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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정도 1000년, 창조와 대안의 땅 '전라북도'] ③ '대한' 국호 발상지 전북 - 고조선 명맥 이은 '삼한' 총괄해 '대한' 으로 품다

고종, 조선 폐기 대한제국 선포 / 1919년 임정서'대한민국'결정 / 고조선 준왕, 위만정변때 남하 / 마한 다스려…변한 ·진한 태동 / 익산·전주서 고조선 유물 출토 / '삼한정통론' 중심지 전북 증명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다

▲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 축하식.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이름은 언제 그리고 왜 ‘대한’이란 명칭으로 생겨났을까? 사실 우리가 월드컵 경기 등 국가 행사 때 응원 구호로 외치는 “대~한민국!” 국호는 근현대사에서 우리 민족이 당한 아픔과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의 역사가 담긴 나라이름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1910년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긴 지 9년 후인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을 통해 나타났다. 즉, 민족대표와 전 국민적 참여를 통해 독립을 선언한 이후 독립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정부’를 세우기 위해 국내 및 노령, 중국 등 각 지역의 독립운동단체 대표들이 상해에 모여 정부수립을 논의했다.

 

그리고 1919년 4월 10일 임시정부의 첫 의정원 회의에서 국호를 결정했다. 당시 몇 가지 논의안이 있자 신석우 선생이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보자”라고 제안하여 1897년 세워진 대한제국에서 황제를 의미하는 ‘제국(帝國)’을 민주공화국을 뜻하는 ‘민국(民國)’으로 바꾸어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국호를 정했다. 다만 국권을 상징하는 ‘대한’명칭에 영토와 국민을 일제에게서 아직 회복 못했으니 ‘임시’를 붙여 정부이름을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결정한 것이다.

 

임시정부가 사용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이름은 해방 후 1948년 7월 소집된 제헌국회에서 새 나라의 국호로서 ‘대한민국’을 정하면서 그대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승만은 당시 연호를 ‘대한민국 30년’으로 표현하였고, 1948년에 처음 발행된 대한민국 관보 1호에는 발행일이 ‘대한민국 30년 9월 1일’로 적혀있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하였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1987년 개정된 현재의 헌법 전문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계승의식을 명확히 하고 있다.

 

△대한제국, 왜 ‘조선’이 아닌 ‘대한’을 국호로 정했나?

 

대한(大韓)이란 나라이름의 유래는 1897년 10월 고종이 기존의 나라이름 ‘조선(朝鮮)’을 폐기하고 새롭게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선포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조선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 등 국내외 혼란으로 ‘조선왕조’의 혼란과 국가적 위기가 매우 커진 상황이었다. 고종은 나라의 독립과 자존을 확립하기 위해 중국과의 예속관계를 단절함과 동시에 황제국가 체제로 일신하는 국가체제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 1897년 10월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하늘에 제사지낸 환구단(현 서울시청앞 조선호텔자리)과 신위를 모신 황궁우.

이 상황에서 기존의 국호인 ‘조선’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독립성을 부각하기 어렵다고 보아 역사적 명분과 근거를 가진 새로운 국호제정이 필요하였다. 이에 따라 고조선의 역사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조선의 의미를 유지하면서도 보다 독립적인 명칭으로 찾은 것이 마한, 진한, 변한 등 삼한(三韓)을 총괄한 대한(大韓)이란 표현이었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의 반조문의 내용을 보면 대한의 의미는 단군의 고조선에서부터 변한, 진한, 마한 즉 삼한을 통일한 고려와 이를 계승한 조선 등을 망라하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삼한으로 확산된 ‘한(韓)’이란 명칭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고조선 준왕의 남래와 삼한정통론

 

《삼국지》 동이전 등 중국사서에는 기원전 194년경 고조선의 준왕이 신하인 위만의 정변으로 나라를 빼앗긴 후 남쪽 지역으로 이동하여 한(韓) 왕이 되어 마한을 다스렸고 이후 진한, 변한의 명칭이 생겼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다.

   
▲ 왼쪽=1899년 세운 전주 건지산 조경단의 ‘대한조경단’비석 탁본, 고종은 조선왕조의 발상지 전주를 대한제국의 발상지로서 재정립하고 조경단을 ‘대한조경단’으로 새롭게 정비하였다. / 오른쪽=《동사강목》에 제시된 동국역대전수지도에 나타난 단군-기자-마한 계승도

여기서 ‘한(韓)’이란 명칭은 동북아에서 왕을 의미하는 Khan(한 <汗> ) 또는 크다는 의미의 고유어 ‘한’을 한자로 쓴 것으로 파악된다. 바로 이 명칭이 삼한의 ‘한’명칭이 된 것이다. 한편 고조선의 준왕이 남쪽으로 이동한 지역에 대해 《제왕운기》를 비롯하여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등 대부분 전통 지리서는 현재 전라북도 익산지역이 고조선 준왕이 남쪽으로 내려 온 지역이라고 전한다.

 

이 같은 사실은 현재 전라북도권 지역에서 한이란 명칭이 시작되어 마한, 진한, 변한 등 삼한의 명칭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사실에 대해 조선후기 학자들은 우리 역사의 정통이 단군조선이래 고조선 준왕을 거쳐 마한지역으로 계승되었다는 ‘마한(삼한)정통론’을 주장하여 역사 정통성이 삼한지역에 있음이 강조되었다. 위만이 정권을 장악했지만 이는 불법적인 것으로 정통성은 남쪽으로 이동한 준왕에게 있고 이를 계승한 삼한지역에 역사의 정통이 계승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금마 등 익산지역과 함께 만경강을 둘러싸고 있는 전주지역에서 청동기시대 중요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면서 고조선과의 연계성이 고고학적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특히, 익산지역의 초기 청동기, 철기 계통 유적과 유물 및 최근 전주 혁신도시 건설과정에서 확인된 청동기, 철기유적은 이들 공간이 만경강을 중심으로 일찍부터 중요 거점지역으로 성장하였으며, 고조선계통 유물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고조선계 유민이 이동한 지역이었음을 보여준다.

고조선 준왕의 이동과 ‘한’이라는 명칭의 사용, 그리고 조선시대 고조선의 정통성이 삼한지역으로 계승되었다는 삼한정통론 등으로 이어진 계승의식이 있었기에 ‘대한’이라는 명칭을 국호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중심지가 전북이었던 것이다.

 

이를 상징하듯이 고종은 1899년 전주 건지산에 전주이씨 시조의 무덤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대한조경단을 설치했다.

 

이같이 전라북도 지역은 만경강과 동진강을 둘러싼 호남평야를 중심으로 고조선의 정통을 이은 마한의 터전으로서 삼한에서 삼국으로 연결되는 우리 역사 정통의 중심이자 우리의 자랑스러운 나라이름 ‘대한’국호의 발상지로서 자리하고 있다.

▲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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