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이차선 도로를 지나는 차들이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앞 차가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무슨 날인가 싶어 휴대전화 검색 창을 열었다. 알아낸 것이라고는 평일 오전 8시 20분, 출근 시간이었다. 한동안 샛길로 다녔던 탓에 그곳이 전주로 드나드는 차량으로 인해 출퇴근 시간이면 정체가 심한 곳이라는 걸 깜박했다. 엉뚱하게도, 꽉 막힌 도로 위에 갇혀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매일 무엇으로부터 나를 소외시킨 것일까, 하고.
『직업의 광채』에 실린 단편 <앨리스 먼로 어떤 연인들> 에 나오는 록산느처럼 나는 간호조무사다. 그녀가 121p.“~~일은 조무사가 다하고 간호사들은 이래라저래라만 하죠. 어쨌든 나는 사람 돌보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듯 나 또한 치기 어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줌파 라히리 병을 옮기는 남자> 의 카파시 씨가 아내에게는 죽은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병원에서 통역 일을 하면서 일주일에 두 번 하는 관광 가이드 일로 일상을 회복하듯 글을 쓴다. 독백체로 진행되는 <제임스 앨런 맥퍼슨 닥터를 위한 솔로 송> 에서 화자가 100p.“누구나 서비스는 할 수 있지만 서비스 그 자체가 되기는 어려워. 닥터가 찻주전자를 들어서 잘게 부순 얼음이 든 유리컵에 뜨거운 차를 붓는 모습은, 마치 차가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어. 닥터와 쟁반과 찻주전자와 유리컵과 모든 것이 하나의 몸처럼 움직였어.”라며 철도 웨이터 닥터를 전설적인 인물로 묘사한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작가와 텍스트가 분리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글을 쓰겠다는 야망을 품는다. 야망은 <조이스 캐럴 오츠 하이 론섬> 161p. “일은 그렇게 벌어진다. 뭐가 뭔지 알아챌 겨를도 없이 빠르게 벌어진다.”는 문장을 만나기 전까지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엄마의 의붓 아빠인 할아버지를 ‘팝’이라 부르며 팝이 죽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기 전까지 그의 이름이 핸드릭이라는 것을 몰랐던 <하이 론섬> 의 화자가 168p. “그날 드레이크가 내 자리로 와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내 이름만 불렀어도 나는 그를 용서했을 거다. 정말 용서했을 거다.”라며 자신의 죄책감을 사촌에게 투사하는 대목을 보고는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실현되지 못한 나의 야망을 현실 탓으로 돌리지는 말자고 다짐도 한다. 하이> 조이스> 제임스> 줌파> 앨리스>
단편소설집 『직업의 광채(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노칼라2)』에는 폭넓은 직업군에 종사는 인물들이 나온다. 시대 변화와 함께 사라진 철도 웨이터나 카우보이, 간병이나 관광 가이드 같은 비상근직을 비롯해 신부, 변호사, 경찰 등. 각각의 인물은 자신의 일을 하는 와중에 소외되거나 후회할 일을 벌이고 관계의 미묘함을 알아차리거나 상대를 이해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직업(직장)은 현대인의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경제활동의 한 축을 넘어서 보다 많은 의의를 부여받는다.
출퇴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목적지로 향하는 우리가 잠시나마 각자의 직업(일/직장)으로부터 소외당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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