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이 연둣빛 향기로 문을 열면 노랑턱멧새는 높은 울림으로 숲의 고요를 깨운다. 박새, 콩새, 딱새들도 봄의 노래를 부르느라 부산스럽다. 그 소리에 놀란 벚꽃은 하얀 나비 되어 날아간다. 학산, 고덕산, 경각산과 모악산, 모든 산들은 온통 산벚꽃들이 쏟아놓은 언어들로 가득하다. 그 말랑말랑한 봄 언어들을 엿듣는 이들에게 넌지시 건네고 싶은 책이 있다. 5부, 81개의 꼭지로 구성된 에세이집,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이다.
작가는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에 무지하고 자기와 서먹하기에, 글을 쓰면서 나를 알아가는 쾌감도 크다. 그렇게 마음을 다 쏟는 태도로 삶을 기록할 때라야 신체에 닿는 언어를 낳고 그런 언어만이 타자에게 전해진다”(39쪽)며 ‘최선의 나’를 찾기 위해 글을 쓰라 한다. 나와 친밀해지고 앎의 작용이 일어난 후라야 타인에게 다가갈 언어가 피어날 수 있으리라. 한편 “앎은 몸을 이기지 못한다”(29쪽)며 관습적이고 현재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길 권한다.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서 어리석은 확신을 가질 때 초래되는 위험성도 또 하나의 폭력임을 알게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켜켜이 쌓여진 잘못된 관습과 편견에 사로잡혀서, 우물 안의 세상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허덕이는 인생의 가벼움에 대한 일침이다.
은유 작가처럼 “사람들의 말들이 내게로 온다.”(5쪽)고 고백하려면 먼저 내 마음의 창문을 열어놓는 밑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리라. 마음의 조리개를 열어 투명해진 눈이 되어야 “당신의 삶에 밑줄”(85쪽)을 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를 들여다볼 수 있을 때, 그에게 내 귀를 오롯이 심어놓을 때라야 그의 말들이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다가온 사람들의 말을 통해 이웃을, 내가 속한 세상을 읽어낼 수 있으리라.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릴 때, 마음이 뜨거워 질 때, “국가 폭력, 가정폭력 및 성폭력, 일상의 폭력, 편견과 차별의 언어폭력”(50쪽)을 알아챌 수 있다고 한다. 불의에 침묵하지 말고, 관습으로 처리하지 말고, 방치하지 말라한다. 맞서 싸우라한다.
“삶을 담아낼 어휘는 항상 모자라고 삶은 언제나 말보다 크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작가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아집과 낡은 신념에 사로잡혀 있지 않나? 이웃의 별이 빛날 수 있도록 스스로 어둠으로 내려앉아 배경이 되어 줄 수 있는가? 내가 속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묻고 답을 찾아갈 수 있다.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가 소개한 많은 일화를 통해 먼저 이웃에 대한 몰이해와 선입견, 편견과 차별이 있었음을 반성하게 된다. 나아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당연한 것들을 빼앗기고 잘못한 것 없이 외면당하며 상처 받았을 아픈 영혼들, 아직도 울고 있을 그들의 삶에 나의 무관심과 무지도 한 몫 했음을 깨닫게 한다. 책임을 묻는다. 내가 먼저 옳은 방향으로 돌아서고 이웃에게 손 내밀어 함께 나아갈 수 있을 때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제보다 한 치라도 더 밝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얘기한다. 비록 어제는 연약한 어른이었으나 오늘은 진정한 어른이 되어 인생을 보는 눈이 한층 깊고 넓어지게 된다.
“벚꽃 꽃말은 중간고사”(293쪽)라는 중고등학생들 사이의 유행어가 아프게 다가오는 현실, 거기에서 길어 올린 겪은 일, 들은 말, 읽은 말들로 엮은 에세이 모음집,〈다가오는 말들〉. 작가는 봄 산에 충만한 새들의 소리와 난만한 봄빛 향기로 말을 건넨다.
“이 이야기들이 내게 그랬듯이 다른 이들에게도 일상의 쉼, 생각의 틈을 열어주기를, 공감의 힘을 길러주는 말들로 다가오기를 바라.”(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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