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벌판 KTX광명역세권 활성화가 최우선 과제”
코스트코, 이케아 유치로 활로 모색했으나….
2011년 6월 21일, 당시 양기대 광명시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KTX광명역세권에 미국 창고형 할인매장 코스트코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그해 12월 27일에는 세계적인 가구전문기업 이케아 유치를 발표했다.
양기대 시장이 이들 외국 대형유통기업을 KTX광명역세권에 유치한 것은 사즉생의 각오로 역세권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KTX광명역은 2004년 4월 1일에 개통되었으나 역 주변은 황량한 바람만이 부는 허허벌판으로 남아 광명시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상황이었다.
KTX광명역은 비운의 역사를 지닌 역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 정부가 고속철도 경부선 건설 기본계획 수립을 하면서 노선을 확정할 때만 해도 KTX광명역은 고속철도 경부선 시발역(출발역)으로 설계되었다. 정부는 4,068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부지면적 264,131㎡에 48,184㎡ 규모의 역사를 건설했다. KTX광명역은 역사 면적만 놓고 보면 국내 최대 규모이다.
그러나 KTX 전용 역사인 광명역은 이런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개통을 앞두고 고속철도 경부선 시발역에서 단순 중간 정차역으로 변경됐다. 2003년 12월 28일, 철도청이 KTX광명역 축소 운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고속철도운영계획을 발표했다. 간이역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게 됐다.
광명시민들은 KTX광명역이 광명시 발전을 이끌어내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굳게 믿었다. 정부의 수요 예측대로 하루 평균 2만 4천여 명이 KTX광명역을 이용한다면 KTX광명역세권은 활기를 띠면서 빠른 속도로 개발될 것이 확실했다. 그에 따라 광명시 지역경제가 활성화돼 광명시가 수도권 위성도시에서 대한민국 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KTX광명역은 고속철도 경부선 시발역 자리를 빼앗기면서 간이역으로 전락했다. 심지어 철도청이 고속철도 경부선의 영등포역 정차를 추진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광명시민들은 분노했다.
광명시민들은 분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움직였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뭉쳐 KTX광명역 경부선 시발역 환원을 요구했다. 광명시 관내 단체들과 광명시민들을 중심으로 ‘광명역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가 조직됐다. 8개 단체로 시작된 범대위는 이후 광명 관내의 28개 시민단체들이 결합하면서 조직을 확대했다.
범대위는 2004년 3월 27일에 열린 KTX광명역 준공식에서 KTX광명역의 경부선 시발역 환원을 위한 인간띠잇기를 하면서 침묵시위를 벌였다. 범대위는 고속철도 경부선 시발역 환원을 위한 건의문을 채택하고, 국회의원 초청간담회를 여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이후 범대위는 명칭을 ‘광명역 정상화 범시민대책위원회’로 바꿨고, 다시 ‘광명역 활성화범시민대책위원회’로 바꾸면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 나갔다.
광명시의회는 범대위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광명역 정상화 범시민대책위원회 설치 및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 KTX광명역 시발역 환원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범대위 대표로 선출된 백남춘 광명상공회의소 회장은 그 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때는 광명이 아주 침체된 상황이었죠. 그 넓은 KTX광명역세권에 광명역 하나만 달랑 개통된 건데 그것도 정상적인 개통이라고 할 수 없었어요. 개통을 하긴 했지만 당초 KTX 광명역을 건설한 목적과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광명역을 건설할 때는 서울의 인구를 분산시키면서 교통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해놓고 막상 개통에 임박해서는 운영 행태를 멋대로 바꿔버린 겁니다.
이것을 정치논리로 따지자면 정치의 중심이 서울이니 서울역으로 시종착역을 옮겨간 것이죠. 우리는 전혀 몰랐습니다. 개통할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된 거죠. 우리 지역 정치인들은 손을 쓸 수 없었어요. 중앙에서 정했으니, 지역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거죠.
하지만 KTX광명역은 우리 광명시민들에게 절박한 문제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누가 지원해주지 않았으니 각자 자발적으로 호주머니를 털어서 범대위 활동비용을 마련했어요. 국회에 가서 기자회견도 했고, 청와대 앞에 가서 항의 시위도 했어요. 건교부에도 가서 집회를 했습니다. 철도공사 대전 본사에 가서 격렬하게 항의도 했습니다. 대전에는 광명시민 7백여 명이 한꺼번에 몰려갔어요.”
- 백남춘 광명상공회의소 회장
KTX광명역 경부선 시발역 환원은 광명시민들만의 염원이 아니었다. KTX 광명역을 둘러싼 경기도 6개 자치단체(과천시, 군포시, 시흥시, 안산시, 안양시, 의왕시) 역시 KTX광명역 경부선 시발역 환원 요구에 동참했다. 범대위는 이들 6개 자치단체와 함께 ‘고속철도 광명역 정상화 및 영등포역 정차반대 7개시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7개시 범대위)’를 꾸렸다. 7개시 범대위 공동대표로 백남춘 범대위 대표가 추대됐다. 7개시 범대위는 고속철 경부선 영등포역 정차 반대 및 광명역 시발역 환원을 요구하면서 서명운동을 벌여 68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범대위의 이런 적극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KTX광명역의 경부선 시발역 환원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KTX광명역이 간이역으로 전락하면서 이용률이 저조해지자 KTX광명역세권은 개발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거대한 역사 하나만 달랑 들어와 있는 허허벌판은 매력 있는 투자 후보지가 아니었으니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2005년, 언론에 KTX역사가 들어선 다른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상승하는데 광명시는 오히려 하락했다는 조사 결과가 보도되기도 했다. 용산구, 천안시, 대전광역시 등은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지만, 광명시는 예외로 하락했다는 것이다. 광명시는 KTX광명역 건설 효과를 전혀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2010년 7월 1일, 취임한 양기대 시장은 KTX광명역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광명시가 발전하려면, 수도권 위성도시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중심도시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KTX광명역세권 활성화가 우선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KTX광명역세권이 개발되지 않으면 광명시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KTX광명역세권 활성화에 방점을 찍고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우선 KTX광명역의 의미와 발전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통일한국의 심장, 광명역’으로 명명했다. 이름만 그렇게 붙인 게 아니라 실제로 통일한국의 심장으로 만들기 위한 대장정을 함께 시작했다.
양기대 시장은 2010년 12월 2일, 이런 의지를 담은 대장정 선언문을 발표했다.
KTX광명역은 광명의 희망이고, 통일한국의 심장이 될 것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광명역은 만주와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꿈의 철도의 시발역이 될 것이라는 확신도 갖고 있습니다.
- KTX광명역 활성화를 위한 대장정 선언문 中
양기대 시장은 이때부터 KTX광명역이 앞으로 유라시아 대륙철도의 시발역이 될 것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역세권 개발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KTX광명역이 교통의 중심지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모여야 하고, 사람이 모이기 위해서는 상권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양 시장은 KTX광명역에 사람을 모으기 위한 대책으로 유통기업유치라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양기대 시장은 한때 애물단지로 전락하면서 버려진 땅으로 여겨졌던 KTX광명역세권 활성화를 위해 천신만고 끝에 코스트코 한국본사와 이케아 한국1호점을 유치하면서 개발의 첫 삽을 떴다.
그러나 한편으론 대형 유통업체의 유치로 인해 고난과 시련의 격랑으로 휘말려 들어가야 했다. /양기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광명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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