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전주 도심 한복판. 제5공화국의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시위대가 수없이 작렬하는 최루탄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시위현장에서 수습기자로 취재하던 필자는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저항전선에서 독재 정치의 몰락을 목격했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이 어그러지면 시민들은 혼돈에 빠지고, 사회는 갈 길을 헤맨다. 기자생활 30년이 된 지금, 정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내 자리'에만 정신 팔린 전북 정치권
기자가 보는 세상은 긴장과 대립의 연속이고 불화를 싹틔우는 씨앗들에 시선을 꽂기 마련이다. 그런 눈으로 우리사회를 보면 어느 덧 정치가 아닌 게 없게 됐다. 영향력도 더 강대해지고, 그만큼 정치인의 책임도 막중해진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정작 시민과 함께하면서 시대의 통증을 앓는 정치인은 생각보다 드물다. 그래서인가,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의 제자리 찾기가 관심이다.
며칠 후면 민선 6기가 출범한지 1년이다. 작년 이맘때 6·4 지방선거에서 전북은 14개 시·군 단체장 가운데 무려 7곳에서 무소속이 휩쓸어 파란을 겪었다. 그때의 여진이 계속되는 요즘 지역의 맹주인 새정치연합에 갈등과 분열정치의 극단이 나타나고, 정동영 전 장관과 천정배 의원의 각 신당 창당 움직임까지 빨라지면서 종전과 궤적을 달리하는 정치 삼각파도를 맞게 됐다.
아무려면, 신당 진행은 무소속 입지자들을 집중적으로 규합하겠다는 조짐이 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새정치연합에 대한 누적 피로도를 고려하고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이반 현상에 무게를 두는 것 같다. 총선에 나설 무소속 예상자들도 조사대상 53명 중 14명(26.4%) 가량 전망된다(전북일보 6월1일). 이런 무소속 열풍은 차기 선거판의 위협적인 시그널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오늘날과 같은 정당 정치의 ‘위기’라고 할 만한 상황이 없었다. 왜냐면 ‘우리 당이 싫더라도 최악을 막기 위해서는 차악(次惡)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프레임이 선거 때마다 판을 쳤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그런 지역갈등이 의미가 없어지고, 공천과정에서 민주성 등이 결여돼 정당에 대해 실망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여기에는 디지털 네트워킹의 힘이 위력으로 가세하고 있다.
기존 정당 자체도 무소속 바람을 부채질하는 걸까. 새정치연합은 구심력을 잃고 계파, 지역, 세대에 따라 원심분리 상태에 빠졌다. 재·보선 참패에 대한 책임 논란과 혁신위원회의 진통으로 통합과는 반대방향으로 표류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야당을 상대로 합리적 정책대결을 할 생각은 접고, 정부의 인사탕평과 대통합에 대한 불만 섞인 여론이 들끓어도 제대로 된 반박이 없다.
그렇다. 전북정치권은 지역의 중대 사안을 처리할 능력을 상실했고, 시민들의 엇갈린 주장을 걸러낼 여과기능을 잃었다. 도민들이 절절하게 여기는 신공항 건설과 익산국토관리청 분리는 달나라 얘기 같고, 전주종합경기장 개발과 새만금송전탑 공사 등 쟁점사안도 내재된 다중적 코드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특혜·특권·위선이라는 고질 없애야
여야정당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5년,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전북의 목표와 전략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안타깝게도 관념에 붙잡힌 노쇠한 눈으로 모든 문제를 처리하려 한다. 오로지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서의 ‘내 자리’에만 정신이 팔렸다. 시민 수준을 너무 낮게 보고 있다. 정당끼리 경쟁도 없다. 하지만 수십 년간 전쟁을 하지 않은 군대는 군화 끈이 풀어져 있다.
시민은, 유권자들은 정치권 꽃놀이패의 이런 모습에서 새로운 정치 질서의 가능성을 찾고 있다. 이제는 바꿀 것은 바꾸고 지킬 것은 후회 없이 지켜내는 결단력을 보여줘야 한다. 정당은 특혜와 특권, 그리고 위선이라는 거대한 고질을 고쳐야 한다. 스스로 변하지 못한다면 외부로부터 충격이 닥쳐올 것이다. 무소속의 행진이 일부지역의 차질에도 갈수록 주목을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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