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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근혜 동화작가 - 어린이 시집 '감꽃을 먹었다'

사교육 시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세월이 꽤 길었음에도 여전히 어려운 것이 있다면 ‘시’ 지도가 아닐까 싶다. ‘시가 무엇이다.’라고 딱 꼬집어 정의 내리기 어렵기도 하지만 그보다 아이들로부터 시적 감성을 끌어내는 것이 내겐 가장 힘든 일이었다.

시 창작을 잘 지도하는 방법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다 발견한 책이 있다. 바로 <감꽃을 먹었다 학이사어린이> 라는 어린이시집이다. 이 어린이시집은 군산 푸른솔초등학교에 근무 중인 송숙 선생님의 지도아래 탄생한 아홉 살 아이들의 자작시를 담은 어린이시집이다. 쑥국 선생님으로 더 유명한 송 교사는 오래전 김용택 시인이 그러했듯 아이들의 삶에서 시어를 건져 밥상을 차린 뒤 시똥 잘 누는 걸 도왔다.

아이들 삶에 가장 밀접한 대상은 부모와 형제, 자매다. 그래서 아이들 시에는 엄마, 아빠 그리고 형제자매 이야기가 가장 많다. ‘우리 집에는 괴물이 있다. 약점은 없다. 본명은 엄마, 엄마다.’. 엄마는 집에서 가장 약점 없는 괴물이면서 ‘여자 배우가 예쁘니? 엄마가 예쁘니?’ 묻는 천생 여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춘기로 까칠한 언니를 둔 아이는 ‘우리 언니는 왜 이렇게 못 댔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하고 동생과 놀아주다 지친 아이는 ‘동생은 힘들지 않네.  내가 만히 늘건구나.’하며 신세 한탄을 하기도 한다. 다양한 가족 이야기가 담긴 시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여린 감정들이 꽃다발처럼 엮여서 진한 감동으로 때론 저릿한 마음으로 다가온다.

가족 다음으로 아이들에게 시적 영감을 주는 대상이 있다면 학교가 아닐까 싶다. 선생님은 부모님을 대신해 교실이란 농토에 아이라는 씨앗을 정성과 사랑으로 키우는 분이다. 아이들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분이란 뜻이다. 성장은 외적인 성장만을 뜻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나를 놀려서 가만이 있어다. 선생님이 받아쓰기로 놀리는 건 나는 겄이라고 해서 <중략> 선생님이 우리안태 엄마 갔았다.’처럼 선생님이 엄마 같기도 하고 때론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아주는 길잡이기도 하다. 그런 선생님이 계시는 학교는 매일 가고 싶은 곳이 된다. ‘내일은 학교에 간다. 벌써 주말이 지나간다.’처럼 말이다.

주말이 끝나가는 걸 아쉬워하기보다 만날 친구들 생각에 내일이 기다려지는 학교는 얼마나 꿈에도 그리던 곳인가. 코로나로 인해 간헐적으로 가게 된 학교는 갈 때마다 새롭다. ‘학교를 처음 오는 듯이 설ㅤ레었다. 교실에 들어섰는데 모든 것이 새로워 보였다.’. 질병이 인간에게 익숙했던 삶을 낯설게 만들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오늘은 선생님과 동대문 놀이를 했다, 민호가 걸렸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학교를 무대로 웃고 떠드는 모습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학교가 공부와 규율만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는 말해주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부대끼고 어울리는 공간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쑥국 선생님 반 아홉 살 친구들은 선생님이 들려주는 시를 읽고 시똥을 누었다. 코로나로 만나는 날도 부대끼는 시간도 평소보다 현저히 적었지만 시똥을 누면서 격려를 건네고 위로를 받았다. 소리 나는 대로 쓰다 보니 주석이 있어야 해석 가능한 시도 있지만, 쑥국 선생님은 틀리면 틀린 대로 마음껏 시똥을 누게 했다. 그렇게 질펀하게 싼 시똥이 아이들을 건강하게 하는 건 당연지사. 쑥국 선생님은 오히려 자신이 시를 통해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밝혔으니 시는 가르치는 교사도 지도받는 학생 모두에게도 감사를 선물하는 특별함을 지닌 문학임이 분명하다.

생일이 너무 멀어 속상한 마음, 나보다 동생을 더 예뻐하는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 죽으면 어떻게 될지를 고민하는 마음까지 아이들의 세계는 그야말로 고민과 아픔, 두려움과 평범함으로 좌충우돌이다. 모두의 얼굴이 다르듯 생각과 마음이 다른 아이들이 쑥국 선생님과 함께 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어쩌면 나보다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에 한발 다가가는 기회를 만드는 것인지 모른다.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고 살아낸다. 그 모든 것이 시똥에 담겨 삶의 거름이 된다. 감꽃을 먹으려다 아름다워서 차마 먹지 않는 아이, 자신이 손으로 구긴 나팔꽃잎이 펴지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며 지켜보다 활짝 펼쳐지는 모습에 미소를 짓는 아이의 시를 읽으면서 정화된 마음에 해맑은 웃음이 가득 차게 된다. 오늘, 아홉 살 아이들의 향긋한 시똥 냄새에 흠뻑 취해보는 건 어떨까.

 

김근혜 동화작가는...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로 등단.

동화 <제롬랜드의 비밀> <나는 나야!> 청소년 소설 <유령이 된 소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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