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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작가 - 최명희 소설 ‘혼불’

소리 내 읽으면 귀에 익은 억양이 감미로우나 새삼스럽다. 잊고 지내온 아득한 말들. 우리 유전자 어딘가에 숨어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쩍쩍, 입맛이 당긴다. 전라북도 곳곳에서 너나없이 쓰는 독특한 말이 숱하게 녹아 있는 최명희(1947∼1998)의 대하소설 「혼불」. 작가는 첫 문장을 쓸 때부터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운율을 타고 가슴에 척 안겨드는 문장이 되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우리말 고유의 리듬과 울림을 고려해 쓴 최명희의 문장. 독자들은 이것을 ‘혼불체’라고 부른다.

「혼불」은 어둡고 암울한 1930년대, 전주와 남원, 만주를 배경으로 한다. 국권을 잃었지만, 여전히 조선말의 정신구조와 문화를 지탱하던 이중적인 시대에 처참하게 부서지고, 상처받고, 뒤집히고, 고뇌하며, 한없이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삶을 그렸다. 작가가 선사한 문학의 혼은 그가 쓴 원고지 칸칸이 불꽃처럼 피어났다. ‘꽃심’으로 전라도 정신을 되살렸고, 작품에 담긴 우리의 생활사와 풍속사, 의례와 속신 등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콘텐츠로 성장하며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다. 전라도의 역사와 삶을, 겉과 속내를 빠짐없이 담은 「혼불」이 있어 이 땅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 깊은 맛을 내는 도시가 되고 있다.

작가 최명희는 「혼불」을 통해 순결한 모국어를 다시 살리고 싶었다.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삶이 스며들고 우러난 모국어. “풍요로우나 피폐해 있는 현대인들의 정서에 본질적인 고향의 불빛 한 점을 전할 수 있다면,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근원적인 삶의 생명소가 있다면, 그것을 찾아서 한 시대의 인간과 문화와 자연을 언어로 건져 나의 모국에 한 소쿠리 모국어로 가득 바치고 싶은” 간절한 소망.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이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자신을 사로잡는 명제는 전아하고, 흐드러지면서, 아름답고, 정확한 우리 모국어의 뼈와 살, 그리고 미묘한 우리말, 우리 혼의 무늬를 어떻게 하면 복원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가장 한국적인 말의 씨앗으로 「춘향전」·「심청전」과 같은 우리 고유의 이야기 형태를 살리면서 서구의 것이 아닌 이 땅의 서술방식을 소설로 형상화하는 일. 기승전결의 줄거리 위주가 아니라, 낱낱의 단위로도 충분히 독립된 작품을 이룰 수 있는 장과 문장과 낱말을 쓰고 싶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그저 그런 이야기, 무심코 지나치는 이야기, 한 맺힌 이야기, 깊고 낮은 한숨, 꽃잎 피고 지는 소리, 골목 어귀 낮은 꽃들의 일렁임…. 골짜기에 물이 모이듯이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작가의 가슴 저 밑바닥으로 들어와 헤아릴 수 없이 쌓였다. 그것들이 뭉치고 어우러진 것들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불덩이를 이뤄, 결국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새긴 작품이 「혼불」이다.

「혼불」의 흔전만전한 언어의 잔치를 누리면 오히려 독자 스스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게 된다. 쓸쓸하고 마음 상하는 일이 유달리 많은 지금, 최명희의 소설 「혼불」을 다시 펼쳐야 하는 이유다. 마음 닿고 싶은 이에게 먼저 전하고 싶은 문장과 따뜻한 위로가 「혼불」에 있다.

△최기우 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됐다. 희곡집 『상봉』과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인문서 『전주, 느리게 걷기』와 『꽃심 전주』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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