 비난하지 않겠다”는 호남 중진의원의 말도 나왔다고 한다. 자칫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담합’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오히려 갸륵하다. 같은 날 충청권 국회의원 14명은 ‘선거구 재조정’ 과정에서 지역구 의석수 늘리기에 힘을 모아 냈다.그런데도 전북 정치권은 조용하다. 딱히 이렇다 할 변화가 없다. 지역을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한 거시적 총론 없이 서로 다른 미시적인 각론들이 산발적으로 각개 약진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지리멸렬함은 중앙정부의 독선이나 독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주민의 불행이 되곤 한다. 지역의 무력감과 병목현상이 어디서 발생하는지를 따져보고 과감하게 쇄신에 나서야 한다. 그래서 정례회동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지역 내부를 지휘할 수 있는 체계 정립과 자신들의 결속이 다져질 수 있다고 본다.혁신의 종소리 더 크게 울려라지금 날로 험악해지는 국가경제 환경에서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사투를 벌이고, 대학생들은 생존의 일자리를 얻으려 도서관에 불을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과 동떨어진 정치권이라면 과연 어떨까. 지역의 생생한 존재감은 그들의 단결된 행동 속에서 찾을 수 있겠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이문재의 시 ‘농담’) 혁신의 종소리를 더 크게 울리기 위하여 정치권은 결속하는 행동을 보여 달라. 종을 두드리는 아픔이 클수록 혁신의 엔진은 동력을 받을 것이다.
새로 취임한 단체장이니 의욕적으로 일하지 않겠느냐, 허니문 기간이니 의회도 협조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익산시와 시의회의 대치 상황을 보면 그렇게 보이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주변에 단체장들의 행보가 석연치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참신함이 돋보였던 민선 6기 초선과 무소속들의 돌풍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탄식마저 들린다. 설마 선거판에 난무했던 말의 성찬을 그대로 다 믿은 건 아닐 것이다. 차분·신중함만으론 변화 어려워사람들은 중대한 고비나 극심한 심리적 갈등을 겪을 때 집무실에 영감을 주는 사진을 걸어두는 경향이 있다. 수시로 그것을 보면서 밀고 나갈 힘, 또는 마음을 가다듬는 양식을 고대하기 때문이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2010년 취임 직후부터 국방장관 집무실에 적장의 사진을 붙여놓았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한 순간도 적을 잊지 않고 적의 생각을 읽어내기 위한 장치였다. 그런 점에서 단체장들의 집무실 사진이 주목받는다. 실제 도지사실에는 새만금 신항 조감도가 걸려 새만금사업에 대한 지사의 의지가 투영되고, 기초단체들도 전주의 한옥마을과 군산의 새만금 방수제 현장, 그리고 익산 미륵산성과 진안 마이산의 전경 등 지역에서 펄럭이는 정책깃발을 사진과 사업계획도 등으로 엮어 단체장의 투지력과 철학을 담아냈다(본지 10월 1일자). 임기 중 선거공약 및 현안사업을 챙기면서 쇠락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비장함의 표시일 터다. 어떤 지역이든 이런 변곡점을 찍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융성의 대초원으로 나갈 수 있다. 그동안은 풍향계 없이 인기 있는 것, 표가 될 만한 것들만 관심사였던 통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았던 단체장들이 참으로 유감이었다. 호남선 KTX 익산역사 설립과 전주- 완주 통합 등을 보더라도 공감이 없는 메마른 행정, 원칙이 없는 즉흥적 정책으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 또한 눈물 흘리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고, 능력 있는 인재의 역량을 키워주지 못했다. 그럭저럭 시류에 영합하는 양상이 있다고 종종 비판을 받아 왔을 뿐이다. 헌신으로 결연하게 행동했더라면 울림이 있었을 것이다. 전북은 소득과 인구 증가율, 경찰 치안력, 교권침해 등 각종 지표에서 불행하고 우울한 늪에 빠져 있다. 주관적·객관적 지표가 그렇다. 경쟁력지수가 한 지역의 경쟁력을 획일적으로 재단하는 절대적인 잣대일 수는 없지만 나쁜 분야에선 수위를 다투고, 좋은 분야에선 꼴찌를 다툰다. 그런데도 단체장은 순위가 올라가면 흡사 자기 단체가 잘해서 경쟁력이 올라간 것으로 치부하고, 반대로 내려가면 지역의 경쟁력이 떨어진 것처럼 호들갑이었다.8일이면 민선 단체장들의 취임 100일. 그들의 운신은 대체적으로 차분하고 신중하긴 했다. 그런데 왠지 ‘관리형’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적어도 세금은 아껴 써왔고, 향후에도 소모성 사업은 삼갈 것이며, 복무기강을 바로 잡아 나갈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차분함 뒤엔 소심함, 신중함 뒤엔 ‘리스크 제로’ 사고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아쉽다. 이러한 모습으로 취임식에서 역설했던 소통과 변화의 돌파구가 뚫릴까. 보신의 타성 벗어나 열망 보여줘야이전 단체장들도 ‘미래’를 수없이 강조하고 다짐했다. 하지만 대부분 선거와 함께 사라졌다. 이번에도 얼마나 실속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주민들이 공감하는 시대적 과제를 설정하고, 자치의 틀을 제대로 짜는 작업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뭐가 문제인지 주민이 알아차리고, 누릴 수 있도록 해 달라.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본 것처럼 골을 작렬시키지 않는 수비형 축구에 관중은 열광하지 않는다. 짬 날 때마다 집무실 사진을 바라보며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궁리해야 한다. 제발 보신의 타성에서 벗어난 단체장들의 열망을 보고 싶다.
국회의원이 안 보인다. 많은 도민들이 보기에 꼭 있었으면 하는 그 자리에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요즘 세상일을 보면 지역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를 바로 잡으려는 정치권의 의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북은 문민정부 출범 이후 최근 20여년 만에 ‘무장관 무차관’ 사태가 벌어져 탄식과 허탈감으로 뒤덮였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호남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탕평의 약속이 온데간데없기 때문이다. 현 정부 2기 내각에서 중앙무대와의 인맥은 끊어진 상태다. 재경전북도민회 송현섭 회장은 “현 정권이 전북에 대해 홀대를 넘어 가혹한 탄압을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마저 든다”며 서러움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도내 정치권은 이경옥 안전행정부 2차관이 막판 퇴진하고 한 달이 지나도록 집단적 항변조차 못하고 있다.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지역적으로 농민들은 쌀 관세화 결정을 두고 논바닥을 갈아엎는 등 격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고, 지리산 권역 케이블카 유치경쟁은 ‘친환경 설치 허용’이라는 정부의 관광산업 대책에 따라 자치단체 간 갈등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제2서해안 고속도로 건설도 2017년 추진되지만 전북구간은 사업순위에 밀려 언제 개통될지 모른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중앙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논의가 달아오르면서 전북의 일부 지역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등 정책갈등의 사례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그들이 보기에 어설프거나 한심하게 느껴진다면 그런 정치권을 의지하고 기대하는 도민으로서는 얼마나 답답한 노릇일까. 언제 어디서부터 편중 인사와 불균형 개발이 시작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가 있든 이처럼 곳곳이 갈등이 심해지게 된 제도적 책임은 정치권이 져야 한다. 이들 한심한 현상은 현안에 대한 특정 정당 일색인 국회의원들의 자세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흉흉한 민심을 외면한 오만, 정책조정력 부족, 서민 생계를 내팽개친 무지, 독단적 행보가 대중적 이미지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가. 눈앞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겠지만, 그러한 고민이나 자기 변화에 대한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양상이니 심각한 위기감을 공유하지도 못하고, 지역쇄신의 방향성을 합의하지도 못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나 홀로 정치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호남지역 야당 국회의원들 편한 세상 다 갔다”고 조롱 섞인 호언을 하겠는가. 향후 20개월 동안 선거가 없다고 안심할지 모르지만 이는 유권자의 기억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성 밖에는 새누리당과 무소속 등의 검객들이 버티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전북은 11명의 국회의원(당시 민주통합당 김윤덕 등 9명, 통합진보당 강동원, 무소속 유성엽) 중 7명이 초선으로 새 진영을 갖췄다. 그렇다면 쇄신다운 쇄신도 있었는가. 부대가 새 부대인 것은 맞을는지 모르나 그 안에 새 술이 담겼는지는 의문이다. 지역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일의 우선순위도 불투명하게 굴러가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곤란하다. 그러나 동이 트기 전 어둠이 가장 짙다. 해가 솟아오르려 하는데 어두움에 눌려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바로 성장의 깃발을 만들어야 할 때다. 문제는 팀워크와 집중력이다. 공동체는 거대한 톱니바퀴다. 정합성(整合性)을 유지하면서 크고 작은 바퀴가 제자리를 잡고 정확하게 맞물려야 쇄신에 동력이 붙을 것이다. 혼자 돌아가면 나머지는 겉돌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건강한 야당이 존재해야 여당도 똑바로 서게 된다. 새정치연합은 ‘재미 봤던’ 지역 냄새가 벗겨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도 지역소외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공기업 임원이나 기웃거리던 관행이 계속된다면 백전백패다. 지역현안에 초당적으로 협력해 달라. 정치인들이 국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지만, 어떤 리더십으로 시간을 다룰지 주목된다.
민선 6기 출범이 역동적이다. 단체장들이 취임 첫날부터 강조한 것은 소통과 변화였다. 취임식은 신선하고 다양했다. 귀빈석을 주민에게 배정하거나 외부인사 초청 없이 직원행사로 열기도 했다. 취임식을 하지 않고 환경미화원과 쓰레기를 치우는 것으로 대체한 단체장도 있었다. 주민의 눈높이에서 시정을 펼치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이 같은 변화의 물결 속에서 새 인물과 무소속의 대거 입성 등 64 지방선거가 빚어놓은 새로운 지역정치권 구도가 자치행정에 어떻게 작용할지 관심사가 되고 있다.■ 갈등 해결 원칙방법 만들고 관리를이번 선거는 돌풍을 몰고 왔다. 전북지역 광역기초 단체장 15명 중 무려 10명이 교체되고, 무소속 7명이 기초단체장 대열에 참여했다. 지난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 초선 단체장이 3명에 그치고, 무소속 후보가 한 곳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이번 충격의 파란은 적지 않다. 그동안 특정정당이 휩쓸었던 표밭에 경고음이 울리면서 향후 자치단체 운영에 역학적으로 일대 변화를 맞게 될 전망이다. 사업성격에 따라서는 정당과 무소속간 갈등이 벌어질 공산이 있어 자칫 분열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새로운 전선 형성은 지역의 현안 추진에 복병으로 꼽히고 있다. 우리 사회는 분명 다분법의 지대로 진화했지만 이분법적 정의를 요구하는 쟁점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고, 중대한 정치적사회적 갈등이 이념분쟁의 경계선에서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소속 단체장 취임식에 새정치연합의 이춘석 전정희(익산), 최규성(김제 완주), 김춘진(부안) 국회의원은 정치적 벽을 넘으려는 듯 참석했지만, 박민수 의원이 지역구인 진안장수임실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우려의 시각에 휩싸이고 있다. 이와 함께 선거가 반복되면서 지적된 것은 신구세력간의 경직성이다. 신규는 구세력의 정책에 철퇴를 가져왔다. 심각한 오류가 있다면 바로 잡는 것이 당연하지만 지금도 그 이념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송하진 지사가 사람과 돈이 모이는 사돈행정의 기치를 내걸고 조직을 점진적으로 개편하거나, 새만금사업은 일본 도레이 공장의 기공식에 참석하면서 도정의 특수 키워드로 삼은 것은 시의적절한 궤도 설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 틀을 짜는 기초단체들이 과거의 관성을 얼마나 털어낼지는 알 수 없다. 단체장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가 또 있다. 전국적인 의제이지만 분권시대에 걸맞은 지방행정의 개념을 세우는 일이다. 현실을 돌아보면 자치단체는 예산과 보조금, 국책사업 등을 끌어오기 위해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그러다보니 지방자치는 성년을 맞고서도 중앙정부의 출장소, 또는 중앙정치의 식민지라는 얼룩진 도식이 오히려 굳어지고 있다. 열악한 재정을 이유로 중앙의 예속이 가속되면서 투쟁 모드의 형국이다. 무소속은 정치권을 잇는 디딤돌까지 없기 때문에 상황이 더욱 그렇다.그러나 민주사회에서 주요 이슈에 대해 갈등이 불거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지간하면 갈등을 없애기보다 갈등을 해결할 원칙과 방법을 만들고 관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사회적으로 자유와 인권투명성 등의 가치는 누구도 되돌릴 수 없을만한 규범이 되었고, 다르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구동존이다. 같은 것을 추구하지만, 차이는 인정한다는 의미다. 야구를 보더라도 오른손 타자만 홈런을 치라는 법은 없다. 왼손 타자도 만루 홈런을 건져 박수갈채를 받는 일도 흔하다. ■ 같은 것 추구하지만 차이 인정해야이번에 취임한 단체장들은 정당과 무소속의 마찰, 전현직의 긴장관계, 중앙과 지방(광역과 기초)의 갈등으로 상징되는 단체의 폐쇄성과 정체성이 지역발전과 복리증진의 동력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무소속 단체장들의 복당, 입당설도 정당 색깔 없이 검증을 받았기 때문에 주민들의 선택권을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처사다. 다양한 환경이 유혹과 고난의 가늠자가 되겠지만 지방분권과 주민자치 정신의 실천에는 한 목소리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결기 없이 큰 전북은 이뤄지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집단적 불신 상태에 빠졌다. 충격적인 집단 희생과 공동체를 감싸고 있던 거짓의 껍질이 깨지면서 사회적 공황 세태를 겪고 있다. 기본을 일탈한 행위들이 주변에서 관행적으로 판쳤다는 지적은 아직 듣기만 해도 섬뜩하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고 믿고 싶지만 누구 말을 따라야 하고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냉소가 싸늘하다. 구조적인 부실과 무책임의 실체가 겹쳐 드러나면서 신뢰 기반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곧이곧대로 따라나서면 바보 되기 십상이거나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불신의 늪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개탄스럽다. 정부 신뢰도·국가 경쟁력 동반 하락이러한 안타까움과 믿음의 깊이는 사고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에 비할 바 아니겠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내놓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부 신뢰도를 보아도 불신의 선이 기저에 흐르고 있었다. ‘국민의 23%만이 정부를 신뢰한다’는 평가는 10명중 2명 정도만 정부를 믿는 것으로 밑바닥 수준을 보였다. 이런 결과는 조사대상국 평균(39%)에 비해 격차가 심하고, 아픔이 절절한 이번 참사까지 조사에 반영됐다면 민심은 한층 더 신뢰도를 후려쳤을 것이 뻔하다. 문제는 이러한 정부 신뢰도가 국가경쟁력의 동반하락이라는 또 다른 걱정거리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사회 혼란은 그 중심에 대통령이 서 있다. 대통령은 사태해결의 시작으로서 자신부터 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동안 낯선 수첩인사와 경직된 국무회의의 분위기 등을 지켜보면서 많은 이들이 근심과 불만을 갖게 됐다. 그래서 대국민담화 발표와 후속은 정국 향방을 가르는 중대 갈림길로 보인다. 국회와 언론 등에도 분명 일정 부문 책임이 있다. 여야의원들은 임박한 지방선거 일정에 치우쳐 본연의 임무는 뒷전이다. 사고 관련 장관들에게 “지금 정신이 나갔느냐” “뭐 그렇게 변명이 많냐”고 윽박지르는 구태를 재연했지만 오히려 ‘누가 정신이 나갔는지 모르겠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언론도 오보와 부정확한 보도로 부메랑의 난국을 맞았다. 국내 주요 방송사와 신문사들이 보도의 중립성과 정확성에 의혹을 제기하는 유족과 여론의 비판에 부딪쳤다. 이들 언론사들은 사고 발생 1개월이 지나면서 자사 보도와 관련해 “부정확한 보도 사과드립니다.” “언론사로서의 신뢰가 무너져가고 있다.”면서 자조 섞인 사죄문과 반성문을 뒤늦게 쏟아냈지만 시청자와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이렇게 정부, 정치권, 언론도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들이 확산되면서 자신의 신념과 같은 정보만 받아들이고 아니면 무시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또 알려졌다시피 탈출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구난(救難) 당국이 제각각 허둥대는 공허한 활극이 어른들을 얼마나 부끄럽게 했는가. 원칙대로 따른 사람만 희생당하고, 사고 와중에도 남을 더 생각하는 청소년 세대의 꿋꿋한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지금 희생된 그들의 또래들은 기성세대를 지켜보며 믿음을 버려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무너진 연대감은 어른들이 책임져야 할 이 시대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마냥 자괴감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 현장에 몰려간 수많은 인근 어부들과 자원봉사자, 구조행위를 하다 숨진 승무원과 교사 등에서 희망의 싹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유권자 적극적 탐색·현명한 선택 필요 이번 참사가 정치의 중요성을 속속 드러내 보였다. 그런 가운데 22일부터 공식 선거전이 펼쳐졌다. 애도의 물결에 휩쓸려 사뭇 열기를 느끼기는 쉽지 않지만, 전북지역 후보자 40.2%가 전과 기록이 있고, 병역을 마치지 않은 남성 14.3%가 심판대에 올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어느 때보다 유권자의 적극적인 탐색과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이유이다. 정치의 순환구조를 뜯어고치고, 상실한 신뢰의 사회 자본을 회복하기 위해 이번 선거에서 뼈를 깎는 성찰의 채찍으로 ‘개혁의 깃발’을 골라야 한다. 우리 사회에 이런 혁명적 의식 변화의 강물이 흐르지 않고서는 모래성의 비극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4월이 봄빛으로 활짝 열렸다. 가는 길, 보이는 길 곳곳에 봄이 섰다. 자고나면 꽃나무들이 확 터지듯이 활짝 피어나고 있다. 마중 나가지 않아도 봄은 어느새 언 땅을 헤치면서, 말라버린 나뭇가지를 깨우면서 우리 곁에 나타났다. 마음과 삶이 펴지는 새로운 정치 변화도 이렇듯 마중 나가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숙한 민주주의는 결코 기다려서 오는 봄과 같지는 않다. 선거 공약들 상당수 말잔치에 그쳐이제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물론 2개월가량 남았지만, 그건 일반인들의 생각일 뿐 정치인들에겐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러다보니 산과 들에 핀 봄꽃이 치열하게 자리 경쟁을 벌이며 상춘객을 유혹하는 것처럼 표를 모으는 공약들을 동시다발로 터트리고 있다. 이들 장밋빛 공약은 도지사와 시장·군수, 그리고 교육감 후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당선되고 싶은 광역 및 기초 의원 후보들도 앞 다퉈 정책 공약전선에 뛰어들고 있다.그러나 선거공약들은 상당수가 말잔치에 그쳤다. 역대 대통령들은 중간평가(노태우), 쌀시장 개방 저지(김영삼), 의원내각제 개헌(김대중), 청와대 이전(노무현), 과학 비즈니스벨트 선정(이명박) 등을 내걸었다. 그러나 국익과 사회질서 등을 이유로 지켜지지 않았다. 현 박근혜 정부도 표심에 던졌던 기초선거 공천 폐지의 공약에 대해 새누리당 지도부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면서 결국 파기를 선언했다.이런 위약 현상은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적지 않은 시사점을 남겼다. 선거학습의 반복에 따라 ‘헛공약’이 어느 정도 퇴조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선심성으로 남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 공약에 대한 비교·검증도 최소한 선거일 60일 전까지 공천을 완료한 뒤 발표돼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지만, 여야일정마저 지연되면서 제대로 된 미래계획서가 나오고 충분한 평가가 이뤄질지 우려된다. 더군다나 이번 선거는 야권 통합 등 중앙정치권의 이슈에 갇혔을 뿐 아니라 1000명 안팎의 후보들이 도내에서 나설 것으로 보여 무슨 수로 검증하고, 걸러내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시간에 허덕이는 사람이라도 도지사와 교육감 정도는 대강 점지하고 있겠지만, 기초선거는 후보 난립에 따른 다자구도로 치러질 공산이 커지면서 필통 속에 나란히 도열한 색연필처럼 고만고만한 무슨 의원, 무슨 인물들에 대해선 판단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그렇다고 황당한 공약은 정책이 아니다. 지나치게 많은 활동 계획을 나열하거나 예산편성과 집행을 어떻게 감시할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공약만 내세운다면 주민생활에 별 고민하지 않은 후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와 함께 단체장 선거공약은 재정범위에서 제시돼야 한다. 매니페스토 운동이 한계가 있고, 각 캠프에서 개발 중인 비밀병기를 검증할 방법이 없다면, 아예 단체장 공약을 예산규모로 제한하는 방법을 고려할 만하다. 거짓말 정치인에게 매서운 철퇴를마찬가지로 후보들도 좀더 정직해져야 한다. 가난에 찌들어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행복한 신데렐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유권자 앞에 솔직히 밝혀야 하지 않을까. 누가 있어 ‘우렁각시’처럼 일터에서 돌아오면 공짜로 집 안에 밥상을 차려줄 수 있으랴. 오히려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지 않으면 다행이고, 또 ‘공짜’로 주지 않아도 좋으니 주민들의 ‘쪽박’이나 깨지 않으면 도와주는 것이다. 정치권 탓만 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다. 거짓말 정치인은 매서운 철퇴를 가하도록 유권자가 변해야 한다.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적 거짓말은 파렴치한 사회범죄행위임을 명백히 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바뀌고 우리의 삶이 꽃피게 된다. 그러려면 학계·시민단체·언론 등이 지나간 선거에서 무엇을 했는가를 깊이 성찰하고, 돌아온 이번 선거에서 각자의 몫으로 새롭게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것이 늪에 빠진 전북의 살림을 뜯어고치는 출발이다. 과연 우리 복이 이 정도에서 끝날 건지 아니면 더 뻗어갈 건지 기로를 맞고 있다.
다시 지방선거철이다. 후보군들이 수면위로 떠오른다. 입지자들 저마다 벌써부터 메시아인양 목소리를 높인다. 한데 그들 비전은 흐리멍덩하고, 포부와 다짐들도 지상낙원을 만들 것처럼 난무하고 있다. 선거는 그 결과에 따라 지역을 괜한 잔병에 시달리게 하거나 미래희망을 갱신하는 환풍구가 되기도 했다. 이런 선거에서 정당 공천은 정치인과 유권자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정치 메커니즘의 정수로서 빛을 발한다. 그런데 역대 공천은 여야를 막론하고 온갖 잡음과 물의가 끊이지 않았다. 정당공천 폐지, 사실상 물 건너간 듯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이달 말까지 정당공천 혁신에 나섰지만 이번에도 한계에 부딪쳐 있다. 기초단체장(시장 및 구청장) 예비후보 등록시작인 21일을 넘기면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문제를 결론내지 못하고 있다. 물러서지 않는 여야의 입장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팽팽하다. 대선공약대로 정당공천을 폐지하자는 민주당과 폐지 대신 상향식으로 공천하겠다는 새누리당의 ‘게임 룰’ 싸움만 계속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의 큰 변수였던 정당공천 폐지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새누리당이 이처럼 백지화 방안을 바꿔 새로운 공천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야권의 ‘공약 파기’ 공세에 맞불을 놓겠다는 대응전략도 담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계획대로 온전히 실현될지는 미지수지만 독자적 방식을 만든 셈이다. 민주당도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 대여 공동전선을 구축해 폐지 관철을 위한 연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여야 간 독자행보로 2월 국회에서 공천 폐지는 불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무리 지적을 받아도 당리당략에 따른 갑론을박만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하고 적극 추진했던 민주당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 내부에선 공천 폐지가 무산된다면 ‘민주당도 공천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이 우세한 가운데 ‘민주당만이라도 무공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론이 여전해 어느 쪽도 선택할 할 수 없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다만 당 차원의 결론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인 25일 이후로 미뤄졌다. 안 의원 측도 정당공천 폐지가 불발될 경우 대응책에 대해서 논의된 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야권 공조 수위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이 바람에 민주당의 텃밭인 전북지역 출마 예정자들이 혼선과 혼란에 빠졌다. ‘안철수신당’인 새정치연합의 창당이 내달로 다가오면서 이런 현상은 가중될 것으로 관측된다. 그동안 도민들은 전북정치권의 활동에 허탈해 왔다. ‘민주당 공천= 당선’이란 중독성 높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지역 실상은 만성질환을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복된 실패가 지역의 어두운 그늘로 남아 있다. 그 분노와 낙담이 선거판에 떠다니고 있다. 그런 불만은 정당 비판으로 그대로 옮겨 간다. 민주당은 분노의 공유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대선 패배 후 ‘회초리 투어’까지 보여주며 머리를 숙였던 민주당이 만일 새누리당을 지렛대 삼아 공천을 전면 실시하게 되면 그것은 개혁 저항에 동조하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선택적 무공천을 하면 어떨까. 첫 단추는 임실군수 선거에서 끼웠으면 한다. 현행 공천제도 밖으로 튀어나가는 정치활동의 병리적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임실군은 1995년 민선이후 무소속 이철규·김진억과 이형로(새정치국민회의)·강완묵(민주당) 전 군수 4명 전원이 중도하차했다. 일련의 불명예로 지역이 후폭풍을 맞고 있다.후보들 옥석 유권자가 선택하도록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상황에서 민주당은 자유롭지 않다. 인물을 제대로 뽑지 못한 당 차원의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더디고 힘들겠지만 그 길을 검토하길 바란다. 후보들의 옥석은 유권자가 가리면 된다. 민주당의 역량과 의지가 시험대에 선 것이다. 말로만 공천개혁을 외칠 게 아니라 현실적인 무대에서 실천해야 한다. 과정이 참신하면 유권자는 승패와 관계없이 박수를 쳐줄 것이다. 오직 승리라는 목표만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개혁이고 쇄신인가. 새누리당도 이런 지적이 예외가 될 수 없다.
며칠 전 비바람에 낙엽이 졌다. 속절없이 떨구어 누운 저 낙엽의 조락은 매양 겪는 일이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왠지 가슴 한편이 서늘해진 것은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되어버린 정국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피폐해진 민심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싸움이라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신경을 긁어대는 건 꽉 막힌 대치정국에 짓눌려 민생 자체가 정치판에 오르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경색된 정황에다 한파까지 겹치면서 서민들은 예전 같지 않은 몸부림이지만, 그 한 복판에 나눔이 살아 있었다. 형편 어려울수록 온정 더 베풀어살림살이가 빠듯해졌는데도 연말 온정의 아름다운 사연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국내의 대표적인 공식 모금기관인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는 최근 개인이 1억원을 은행계좌로 보내왔다. 익명으로 내놓은 거액의 후원이라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바람에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수가 도내에서는 10명으로 늘어났다. 물론 배려와 나눔이 이처럼 꼭 많이 내놓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정성으로도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아이러니컬하게도 형편이 어려울수록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공감은 더해가는 듯하다. 전주시 우아동 김규정(35)·홍윤주씨(31) 부부는 기초생활 수급비와 장애수당에서 매년 꼬박꼬박 10여만원씩 모아 5년째 모금기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전동 휠체어가 없으면 외출도 쉽지 않은 뇌병변 1급 장애와 지체장애 2급을 각각 앓고 있는 중증장애인이지만 기꺼이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한다. 김씨는 “나보다 더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감동이 따로 없고, 천사 또한 이들을 두고 하는 말 아닌가.이처럼 자신 보다 못한 처지를 챙기려는 보통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개인 기부를 보면 2010년에 34억5700만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51억7300만원으로 2년만에 17억1600만원이 증가했다. 개인 대 법인의 기부 비율도 53대 47에서 60대 40으로 벌어지면서 ‘작지만 숭고한 정신’이 가슴 뭉클하게 한다. 이런 가운데 공동모금회는 엊그제 도청 광장에서 ‘희망2014 나눔 캠페인’ 출범식을 갖고 연말연시 이웃돕기 모금활동에 들어갔다. 해마다 찾아오는 ‘사랑의 온도탑’도 전주 종합경기장 사거리에 어김없이 설치됐다.본지가 보도한 ‘어려운 이웃에 사랑의 불씨를’ 시리즈는 지역의 현실이 얼마나 힘들고 열악한지 그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전북은 가구당 평균소득과 자산규모도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여전히 전국 최하위 수준을 맴돌고 있다. 현실적으로 나눔의 여유를 가진 곳이 그리 많지 않게 보인다. 그런데도 올해 목표액은 지난해 모금액 보다 오히려 3% 상향된 48억원. 사랑의 온도도 지금까지 14년 연속 초과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저성장 경제의 질곡에서 끌어올리는 나눔의 패러독스(역설)가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힘겨운 환경에서 어떻게 이런 열정이 나올 수 있을까. 우리는 살맛나게 해주는 숭고한 나눔과 희생정신 덕분에 행복하다. 사회가 온통 약삭빠른 이기주의에 물든 듯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증거다. 가진 사람들에게는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기부의 저변이 튼튼하지 않다는 건 문제다. 이웃을 내 몸같이 도우려는 나눔의 정신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기부금을 투명하게 운용하지 않는 단체나 기관들의 일탈 행위도 나눔 의욕을 꺾는 요인이 된다. 나눌수록 아름답다는 믿음 퍼지길나눔은 서로를 배려하고 고통을 감싸주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차원을 넘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동체 의식을 체득하게 해준다. 따라서 한해를 보내는 세밑을 맞아 내 안에 있는 욕망 덩어리를 조금 비우고 이웃을 살펴보는 배려의 마음으로 채워 보자. 특히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사람의 고충을 나눔을 통해 나눠야 한다. 나눌수록 아름답다는 믿음과 행동이 골고루 퍼지길 기대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보다 훈훈해지고 건강해 질 것이다.
호남 인구가 충청권에 밀렸다는 소식이 무척 충격적이다. 인구 변화는 단순히 지역 간 인구 규모의 차이라는 수준을 넘어 정치·경제·사회적 함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지역 대립이나 정당 구도를 극복하려는 자기반성과 혁신이 절박하고 중요해 보인다. 이때 굳건한 체제를 유지하던 지역이 시대적 흐름을 읽어내지 못하고 다른 곳에 밀려 한순간 변방으로 내몰린 역사적 경험을 떠올려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과연 전북은 거센 변화의 바람을 막아낼 수 있을까. 이 바람의 끝이 걱정이다. 인구에 따른 선거구 재편론통계청 등에 따르면 호남지역 인구는 이미 지난 5월말 충청권에 추월됐다. 충청지역이 525만136명으로 전북과 광주·전남을 408명 앞질렀다. 그 여파로 당장 유권자 분포 바다에도 높은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지난달 말 현재 호남권이 416만5475명으로 충청권의 416만6344명 보다 869명 급감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세종시가 갈수록 자리 잡아 가는 가운데 이런 추세로 가면 차기 대선이 실시되는 2017년에는 31만명 가량의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올 지경이다.인구 역전 사태는 첫 조사를 실시한 1925년 이후 처음 있는 일. 당시 전북 인구는 영농법의 발달과 전쟁 감소 등의 영향을 받아 134만430명을 기록하고 그 이후 계속 팽창해, 1966년에는 262만3708명까지 오르면서 지역의 존재를 떨쳤다. 그렇지만 산업화 시대를 맞아 과거 정권들의 경부 축 중심 개발 정책에 눌려 지역경제가 가라앉고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역외로 새 삶을 찾아 나서는 이동인구가 줄을 이었다. 그 결과 2005년을 거치면서 190만 선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런 변화는 곧바로 전북의 정치지형에 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금 국회의원 의석수가 호남이 충청 보다 5석이 많지만, 충청권이 더 많은 의석을 요구하며 잇따라 군불을 때고 있다. 새누리당 정우택 최고위원이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표의 등가성이나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선거구 조정문제를 제기하고, 지난달 30일에는 충청지역 민주당 정치권이 자신의 선거구 증설을 주장했다. 인구 감소에 따른 선거구 재편론은 적당히 덮어둘 상황이 아닌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그러나 이상하다. 전북은 어떤 고질병에 걸렸기에 이슈가 생겨도 고물 화차가 고산준령 올라가듯 하는가 말이다. 정치권과 자치단체장, 시민단체 등이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숨 막힐 듯한 침묵만 보인다. 무관심하다 못해 무심하다. 무기력한 정치권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고 어떻게 인구를 늘려나갈 수 있겠는가. 도대체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요즘 지역이 잘못돼 가고 있는 것 중 심각한 것은 가치의 혼돈이다. 의석수 조정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등 정파적 차원에서만 이번 사태를 해석할 뿐이다.현 상황에서 인구 증가 대책에 대한 치열한 토론과 대응능력이 나오길 바란다. 인구수는 국회 의석수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경제와 사회적인 주요 지표가 되고 있는 까닭이다. 전북대 서거석 총장은 "인구의 불균형이 심한 상황을 기초로 한 대학 평가 기준은 잘못됐다"면서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전북의 입장에서 평가순위에 손해가 많다"고 불만을 내놓았다. 국가가 지방자치단체에 예산을 지원하거나 중앙정부의 인재 등용도 대체로 인구수 기준으로 하면서 빈익빈 악순환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전북 인구 증가 대책 나와야이번 인구 변화는 둑이 터지는 일의 시작인데도 지역경영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자기들 계산에만 몰두하고 있다. '대들보 썩는 줄 모르고 기왓장 아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별일 아닌 듯이 어영부영 넘어가서는 안 된다. 문제를 당연시하는 타성을 바꾸지 않고는 우리 지역이 발전할 수 없다. 변화의 그림자를 간파하지 못하고 경각심과 대응력을 높이지 않으면 둑이 터지듯이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큰 눈으로 정확하게 인식해야 지역이 '침체 피로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도민들은 결의에 찬 장면이나 정책 충돌의 긴박감도 경험하길 원한다.
대학에 출강하면서 옆에 있던 조교에게 "요즘 학생들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하니까 조교의 답변이 의미심장했다. 불안해서란다. 도서관을 벗어나면 다른 학생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아 가능한 한 도서관에 머문다는 것이다. 자발성은 불안감의 또 다른 이름이며, 이런 불안이 캠퍼스는 물론 사회 곳곳에 떠돌고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 세대가 비에 젖은 낙엽을 우려하며 '퇴출의 공포'를 안고 산다면, 자녀 세대는 '진입의 불안' 앞에 서성거리는 게 요즘 우리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미래가 어둡다는 경고음은 이제 새 소식이 아니다. 문제는 고난이 닥쳤을 때 이를 이겨 나갈 역량과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고 있느냐다. 자신의 잘못이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힘들게 하는 환경은 삶을 위협하거나 아예 삼키려 한다. 살아보려고 애쓰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에게 그 개인도 어쩔 수 없는 불행이 닥친다. 그 불행이 자신의 힘으로,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경우도 가끔 있다.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참을 수 없는 한계상황에 내몰리게 되면 끝내는 자살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그러나 사회지표 중에서 자살률만큼 음울한 지표가 또 있을까. 내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우리사회의 자살률을 살펴보면 섬뜩하기조차 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011년 31.7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 해 동안 자살자가 1만5906명으로 하루 4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이 같은 자살률은 한국경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8년 연속 1위다. 참담한 성적표다. 너무나 많은 이웃들이 혼망한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마음이 더욱 처연해지는 것은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의 1위가 자살이라는 비통함 때문이다. 자살의 이유는 제각각일 게다. 하지만 이들의 자살은 아무래도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와 경제난, 취업난 등으로 인한 무한 경쟁과정에서 엄청난 낙오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병리를 핵심이유로 꼽을 수 있겠다. 게다가 전북의 청소년 자살률이 전국 최고라는 상황은 설상가상의 충격이다. 전국 평균치를 크게 웃돌고, 도세가 비슷한 충북에 비해 2배 이상 높다.(3월27일자 본보 보도)지난해 도내 청년층의 고용률이 전국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최근 고용노동부의 노동시장 분석도 이런 지역자살률과 무관하게 보이질 않는다. 과도한 경기침체는 경제전반에 큰 충격이 될 뿐 아니라 결국 자살의 증가로 사회불안까지 야기한다는 점에서다. 자살에 대한 치밀한 토털 케어(종합관리) 시스템도 구축돼 있지 않고 지원 체계는 촘촘하지 못하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자살예방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비극이 잇따르는 건 이처럼 자살을 막기 위한 사회적인 시스템이 허술하기 때문이다. 자살은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갖고 풀어가야 할 과제다. 국가가 나서서 장치를 마련하고, 동시에 전 국민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사회도 더 이상 자살을 '질병'이 아닌 '허약한 성격 탓'이라고 인식하거나, 자살자를 '부적응자'로 낙인찍어서는 안 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삶의 신경통을 앓아온 자살자나 자살 발생 위기의 사람들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해졌다. 누구도 그들을 자살지대로 내몰 수는 없다. 내몰려서도 안 될 일이다.무슨 명분이라도 자살은 안 된다. 아무리 큰 나무도 생명을 잃으면 순식간에 썩어 넘어진다. 반면에 보잘 것 없는 작은 풀이라도 생명을 간직하고 있으면 모진 풍상에도 꽃을 피운다. 생명을 품은 씨앗은 반드시 싹이 나게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의 또 다른 이름은 희망이 아닌가. 극단적인 선택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생명은 누구에게나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정부와 사회 각계각층은 대책과 생명존중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쳐 지금 고단함에 처한 그들을 정상 궤도로 복귀시켜야 한다.
2007년10월24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김제공항 건설은 미래에는 긍정적이지만 더 시급한 게 있다"고 못 박았다. 17대 대선의 한나라당 후보였던 그는 전북지역 언론의 편집·보도국장과의 만찬자리에서 당선에 앞서 공항건설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당시 새만금사업과 함께 지역의 최대 이슈였던 전북권 공항의 날개가 일찍이 부러져 나간 것이다. 하지만 새정부 들어 늪에 빠졌던 공항문제가 수면위로 올랐다. 항공환경이 진전되면서 정부의 인식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공항은 전북에서 어떤 존재인가. 그저 한 지역의 단순 사회간접자본인가. 아니다. 그런 취지에서 전북일보는 2007년8월17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실었다. "전북으로서 공항은 가장 필요하다. 통상 외국 바이어나 투자자들이 인천공항으로 들어올 때 1시간권내 지역에서 투자상담을 벌이고 간다. 전북은 4~5시간이 걸려 경쟁력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접근성은 그만큼 중요하다. 아무리 전북이 기업유치를 외쳐도 기업이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공항 등 인프라 구축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요한 공항건설이 설치고시까지 마치고 답보 상태다. 1999년 기본·실시설계 용역을 거쳐 용지매입 등 1628억4600만원이 투입된 김제시 백산면 일대 김제공항은 2003년 감사원의 지적으로 중단됐다. 항공수요와 경제적 타당성을 앞세운 감사결과다. 대신해 군산공항과 새만금신공항이 전북권 공항으로 부상했지만 보안문제와 고도제한이 얽혀 난항이다. 제4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안(2011~2015)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김제공항 보다 경제성이 낮게 평가됐던 전남 무안공항은 2007년 개장했다. 이런 이유로 김제공항 부지 150만2376㎡(45만4465평)는 7년째 고구마와 배추를 심는 농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임대사업은 고작 연간 1억7000여만원의 수입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경비행장 공모사업에도 선정됐지만 아무런 후속조치 없이 방치되고 있다. 막대한 국가예산이 낭비되고, 전북의 항공정책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미망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군산공항과 새만금신공항이 김제공항의 대안으로 혼란을 겪으면서 지금껏 정부마다 정책이 일관성을 잃는 파행의 연속이었다. 문제는 소음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대 외에 국회의원 등 도내 정치권의 지역 이기주의가 편승하면서 추동력을 상실했던 점이다. 사분오열하는 상황이 정부의 사업유보에 빌미를 제공한 셈이었다. 그러나 김제공항은 환경이 바뀌었다. 이미 지난 17일 지방행정연수원의 이사차량을 시작으로 13개 공공기관이 2015년까지 이전해 전북혁신도시 시대가 열릴 판이다. 새만금사업도 9월 개발청 개청으로 가속이 전망되고, 내년 3월에는 무주 태권도원이 개원되는 등 10년전 감사국면과는 잠재수요가 판이해졌다. 김제공항 부지를 다시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요부족이 공항 개항 시점에는 극복할 수 있게 됐고, 타당성 용역과 설계 용역, 부지 매입 등을 추진해야 하는 신규 부지와 달리 이곳은 그 절차가 모두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국토교통부가 김제공항 부지의 활용방안 마련에 착수한 것은 전북권 공항의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적기가 아닐 수 없다.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될 경우 전북은 '교통의 섬'이란 오명을 쉽게 벗지 못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공항은 또 글로벌 경쟁시대에 필수가 아니던가. 전북도민은 원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엊그제 밝힌 "지역공약사업은 꼭 경제성만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발언이 항공오지 전북에 청신호가 되길 바란다. 지역발전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그렇게 추진돼야 옳다고 생각한다. 박근혜정부의 관심을 촉구한다. 물론 전북도와 지역구의 눈치를 보는 정치권도 전북권 공항의 사업재개에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들에게 도민들이 언제까지 원거리 노선의 공항버스를 이용하게 할 건지 묻고 싶다.
최근 우리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다원사회로의 진전이다. 다원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사안마다 견해와 해법이 충돌한다. 그 결과 각종 갈등이 증가하고 사회균열은 강화된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도 부모와 자녀가 생각이 다르고, 형제들 간에도 미묘한 긴장이 흐르는 게 우리 사회의 자화상일 터다. 이 때문에 어느 조직이든 갈등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변화와 혁신은 추진력을 얻을 수도, 파멸로 결론 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요동치는 이런저런 물결을 막아낼 방파제가 없어 안타깝다. 당장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전북 이전문제를 보라. 대선 기간에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모두 기금운용본부의 전북이전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박근혜정부 들어 별다른 진척이 없자 지역여론이 들끓고 있다. 기금운용본부의 이전만 그런 게 아니다. 전주와 완주의 통합을 둘러싸고 완주지역을 중심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급기야 26일 완주지역 주민투표로 통합운명을 가름하게 됐다. 전북일보 여론조사를 보면 찬성의견이 증가하는 추세여서 투표결과가 세인의 관심거리이다.35사단과 항공대의 이전도 갈등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전북도가 지난달 사업부지에 포함된 임실군 소유의 군유지에 대해 강제수용 방침을 결정하면서 인화성이 강한 이슈로 떠올랐다. 게다가 서남권 광역 화장장 건립사업은 정읍시의회의 제동과 사업지구 인접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추진이 막혀 있다. 군산지역의 새만금 송전선로 사업 또한 철탑 경유 예정지역 주민들의 노선변경 주장으로 상황이 심하게 꼬였다. 이외에도 지속되는 갈등으로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그러나 갈등을 조정하는 기구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전북에는 갈등조정협의회가 있지만 민간기구로서 강제력이 없고, 위원들의 전문성 부족과 갈등 조정 노하우가 떨어져 개점휴업 상태라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그나마 적극적으로 홍보를 않은 탓에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기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갈등이 심화되거나 곧장 법원으로 달려가는 사례도 많다. 문제는 갈등이슈가 숱하게 잠복해 있다는 사실이다. 덮는다고 덮일 게 따로 있다. 언젠가 더 크게 불거질 게 뻔하다. 엊그제 경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미리미리 성의를 갖고 대화를 나누고 신경을 썼더라면 이렇게까지 갈등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 아니냐는 얘기를 문제가 빚어질 때마다 듣게 된다"고 질타하기에 이르렀다. 갈등 소지가 있는 사안은 미리미리 챙겨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더 이상 정책 추진에서 갈등이 있어선 안 된다. 정책은 원래 역동적으로 이뤄지고 목적 지향적이기 때문에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지역발전의 동력이 떨어지고 행정력 소비가 너무 크다. 갈등을 예방하거나 풀어가려면 정책 PR(Public Relations)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당국과 주민간의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어느 일방이 아닌 균형적 PR활동이 필요하다. 현실협상의 대가였던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좋은 협상법으로 "상대방이 내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자기에게도 이익이 되는 방법을 찾고, 상대방이 체면을 세우면서 후퇴할 수 있도록 하라"고 설파했다(제임스 C. 흄즈의 '닉슨의 치국책 10계명'). 그래도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온통 찢어져 싸우는 갈등구조가 재연되는 게 걱정스럽다. 그간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설득과 홍보, 소통노력이 여전히 부족한 것이 아쉽다. 지도자가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고 확신하는 경우에도 주민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면 그 정책과 사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어렵다. 주민들도 습관적 투쟁이라면 훌훌 털어버리고 동반자 정신이 살아나야 갈등의 파도를 넘을 수 있다. 갑을관계가 아닌, 상충하는 목적과 이해를 서로 이득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적극적 활동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전주·완주 통합을 두고 논란이 고조되고 있다. 완주군의회가 반대의 중심에 있고, 전주시는 이에 비판 일색이다. 찬반 대립이 과열되면서 그 불안정성을 걱정하는 시각이 많다. 이쪽저쪽의 주장만 춤을 추는 갈등싸움으로 변질되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논란이 커지자 김제·완주지역 출신인 국회 최규성 의원(민주당)이 주목받고 있다. 갈등을 최소화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그가 포복자세로 바꿔 '침묵모드'로 들어가 문제가 되고 있다.통합은 두 지역만의 일이 아니다. 전북에 깔린 그늘을 걷어내고 새로운 성장잠재력을 북돋을 수 있는 청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새만금개발사업과 함께 전북발전을 이끌어갈 새로운 동력으로 분석된다. 장기적으로 전북은 새만금권과 전주권으로 동시 성장할 진화단계의 필요도 있다. 한국자치행정학회 전준구 회장은 12일 '완주·전주 통합의 과제와 상생사업 이행방안' 토론회에서 "단순히 지리적, 물리적인 통합을 넘어 상호간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할 것"이라며 실천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현실은 불신과 반목의 갈등구도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완주지역에 통합 반대를 주장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완주군의회는 농업발전기금 조례안 보류에 이어 추가경정예산안 심의에서 상생발전을 위한 농업발전기금 450억원 전액을 삭감해 통합으로 가는 길에 찬물을 끼얹었다. 전주시가 약속하고 추진하고 있는 21개 상생사업들이 무색할 지경이다. 기자 생활 28년 가운데 3년 넘게 완주에서 주재했고, 5년가량 전주시를 출입했던 나로서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통합을 이루는 핵심 요인은 소통이다. 4년 전 통합 무산도 소통부족이 원인이었다. 진정 소통을 원한다면 그 정치경제적 기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소통의 귀결로 여겨지는 타협과 화합은 우선적으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조정될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걸 외면하고 명분만으로 일을 풀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통합추진은 농업·농촌 투자재원 확보와 탄소벨트 구축 등 비교적 경제적 사업에 치중돼 있다.그러면 정치적 추진기반은 어떨까. 도지사와 시장 군수가 통합에 합의한 상태에서 최 의원이 변수다. 대부분의 시각은 그가 기초의원의 공천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통합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군의원들이 반대특위를 구성하고 관련 기금을 잘랐는가하면, 민주당 당원들이 플래카드까지 거리에 매달았는데도 "통합문제는 각자 알아서 할 일"이라며 개입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일련의 민주당 반대활동을 자신과 직접 상관없는 개인판단으로 해명하고 있는 것이다.최 의원은 "통합은 전적으로 완주군민 의사에 따르겠다"며 그 이상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의회의 의견청취나 주민투표의 결과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구가 조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의혹을 외면하는 모습이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설득력이 떨어지고 신뢰감을 위협받는 대목이다. 자신의 선거구 획정과 맞물린 위기국면에서 손 놓고 가만히 있다고 말한다면 도대체 누가 납득한단 말인가. 이미 도덕성 문제라는 시뻘건 격류가 흐르고 있다. 통합을 지지하는 완주 민간단체는 '정치적 꼼수'로 의심하고 있다.최 의원은 지금이라도 분명히 선택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국회 국토해양위 법안심사소위장과 열린우리당 전북도당위원장, 민주평화국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지낸 3선의 중견 정치인으로서 결단을 바란다. 본인의 인식이 무엇인지 표명함으로써 그간 제기됐던 의혹을 씻어내는 계기가 필요하다. 낡아빠진 행정구역의 틀을 뜯어고치는 작업이 정치인들 밥그릇 다툼으로 휘둘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국민이 정치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명제만 보더라도 더 이상의 '침묵'은 접어야 한다.
까만 밤을 헤쳐 나온 냇물소리가 우렁차다. 봇물은 계단을 타고 짐승 이빨처럼 하얗게 콸콸 흘러내린다. 새벽 운동 길에 만나는 요즘 천변 광경이다. 그 강물은 얼마나 꺾이고 휘어지고, 때론 얼거나 밭으면서 여기까지 이어왔을까. 전북지역도 역사적 흐름을 생각하면 이런 물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나누고 경계 짓는 정치구호에 떠밀려 이젠 국정의 주변으로 흘러온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는 날. 우리는 헌정사의 대전환기를 맞아 노력에 따라 벌판을 휘달릴 수 있게 됐다.지역침체를 걱정하면 진부하다는 듯 아예 고개를 돌리는 풍조가 널리 퍼지고 있다. 저성장-인구감소-미래 불투명이란 연쇄반응의 착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정도다. 역대 정부의 차별정책으로 부식된 상황이 50년을 넘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랫동안 특정 정당 유지의 도구로 이용되고도 찌그러지고 지친 면이 그 원인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이번 대선에서도 표를 몰아주고 뒤통수를 긁는 모습이 재연됐다. 그런데도 선거에 패한 민주통합당은 벌써 당권 다툼에 빠져 추하기 짝이 없다.전북의 역경을 놓고 도민들의 시각은 정부 원망이 우세했다. 불균형 개발과 불공정 정책이 도약의 발목을 잡았다는 판단이다. 통계와 현상을 봐도 그렇다. 그래서 대통령의 약속은 중요하고, 지켜져야 한다. 더군다나 선거공약은 투표 향방을 가름하는 주요 기준이라서 책임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그런 공약을 쉽게 폐기하거나 뒤집어선 안 된다. 공약 불이행은 대통령과 정부의 신뢰성을 위협하는 족쇄가 될 우려가 크다. 대통령이 가진 말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기 때문이다.그러나 새 정부가 엊그제 제시한 국정과제는 전북에 희비의 쌍곡선을 그렸다. 탄소와 식품, 종자 사업 등은 탄력이 예상되지만 핵심 공약(약속)이었던 새만금 국책사업을 지역사업으로 격하시켜 추진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돌았다. 그러니 감동이 덜했다. '호남인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는 대탕평 인사도 미흡했다. 언론의 하마평에 오르내렸던 유력 전북 인사들의 이름은 온데간데없다. 정치를 불신하는 원인의 하나가 정권과 정치인들의 약속 불이행이었다는 점에서 지역에 던져지는 그림자가 걱정이다. 성공적인 정부로 남으려면 후속인사와 사업구체화 과정에서 호남의 소외감을 풀어줘야 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선거가 끝나면 으레 선거 때 했던 약속은 잊고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말이 나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길"이라고 밝혔다. 그에 따른 실천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아무리 통합을 부르짖고 제도를 바꿔도 국정과제가 특정 사안에 갇혀버리면 정권은 전리품으로 전락할 것이다. 지역 스스로도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소홀히 했나를 꼼꼼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특히 자신의 잘못은 제쳐둔 채 다른 탓을 마음에 두고서는 경쟁력 제고에 한계가 있다. 현안사업이 팍팍해지거나 좌절되면 왜 미리 대비를 하지 못했느냐고 힐난하고, 책임 회피용 대책을 급조해 놓기 일쑤였다. 불충분한 진단으로 화를 자초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번 조각(組閣)에서 보면 '전북 무장관' 여부를 놓고 논란이 무성했다. 하지만 지역 출신을 일탈시키면서 대정부 창구가 없다는 우려는 적절치 않다. 우왕좌왕하면 당하기 마련이다. 이제부터라도 소소한 문제에 매이지 말고 성큼성큼 큰 발걸음을 떼어야한다. 그러면 지역도 건강해질 것이다. '강물은 강을 떠나야 바다에 이른다'는 경구가 있다. 답답한 현실을 극복하려면 '부정적이고 폐쇄적'인 상황인식에 머물러서는 안 될 일이다. 집단적 노력으로 탈피해야 한다. 역사적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진취적 기상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대지를 헤쳐 나가는 물길처럼 도민들의 강한 목적의식과 도전의식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서 '바다'에 이를 수는 없다.
한 해가 머물다 가는 끝자리에 와 있다. 아코디언처럼 겹쳐진 지난 시간 사이사이에서 다사다난했던 사건들이 새롭게 펼쳐진다. 그 기억들은 나름대로 내면의 감동과 외적인 진동의 프리즘을 통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겠다.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2030세대와 5060세대가 서로 다른 표심을 보인 세대투표 경향이 두드러진 특징으로 떠올랐다. 그것도 50대의 90%에 육박한 놀라운 투표율에 야권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놀라거나 의아해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과거에도 50대는 2030세대보다 투표율이 높았지만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지 않고 침묵하다 조용히 투표장으로 향하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관련 정보와 의견을 나누는 등 한층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했다는 분석이 많다. 이번 선거에서 판을 가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세대별 득표율이 확연하게 갈라지면서 세대 갈등으로 비쳐지는 모습이다. 국민갈등을 풀어주어야 할 몇몇 언론은 오히려 그런 양상을 부추기기까지 한다. 필자도 50대지만 50대와 20대의 이해관계는 거꾸로 가는 게 아니다. 20대는 상당수가 50대의 자녀들로 대학 등록금, 군복무, 졸업 후 취직 걱정을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생각의 차이가 커지고, 입맛이 변하고, 선호가 다소 달라질 수는 있다. 그렇다고 복잡해진 현실을 어느 단일 잣대로 양분하기는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그동안 정권마다 지역이란 유령이 얼마나 공정을 유린했던가. 지역도 극복이 안 된 상태에서 다시 세대의 대결로 갈등과 분열의 역사로 되돌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50대, 그들은 누구인가. 사회 구석구석이 독재의 그늘에서 억압받고 있을 때, 날마다 자신의 비겁함을 내리찍으며 울분을 삭여야 했던 사람들이다. 나라의 가난을 경험했던 거의 끝 세대로서 경제발전에 직접 참여한 세대이기도하다. 먹여주고 재워만 주면 기술을 배워야 했다. 가난이 무엇이라는 걸 알았고, 민주주의가 억압받을 때 고통도 느낀 세대다.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천명(天命)을 알고 있다. 지금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주름진 얼굴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그들이다. 이번에 보인 그들의 선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민주와 경제를 아는 세대로서 지역에 따라 투표성향이 달랐지만 전반적으로 이념이나 개인의 이익을 넘어 나라의 소중함과 미래를 붙잡았다고 한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겸허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생 50년 역정을 견뎌온 사람의 한 표를 자식 같은 젊은 세대와 갈등·대립의 빌미로 제공해서야 되겠는가. 안타깝게도 일부 젊은이들이 이런 현상에 대해 비판하거나 폄훼하는 반발심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쏟아냈다. 성숙한 사고와 대응이 아쉽다.인위적이고 기계적인 편 가르기는 결과적으로 국민적 불행이 될 수밖에 없다. 퇴행적 선거문화는 통합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 요인이다. 사회가 '세대의 벽'에 갇히지 않으려면 통합을 외치고 제도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언론 역시 전통적인 갈등보도 방식에 편승해 갈등의 중재자로서, 이슈의 공론장으로서 역할을 방기한 사례가 많다는 질책에 주목해야 한다. 나아가 언론의 정파성 때문에 동일한 사건을 상반되게 보도하거나 특정 세대를 갈등의 상대로 내세우는 행태는 경계해야 한다.민주주의를 하되 균형과 통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런 의식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과정에서 국민 대통합을 주창했다. "극한 분열과 갈등을 빚어 왔던 역사의 고리를 화해와 대탕평책으로 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옳고도 당연한 얘기다. 50대는 새 정권이 어떻게 이런 갈등과 분열의 구도를 치유해 갈 것인지 앞으로도 조용히 지켜볼 게 분명하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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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화재 안전, 작은 관심으로 지킬 수 있다
사실의 적시와 의견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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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침을 여는 시] 별-이병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