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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형미 시인 - 윤석정 시집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피고 견디다 지는 ‘야생음표’, 윤석정 시인을 읽다

“지난 십 년 나는 나를 걸쳐 입고 바깥을 맴돌았다. …이대로 살아야 할 것 같았고 막연히 견뎌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십 년 동안의 시를 한데 엮으며 알았다. 시가, 그리고 무궁한 당신들이 나의 바깥이었다는 것.” -‘시인의 말’ 中에서

대학 동기 윤석정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걷는사람, 2021)을 냈다. 첫 시집 『오페라 미용실』(민음사, 2009) 이후 근 십 년만이다. 그리고, 응달진 곳마다 아직 흰 눈이 남아 있는 입춘 날이다.

그 십 년 동안 윤석정 시인은 ‘간간이 시를 썼고, 누구에게도 안부를 묻지 않았다.’ 그의 시 ?스물?에서처럼 단순히 ‘사랑이, 사랑이 있는 시가 뭔지 모르겠고 막막했고 죄책감이 생겼’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왜냐하면 그는 어느덧‘휘어진 마음을 뚫고 달려오는 전철이 보이기 시작’한 마흔이, 아아, 마흔이 훌쩍 넘어 있었으므로.

내가 아는 윤석정 시인은 늘 호방했다. 자유로웠고, 큰 이목구비만큼이나 거침이 없었다. 그가 나고 자란 장수 산골처럼 크고 투박한 주먹 속에는 따뜻한 마음도 쥐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시골 촌놈 같은 그 따뜻함을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다. 해서 시인이 자신의 바깥을 맴돌고 있을 거라고는, 그 막연하고 막막한 생 속에 자신을 밀어두고 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 했으리라.

하지만 시인은 비워도 가벼워지지 않고, 가볍게 사는 게 뭔지 모르는 채 살았다. 아무리 길을 더듬거려도 어디로 갔는지, 누가 가져갔는지 알 길이 없었던 사라진 그의 도장처럼 ‘나’를 놓치고 살았다. 그의 시『커서의 하루』,『잃어버린 도장』을 통한 그 공허하고 헛헛한 울림의 고백을 듣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그가 아주 잘 살았을 거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의 시 곳곳에 등장하는 ‘얼굴’들이 떠오른다. ‘내가 알 수 없는 얼굴들’, ‘잠든 아버지 파리한 얼굴’, ‘어둠에 가려진 얼굴’등. 하나같이 ‘어둠’과 직결되어 있는 그 얼굴들이 마음을 아프게 짓누른다. 시인이 ‘내가 잃어버린 게 도장만은 아니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 알게 된 것들과 같아서. 그래, ‘한때 나의 증거였던 내가 사라’졌다고 한 시인의 말 같아서 말이다.

그렇다고 윤석정 시인은 ‘막막히 견뎌야 할 것’들을 견디면서만 산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지금의 그를 있게 한 근원인 일곱 살 어린 날로 다녀오기도 하고, 자신을 정돈하기 위해 절필도 해본다. ‘뒤돌아보게 하는, 뒤돌아봐도 볼 수 없는’등이 그리워 지나는 길목마다 낄낄대다가 꺽꺽대기도 했다.

결국 우리의 리듬이‘풍진 세상의 아픈 도돌이표’라는 것을 인식할 때까지, 시인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바깥 아닌 바깥을 실컷, 길고 끈질기게 헤매고 다녔다.

‘날이 풀리자 꽃이 핀다 날이 꽃을 시샘하자 꽃이 견디다 진다 …우리의 리듬은 야생음표 우리 속에서 날마다 울울창창하다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야생음표는 피고 견디다 진다’ -‘우리의 음악’ 中에서

우리 모두가 ‘피고 견디다’ 지는 ‘야생음표’라는 것을 알 때까지. 그리하여 ‘십 년, 그럭저럭 자알 살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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