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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시인 - 도혜숙 ‘고요를 끓이다’

자신에게 망명하는 순간이 있다. 숨을 고를 사이도 없이 급류에 휩쓸리다가 자신을 읽은 눈동자 하나가 날개를 휘저어 구름을 찢고 등고선 밖으로 날아간다. 길이 눕는 곳을 찾아 헤매던 중 늑골에 갇혀있던 비밀이 열리면서 그이는 기꺼이 자상(自傷)을 입고 객창(客窓)에 젖는다. 나는 그이를 시인이라 부르련다.

도혜숙 시인의 발화(發話)는 고요하다. 시인의 절대음감인 ‘침묵’은 격정적이거나 격앙되지 않지만 최대의 울림통을 만들어 낸다. 그 속에 휘발되지 않은 것들의 서사가 있고 서정의 지류에서 건져 올린 진실의 실루엣 같은 것들이 보인다. 어떤 진실은 연약해서 또는 너무나 강력해서 도사리기만 할 뿐 말해지지 않는다. 시인은 ‘고요해져야 떠오르는 진실’의 방법을 터득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너’와 ‘당신’의 진실이 함부로 발설되지 않고 온전하게 기거할 곳을 마련한다. ‘거기’는 시인 자신의 공간이요 시간의 축적이기도 하다. 도혜숙 시인은 발설한 순간 훼손된 진실이라면, ‘내놓을 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오랜 시간 고민했을 것이다. 너무 쉽게 발설하는 진실들에는 ‘고통의 패러독스’가 없기 때문이다.

시인의 고요 속에는 이율배반적이게도 탈주하고자 하는 에너지가 소용돌이친다. 낭창한 바이올린 소리, 피아노 연주음악, 러시아 민요가수의 노래와 먹먹한 빗소리. 그 시그널을 따라가다 보면 도처에 존재와 관계에 대한 페이소스가 짙다. 따라서 ‘소리의 이미지’를 침묵의 또 다른 버전으로 표현해내는데 시집 <고요를 끓이다> 는 탁월하다.

그녀를 상념에 젖게 하는 것은 늙어가는 육체가 아니라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생긴 기억들의 역류다. 정신과 육체가 교섭하는 또는 그 불일치 속에서 균열을 드러내는 육체의 시간이 한결 가벼워진 몸이 되어 춘삼월 눈발처럼 내린다. 그리고 욕망의 끝에 다다른 성자처럼 폐기처분하지 못하고 오래 품어온 이야기를 정갈하고 기품 있게 풀어놓는 것이다.

누구의 삶이든 너무 많이 말해지는 것들은 경계해야 한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사건건의 발화’는 시의 길이 아니므로 시인은 침묵 사이사이 여백을 견지해야 했을 것이다. 이것이 “고요를 끓이는” 그녀의 방식이다. 너무 뻔하지도 야박하지도 않는 우아한 균형을 갖추고 있는 시인이 앞으로 길어 올릴 생성 값에 대해 모르지만 고요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어차피 아는 것을 쓰는 것은 시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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