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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지호 소설가 - 오주석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입춘 며칠 전 이웃 할아버지께서 허드렛물 흘려보내는 도랑을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장마를 염두하고 도랑의 살얼음 낀 진흙을 힘겹게 퍼내고 계셨습니다. 여름이 아직 멀었는데 어찌 서두르시냐 여쭈니 지금이 도랑을 정비해야 할 그때라고 무던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은 정정하신 분이니 이치에 닿는 말이라 믿고 돕기는 했으나 그 말씀을 온전히 믿지는 못했습니다. 잡초가 자라지 않은 살짝 얼어있는 진흙을 퍼내는 일은 입춘을 앞두고 몸을 풀기에 맞춤한 일이었습니다. 일에 신명이 붙을 때쯤 마실 다녀오시던 이웃 할머니께서 이때가 그때라며 좋은 날을 골라 도랑을 정비한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때서야 할아버지에게 남은 믿음을 내어 주며 늙은 농부처럼 몇 계절 너머를 보는 이도 없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이도 드물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씨앗 안에 담겨 있는 우주, 오묘한 세상살이의 이치 등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경험과 연륜, 혜안이 있어야 하고, 보는 방법도 조금 배워야 하지요.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유추 할 수 있다는 것, 마음을 열고 애정을 가지면 시간과 공간 너머의 것을 볼 수 있다는 것, 감각의 전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런 것이 있다는 것,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고 배운 책이 「오주석의 한국의 美(미) 특강」 입니다. 잘 가르쳐 주셨으나 저는 좋은 제자가 아니어서 아직도 이 책을 옆에 끼고 읽고 또 읽습니다.

이 책은 한국화를 보는 방법을 설명하는 책입니다. 옛사람의 마음으로, 그림의 대각선 길이를 고려해서, 우상에서 좌하로 시선을 이동하며, 선과 여백을 따라 찬찬히, 논리와 이성, 지식과 경험을 동원해서 등 그림 감상의 여러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방법도 방법이지만 대상을 보고 대하는 작가의 그 곡진한 마음을 배운 것을 저는 더 고맙고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것도 스무 살을 갓 넘은 나이에 눈은 도구일 뿐이며 마음이 읽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함의를 헤아릴 수 있으며 객관적 사실을 전제한 실체적 감동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만져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배워 퍽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배운 그 방법과 마음은 글을 읽고 쓸 때, 사람과 세상, 예술 작품을 마주할 때 등 여러 곳에서 요긴한 도구가 되어 저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글을 읽을 때 마음이 아니라 눈으로만 읽을 때가 많습니다. 배운 것을 잊고 오만방자한 학생이 된 것이지요. 특히 시가 그렇습니다. 제가 오독 하고선 이미지를 통해 에둘러 말하는 시의 의미 전달 방식 때문이라고, 시인이 절제하고 덜어내는 과정에 너무 충실했다고 핑계를 댑니다. 문제는 조리개를 조절하지 못했던 제 마음의 눈과 함부로 셔터를 눌렀던 제 이성이었는데요. 시의 향기는 맡지 못하고 표현의 화려함만 찾았던 제 오감 때문이었는데요. 그래서 이 책은 당신도 당신이지만 저에게 추천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밀려가 그것들에 닿게 하는 방법을 다시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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